인플레이션 잡기 위한 新화폐 전쟁…원유 전쟁으로 번지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도널드 트럼프 정부 이후 보복관세 부과, 첨단기술 통제, 미국 국채 매각 등을 매개로 한 미국과 중국의 마찰이 조 바이든 정부 들어서는 자국통화 가치를 올리는 ‘평가절상 경쟁’으로 이동되고 있다. 각국이 자국통화 평가절하 문제를 놓고 환율 전쟁을 불사해 왔던 종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사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잇달아 치르면서 인플레이션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인플레는 경기과열과 같은 수요 요인보다 세계가치사슬(GVC)과 공급망(GSC) 붕괴에 따른 공급측 요인이 강하다. 통계기법상 요인분석을 해보면 공급측 요인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공급측 인플레 대책으로 세 감면, 생산성 증대, 사회적 연대를 통한 임금상승 억제 등과 같은 2차 요일 쇼크 이후 닥친 스테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됐던 ‘공급중시 경제학(supply side economics)’ 방안이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외부 충격에 따라 수입물가가 상승할 때는 자국통화 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방안이다.
인플레를 잡기 위한 각국 간 벌어지는 신화폐 전쟁은 미국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간 관계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과 맞물려 의외로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국제원유시장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에 이어 원유 전쟁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발단은 미국, 그중에서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화합과 통합’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취임한 지도 2년이 넘었다. 대외적으로 아프가니스탄주둔 미군 조기 철수, 대내적으로는 지방은행 위기 등으로 국민 지지도가 내년에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인 중하위 계층의 지지도가 낮은 것이 문제다.
자동차 문화가 체질화된 미국 국민에게 가솔린 가격은 대통령의 지지도에 직결될 만큼 특별한 의미가 있다. 미국 국민들은 집권당의 경제정책 성과를 ‘고통지수(MI=실업률+소비자물가상승율)’로 판단한다. 1970년대 이후 국민 지지도가 떨어질 때마다 미국 대통령은 저유가 정책을 추진하고 OPEC과의 관계가 악화돼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 시절에도 OPEC 회원국 간에 원유 전쟁이 발발할 직전까지 몰렸다. 연임 의지가 강했던 트럼프 정부가 중간선거에서 뜻하지 않게 공화당이 패하자 국민의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OPEC에게 대규모 증산을 요구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주도로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알래스카와 대륙붕 개발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당면한 인플레를 잡기 위해 OPEC에게 증산을 거듭 요청하고 있으나 이번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로 작년 10월에는 하루 200만 배럴 감산한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117만 배럴 추가 감산한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략원유 비축분을 풀어 대응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원유 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OPEC 회원국과 러시아는 바이든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못된다. 2014년 하반기 이후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 종료와 함께 재정사정이 악화돼 왔기 때문이다. 특히 OPEC의 감산을 주도하고 있는 빈살만 사우디 왕자는 바이든 대통령과 적대 관계인 데다 자신의 ‘2050 계획’을 위해 유가를 끌어올려야 하는 입장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다. 현 수준에서 지지도가 더 추락하면 임시방편으로 시한을 늘려놓은 2022 회계연도 예산안, 연방부채상한 유예 혹은 상향 조정, 사회적 인프라법 등이 공화당의 반대에 밀려 처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바이든 정부는 바이드노믹스를 제대로 추진해 보지 못하고 내년에 예정된 대선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다. 중동산 두바이유를 70% 이상 수입해 쓰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의 전략원유 비축분 방출 요구에 원칙적으로 동조한 상황에서는 OPEC+ 회원국들로부터 불만 혹은 보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는 한 나라 경제와 국민 생활에 직격되는 가장 높은 수위의 비상과제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에게 3개월분 소비분을 비축하도록 권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가장 중요한 대체에너지원인 원자력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표적으로 외면당했다. 태양광, 풍력, 조력 등 다른 대체에너지원을 기후변화 등으로 효율성이 떨어진다. 세계 모든 국가는 원전 복구와 증설에 나서고 있다. 탈원전 정책은 수정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속도를 내야 한다. 그것만이 앞으로 다가올 2차 원유 전쟁에 우리 경제와 우리 국민들이 살 길이다.
한상춘/한국경제TV 해설위원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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