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왕부터 일반 서민까지 두루두루 쓴 조선백자의 매력은

김현정 2023. 4. 10. 0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자기를 이야기할 때 흔히 고려의 청자, 조선의 백자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청자, 조선시대에는 백자가 특히 뛰어나 국내외에 명성을 떨치며 사람들이 선호했기에 그 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로 이름 붙여진 것이죠. 조선백자의 경우 왕실에서부터 지방 민가에서 두루 사용한 생활필수품으로, 지금까지도 항아리·접시·병 등 기본 형태가 그대로 계승돼 자리 잡았죠. 조선시대만 따져도 500년이 넘도록 진화해온 백자의 매력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출동했습니다.

상상의 꽃인 보상화를 백자의 형태와 장식 공간에 맞추어 적절히 변형한 백자청화 보상화당초문 잔받침. [리움미술관]

한자로 흰 백(白)에 자기를 일컫는 자(磁)를 쓰는 백자는 말 그대로 흰 도자기예요. 하얀 바탕흙으로 빚어 투명한 유약을 바른 뒤 약 1300℃에 달하는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백색의 자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백자가 처음 제작된 것은 신라 말~고려시대로 알려졌죠. 소량이긴 해도 꾸준히 제작된 백자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새 나라의 그릇으로 선택됩니다.
조선 개국 초기에는 분청사기를 주로 사용했지만, 세종·세조 연간을 거치며 나라에서 주도적으로 백자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어요. 형태·품질 모두 체계적으로 관리·감독해 제작한 거죠. 왕실용 도자기 전담 제작 공장이라 할 수 있는 관요를 설치하고 왕의 백자가 생산되자 지배층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도 백자를 선호하게 됐습니다. 수요가 늘며 조선의 백자는 계속 발전했어요.
백자를 만들 때 핵심 재료는 하얀 바탕흙, 즉 백토(白土)입니다. 관요에서는 전국 산지에서 백토를 가져다 질 좋은 것을 선별해서 사용했죠. 이와 더불어 중요한 건 의외로 땔나무예요. 백자를 구워내기 위해 가마 안을 1300℃라는 고온으로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나무가 필요했거든요. 또한 도로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 왕이 사용할 그릇을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서는 수로를 이용해야 했죠. 왕실용 백자를 만드는 관요가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이유입니다. 수도 한양과 가깝고, 강을 끼고 있어 뱃길을 이용하기 쉬우며, 우수한 백토가 나고, 숲이 울창했던 곳이죠. 또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20년대 광주에 있던 도자소는 뛰어난 제작 능력과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뚜껑에 달린 봉오리 모양의 꼭지부터 깨끗한 흰빛으로 품격 높은 모양을 갖춰 국보로 지정된 백자 개호. [리움미술관]

관요는 ‘사기소’ ‘사옹원 사기소’로 불리다 17세기부터 사옹원의 지점이란 의미로 ‘분원(分院)’이라고 불렸으며 이 명칭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사옹원(司饔院)은 왕을 비롯한 궁중의 음식과 그에 필요한 그릇을 담당하는 기관이죠. 주변 나무를 다 베어다 쓰면 다시 숲이 우거진 곳을 찾아 이동했던 분원은 18세기 중반 현재의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에 정착하고 땔나무를 운반해서 쓰게 됐어요.
1460년대 후반 국가 주도로 가마를 설치·운영하며 분원에서 본격적으로 왕실과 관청에서 쓰는 백자가 만들어지자, 시간을 두고 점차 각 지방에서도 분청사기 대신 백자를 제작하기 시작했죠. 지방의 백자들은 중앙의 관요에서 사용하는 질 좋은 백토에 비하면 거친 바탕흙을 사용해 만들었어요. 처음엔 광주 관요의 백자를 기본으로 삼아 만들어지다가 점차 변해 형식을 벗어나는데요. 흙의 성분이나 만든 이의 솜씨에 따라 형태나 그림이 다양하게 나타나죠.

