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1960년대 영국서 날아온 팝아트로의 초대
현대 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화가라는 타이틀로도 불립니다.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작품이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 생존 작가의 작품 중 최고가인 약 9031만2500달러(한화 약 1020억원) 정도에 낙찰됐기 때문이에요. 가장 유명한 현존 작가로도 꼽히는 그는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습니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진행했을 때 3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을 정도죠. 그런 데이비드 호크니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립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의 작가와 함께 찾아왔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한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 1960s Swinging London’ 전이 그 주인공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와 함께 영국 초기 팝아트를 이끈 14인의 작품세계도 함께 살펴볼 수 있는데요. 이번 전시의 해설을 맡은 김기완 도슨트가 “팝아트 하면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미국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을 많이 떠올릴 텐데, 학술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걸 보면 팝아트의 첫 시작은 영국입니다”라고 설명했죠.
1956년 영국 작가 리차드 해밀턴의 작품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가 시초인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팝아트의 시작을 알렸던 작품부터 브리티시 팝아트를 이끌었던 작가들의 작업물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어요. 데이비드 호크니도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14명의 작가와 함께 1960년대 영국 팝아트 흐름을 주도한 예술가로 꼽히죠.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Swinging London’ 섹션에선 역동적이고 대담한 예술이 생기려는 기운이 싹트던 그 시절 런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Swinging London’은 1960년대 사회적·문화적으로 급변하는 시기의 활기차고 에너지 가득한 영국 런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인데요. 역동적이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영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은 광고·영화·사진 같은 대중문화 요소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전통적인 가치와 태도에 도전하고자 했어요. 그들의 대담하고 다채로운 작품들은 그 시대를 정의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중문화와 예술계에도 영감을 주죠.
타임지 표지와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놓은 것 같은 2개의 큰 판넬도 눈에 띕니다. 특히 팝아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리차드 해밀턴의 ‘가혹한 런던 67’은 마약 혐의로 체포된 영국의 록밴드 롤링스톤스 멤버들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가십으로 소화하는 언론을 풍자하는 대형 포스터로, 실제 보도된 지면 기사를 콜라주 형태로 모았죠. 콜라주는 종이·타일·헝겊·사진 등 별개의 조각들을 붙여 모아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미술 기법을 말해요.
영국 팝아트 발전에 영향을 미친 에두아르도 파올로치는 콜라주와 조립 기법을 사용했는데 광고·만화 및 기타 대중문화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고, 팝아트의 시각적 언어를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 중 ‘많은 그림, 많은 재미’를 보면 코끼리 캐릭터가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그리고 있는 게 인상적이죠.
김 도슨트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코끼리 피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점을 찍어 표현한 걸 볼 수 있어요. 이게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사용하던 기법입니다”라며 “지금 우리가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했었던 팝아트 작가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때부터 이미 미국으로 많이 기울어졌어요. 영국에서 시작했던 팝아트가 미국에서 강세를 띠는 것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풍자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죠.
영국 팝아트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대중문화와의 협업이었습니다. 특히 대중음악과 밀접하게 얽혀 있었는데, 리차드 해밀턴과 피터 블레이크 등 영국 팝아트의 주요 인물 중 다수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영향을 받았어요. 앨범 커버와 홍보 자료 등 팝 음악의 시각적 이미지에 매료되어 자신의 작품에 접목하려고 했죠.
대중문화와 팝아트 섹션에서는 피터 블레이크가 디자인한 비틀스 8집 ‘페퍼 중사의 외로운 마음 클럽 밴드’ 앨범의 커버도 볼 수 있습니다. 비틀스는 물론 마릴린 먼로, 밥 딜런 등 대중문화 속 유명 인사의 이미지가 콜라주 되어 있는 게 특징이죠. 흰 바탕에 ‘The BEATLES’라는 글자만 쓰여 있는 비틀스의 9집 앨범은 리차드 해밀턴이 작업했어요. “작가는 항상 반대로 하는 습관이 있었고, 8집 앨범이 굉장히 화려했기 때문에 최대한 아무것도 없는 형태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대요. 디자인 때문에 화이트 앨범이라고 불리게 되죠.”
이 앨범은 초판본이 500만 장 발매됐는데, 리차드 해밀턴은 앨범 안쪽에 0번부터 500만 번까지 번호를 각각 넣었습니다. “대량생산된 앨범이 서로 다르게 새겨진 고유번호만으로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게 된 거죠. 하위문화인 대중문화와 적은 사람만 누릴 수 있었던 상위문화를 이 앨범을 통해서 결합했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스위밍 풀’은 데이비드 호크니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물을 주제로 한 공간으로, 물을 느껴볼 수 있는 체험존 및 포토존이 마련돼 있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작업했고, 1960년대 수영장 시리즈를 많이 그렸어요. ‘호크니와 물’에서는 물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탐구한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죠.