연꽃잎 문양을 청화·철화 등 안료로 그리는 대신 도드라지게 양각기법으로 표현한 백자양각 연판문 병. [리움미술관]

백자는 그 위에 어떤 안료로 그림을 그렸느냐에 따라 순백자·상감백자·청화백자·철화백자·동화백자 등으로 분류합니다. 그림 없이 순수한 흰빛의 순백자, 상감청자처럼 상감기법을 활용한 상감백자, 푸른색 안료(코발트)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 철(산화철) 안료를 사용해 다갈색·흑갈색으로 그린 철화백자, 진사 빛깔 산화동을 써서 붉게 그려진 동화백자죠. 또 유약의 성분이나 가마 안의 조건 등에 따라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기에 자기가 띤 백색을 보고 순백자·청백자·유백자·회백자로도 나눠요. 푸른 기를 머금은 하얀 빛인 청백자, 우윳빛깔 유백자, 회색을 띠는 회백자 등이죠.
안정적으로 발전하던 조선이 임진왜란(1592~1598)·정묘호란(1627)·병자호란(1636~1637) 등 연이은 전쟁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며, 백자 역시 특징인 흰색을 잃기도 하고 값비싼 안료를 쓰는 청화백자를 생산할 수 없어져 철화백자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17세기 말~18세기 초에는 다시 사회적으로 도약하며 백자도 특유의 흰색을 회복해요. 제작기술의 발달로 동을 안료로 사용하는가 하면, 청나라 영향을 받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자기도 나타나죠. 17세기 중후반~18세기에는 달항아리라고 불리는 큰 항아리, 백자 대호도 출현합니다.

조선백자 보고 싶다면

이후 19세기에는 청나라뿐 아니라 일본 자기들도 활발하게 유입되는데요. 특히 1876년 개항 이후에는 일본 등 외국 자기가 왕실용으로도 사용되는 등 조선백자가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듭니다. 왕실용 그릇을 만들던 분원 역시 민영화되고, 장인들은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죠.


명품 조선백자 한자리에


500여 년 조선의 역사와 함께해 온 백자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리움미술관은 2004년 개관 이래 처음으로 도자기를 주제로 한 특별전을 마련했어요. 조선백자 총 185점을 선보이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입니다. 특히 국보 10점과 보물 21점 등 국가지정문화재 총 59점 중 절반 이상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요.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국립경주박물관·서울역사박물관·부산박물관·호림박물관·간송미술관·아모레퍼시픽미술관·동국대학교박물관 등 국내 8개 기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일본민예관·이데미츠미술관·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야마토문화관·고려미술관 등 일본 6개 기관이 참여했죠.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의 1부 ‘절정, 조선백자’에서는 국보·보물 등 42점의 대표작을 선보인다. [리움미술관]
다양한 조선백자를 만나기 위해 전시장에 들어선 소중 학생기자단을 맞이한 건 어두운 공간에서 별처럼 환하게 빛나는 42점의 백자입니다. ‘절정, 조선백자’란 제목의 1부에선 국가지정문화재 31점과 그에 준하는 국내 백자 3점, 해외 소장 백자 8점을 선보이죠. 도자기를 각각 투명한 유리 박스에 넣어 360도로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했어요. 전시를 기획한 이준광 책임연구원은 왕희재·유은서·정아인 학생기자를 한 청화백자 앞으로 이끌었죠.
“조선 초기인 15세기 백자 중에서도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으로 국보로 지정된 백자청화 매죽문 호입니다. 청화, 즉 푸른색으로 그려진 매화와 대나무 그림이 담긴 백자 항아리(호)라는 말이에요. 이를 포함해 나라에서 특히 귀중히 보존하기 위해 국보·보물로 지정한 31점의 백자를 볼 수 있죠. 절정이란 제목처럼 최고 수준의 백자를 한번에 보여드리기 위해 기획한 공간이에요.”
조선 초기인 15세기 백자 중에서도 당당한 형태와 화려한 그림으로 국보로 지정된 백자청화 매죽문 호. [리움미술관]
이 연구원의 설명을 들으며 소중 학생기자단은 백자청화 매죽문 호를 한 바퀴 돌며 감상했죠. 한껏 눈이 높아진 세 사람은 백자청화 망우대명 초충문 잔받침(보물)으로 향했습니다. “얼핏 보면 접시 같지만 잔받침이에요. 가운데에 한자로 ‘망우대’라고 적힌 부분을 보면 둥글게 잔을 놓는 부분이 한층 들어가 있죠. 망우대는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역시 청화 안료로 바닥에 꽃이 피고 풀벌레가 나는 모습을 함께 그렸어요. 잔에 술이나 차를 담아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선비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지 않나요.”
청화를 비롯한 백자 장식의 소재는 다양합니다. 고결한 군자를 상징하는 매난국죽의 사군자는 인기 소재였어요. 매화·난초·국화·대나무·소나무를 비롯해 용과 물고기·새·사슴·호랑이, 산신령이나 인물을 중앙에 배치하고 가장자리에는 연잎·당초·동심원·구름 등을 연달아 무늬로 넣기도 했죠. 백자청화 군어문 호(보물)를 예로 들면 중앙에 마름모꼴로 꽃 모양 공간을 두고 물고기 떼가 헤엄치는 묘사를 하고, 가장자리에는 꽃 등으로 장식했어요. 산신각이나 민화 전시에서 봤을 법한 호랑이와 함께 있는 산신령이 그려진 백자청화 신선문 호는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서 온 작품이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백자청화 송녹문 호의 사슴을 귀여워했어요. 사슴과 소나무는 십장생에 속하기도 한데 십장생은 18세기 말부터 청화백자에 등장했죠. 부귀를 뜻하는 모란·공작, 중국식 발음이 복(福)과 같은 박쥐처럼 조선 후기에는 좋은 일을 바라는 길상문이 유행했습니다.