1960년대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그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반사된 수영장에 매료되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물의 성질을 화면에 담고 싶어했죠. 초 단위로 움직이는 물의 흐름은 그의 그림에서 다양한 선으로 표현됩니다. 빛에 따라 달라지는 물의 색깔과 형태를 포착하기 위해 폴라로이드 사진을 이용해 여러 시점으로 오랜 시간 찍어 작업하기도 했죠.
“미술품은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이 한정되어 있었고, 팝아트는 많은 대중이 우리의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고민했는데, 그걸 해결해 준 게 바로 인쇄술이죠.” 인쇄술은 팝아트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발달한 인쇄 기술을 통해 작품을 빠르고 쉽게 여러 장 제작할 수 있었고, 이러한 기술을 통해 시선을 사로잡는 데 효과적인 대담하고 그래픽적인 이미지를 제작할 수 있었죠.
전시장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아이패드를 이용해 그린 디지털드로잉도 볼 수 있었습니다. “미술이라는 것이 단순히 미술관에 가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상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유통될 수 있음을 아이패드 드로잉을 통해서 제시한 거죠.”
마지막 섹션은 ‘이 시대 가장 사랑받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로 1960년대 Swinging London 시절 그의 작품부터 중기 이후까지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요. 이번 전시 메인 포스터로 쓰인 ‘푸른 기타와 자화상’은 피카소에 대한 작업물이기도 한데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왜 보이는 사실을 똑같이 묘사해야 할까’라고 생각했고, 내가 봤었던 것을 느낀 감정 그대로 남겨놔야겠다고 생각했대요. 그것을 일찍부터 시도했던 피카소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던 작업물이죠. 원근감이나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무너져 있는 것도 볼 수 있어요.”
작가가 프랑스 노르망디에 살면서 본 해돋이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태양이나 죽음을 오랫동안 볼 수 없음을 기억하세요’의 스크린프린트도 눈에 띕니다. 이 작품은 지난 2021년 5월 서울 COEX K팝 스퀘어의 LED 스크린에서 상영되기도 했죠.
2019년 노르망디에서 작업하다가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봉쇄가 됐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노르망디에서 약 1년여의 세월을 보내면서 사람들의 죽음을 보게 됐죠. 어떻게 하면 작업을 통해서 위로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해요.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일출이라 생각했고,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전시장 같은 실내 공간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외부 공간에서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상영해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게 작업했다고 해요.
데이비드 호크니와 영국의 전설적인 팝아트 작가들의 작품은 전시를 보는 동안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감과 위트 있는 상상력으로 시선을 붙듭니다. 이들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세대에게 지속해서 영향을 끼치고 있죠. 2023년 서울에서도 ‘Swinging London’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전달될 수 있을지 직접 확인해 보세요.
■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 1960s Swinging London
「
기간 7월 2일(일)까지(휴관일 없음)
장소 서울 중구 을지로 281 DDP 배움터 B2F 디자인전시관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입장 마감 오후 7시)
관람료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5000원, 어린이 1만3000원
」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사야컴퍼니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승기·이다인 호화 결혼식...이다인 입은 드레스 3벌 가격보니 | 중앙일보
- 처음으로 인생 흔적 못 찾았다, 골목서 얼어죽은 그녀의 쪽방 | 중앙일보
- 공 와도 수비수 멀뚱멀뚱…애들도 승부조작, 충격의 中 축구비리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 중
- "댄서인 줄" 조회수 100만 …학폭 없는 교실, 이 선생님의 비결 | 중앙일보
- "김만배, 실익 없어 입 닫았다" 트럼프 기소한 이 제도 꺼낸 檢 | 중앙일보
- "끝나지 않는 지옥" 박수홍 아내 김다예 고통 호소한 댓글 | 중앙일보
- [단독] KBS수신료 분리징수 가닥…尹정부 "비정상의 정상화" | 중앙일보
- 사과 5개, 사탕 1봉지 슬쩍…배고픈 '노인 장발장' 자꾸 는다 | 중앙일보
- 정부 심판 vs 거야 심판…집권 2년에 중간평가 총선 [총선 1년 앞으로] | 중앙일보
- "아이씨" 미국인 찰진 욕에 깜짝…'K-드라마'가 띄운 한국 비속어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