백자청화철화 삼산뇌문 산뢰와 포즈를 취한 유은서 학생기자.

“청화백자의 문양은 궁중화가인 도화서의 화원이 그렸어요. 청화 안료는 당시 회회청(回回靑)이라고 부른 코발트인데, 페르시아에서 중국을 거쳐 수입해야 했기에 매우 비싸고 제때 들여오기도 쉽지 않았죠. 귀한 재료로 만든 청화백자는 왕과 왕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다만 사대부가에선 중국의 청화백자를 들여와 쓰기도 했죠. 실록 등을 보면 계속 사용을 금지하는데, 이는 그만큼 계속 몰래몰래 사용했다는 얘기기도 해요.”
“조선 초기 정부에서 일반 백성들의 백자 사용을 금지했다고도 하던데요. 왜 그런 건가요?” 은서 학생기자가 질문을 던졌죠. “왕과 왕실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나중에는 백자를 널리 사용하게 되지만 가장 뛰어난 최고급 백자는 광주 관요에서 만들어졌고 왕실에서만 사용했죠.” 설명을 듣던 아인 학생기자가 이어 질문했죠. “그럼 백자를 소유하는 것이 부의 상징이었나요? TV 드라마에서 실수로 도자기를 깨면 엄청 화내는 장면을 본 적 있어요.”
이 연구원은 “최상급 백자는 왕만 쓸 수 있었다”며 “왕과 왕세자 그릇도 구분해 쓸 정도였다”고 했죠. “청화 안료를 페르시아에서 중국으로 수입해 다시 조선에서 수입했다고 했잖아요. 거의 금만큼 비싼 재료였어요. 만들 때도 불량품이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했죠. 관요 가마터를 발굴해도 청화백자 파편은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예요. 그만큼 제작 기술도 뛰어났죠. 당시 세계적으로 백자를 만들 수 있는 건 명나라와 청나라, 조선을 제외하면 없다시피 했습니다.”

17세기~18세기 전반 많이 만들어진 철화백자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히는 백자철화 포도문 호, 국보. [리움미술관]

조선백자에 사용된 안료 중 최고급은 청화이지만,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한때 구할 수 없는 재료가 되기도 했어요. 대신 철화백자가 강렬하게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했죠. 갈색에서 짙은 흑갈색까지 철의 농도에 따라 다양하게 발색되는 철화 안료는 국내에서도 생산돼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구하기 쉬웠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백자철화 포도문 호를 유심히 살펴봤죠. 앞에는 탐스러운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모습이 그려졌는데요. 이 연구원은 꼭 뒷모습을 보라고 추천했죠. 뒤에서는 원숭이 한 마리가 포도 덩굴 사이를 건너고 있었어요. “정적인 포도와 활동적인 원숭이가 철화로 그려져 강한 인상을 주죠. 철화백자는 17세기~18세기 전반 많이 만들어졌는데, 국보인 이 작품은 그중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막대사탕 같은 구름이 인상적인 백자철화운죽문 호(보물)를 지나 상감기법이 사용된 백자상감 연화문 묘지 일괄(국보), 몸체를 뚫어낸 투각 기법으로 독특한 이중 구조를 지닌 백자상감투각 모란문 병(보물), 청화·철화·동화 안료를 함께 사용해 창의적으로 표현해낸 백자청화철화동채 초충난국문 병(국보) 등 희귀한 작품을 감상한 세 사람은 이번엔 아무 무늬 없는 백자 앞에 섰죠. “국보인 백자 개호(뚜껑이 있는 항아리)예요. 조선 초기 백자는 새 나라의 기운을 반영하듯 당당한 형태로 순백의 아름다움을 갖췄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평가됩니다.”

백자 태호(태항아리)와 포즈를 취한 정아인 학생기자.

백자 개호와 마찬가지로 뚜껑이 있는 항아리가 또 있었어요. 특이하게 어깨 부분에 고리가 달렸죠. 희재 학생기자가 그 용도를 궁금해했어요. “조선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을 소중히 간직했죠. 좋은 항아리를 만들어 이중으로 담고, 풍수 좋은 곳에 태실을 만들어 묻었어요. 이건 그 탯줄을 담은 태항아리, 태호입니다. 어깨에 있는 네 개의 고리와 뚜껑 꼭지 아래 구멍을 이용해 끈을 묶어 고정했어요. 조선 전기 왕실용 태호의 표본이 되는 작품이라 보물로 지정됐죠.”
하얗고 하얀 백자들 사이, 범상치 않은 크기인데 갈색으로 얼룩진 백자가 시선을 끕니다. “흔히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백자 대호예요. 보름달처럼 둥근 모습을 지녀 20세기 애호가들이 붙인 별명이죠. 조선시대에는 원형의 항아리라고 원호라고 불렀어요. 달항아리는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이기 때문에 굽는 과정에서 제대로 둥근 모습이 나오기가 힘들죠. 이 달항아리(국보)는 커다란 크기에 비해 이음새 부분도 잘 마무리된 수작입니다.”
은서 학생기자가 “얼룩진 게 크레이터 같아 달항아리란 명칭에 어울린다”며 “어디에 사용했는지” 질문했어요. “이렇게 큰 항아리를 어디에 쓰려고 만들었는지 기록이 남아있진 않아요. 전해지는 작품 중 왕실 주방을 뜻하는 글씨가 있거나, 잔존 물질 분석 결과 식물성 기름인 경우가 있어 저장용기였을 가능성이 있죠. 조선백자의 용도는 크게 의례용과 생활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아까 본 태항아리 같은 경우가 의례용이죠. 전시 4부에선 밥그릇·국그릇 등 생활용기를 볼 수 있어요.”

백자 달항아리와 포즈를 취한 왕희재 학생기자.

줄줄이 놓인 달항아리 3점을 요리조리 보던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이 연구원이 마지막 항아리를 가리키며 더 자세히 볼 것을 주문했죠. “이 달항아리는 입지름과 굽지름의 크기도 적당하고 안정감이 좋은데요. 사실 산산조각 났었어요. 일본에서 도둑맞을 뻔했는데, 도둑이 들고 도망가다 잡힐 것 같자 깨 버린 거죠. 300여 점으로 흩어진 것을 전부 모아 약 2년에 걸쳐 복원했어요. 자세히 보면 붙인 자국이 보이는데, 망가졌던 것도 도자기의 역사이기에 일부러 자국을 다 없애지 않고 남긴 거랍니다.”


순백자·청화백자·철화백자·동화백자


시대와 기법을 넘나들며 국보급 조선백자를 살펴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제작기법에 따라 좀 더 자세히 백자를 알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이 연구원은 안료에 따라 백자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라고 팁을 전했죠. 시작은 역시 왕실의 품격이 돋보이는 청화백자예요. 61.9cm 높이의 큰 항아리에 5개 발가락을 지닌 오조룡 두 마리가 힘차게 구름 속을 나는 모습이 그려진 백자청화 운룡문 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됐습니다. “용은 왕을 상징하죠. 구름을 타고 다니며 비를 내리는 용의 위엄을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물 관리를 맡은 왕에 빗댄 거예요.” 용 항아리는 왕실에서 행사 때 쓴 의례용기 중 하나죠.
청화 안료를 구하기 어려워진 17세기, 철 안료로 용을 표현한 백자철화 운룡문 호. [리움미술관]
전시 2~4부에선 143점 백자를 만날 수 있는데요. 그중 6점에는 글이 쓰였죠. 특히 백자청화 시명 각병은 여덟 면으로 각지게 깎아낸 데다 운치 있는 시를 적었어요. 백자청화 전서체자시명 호 역시 전서체로 조선 문인들이 숭앙하던 이들의 시를 적어 조선 사람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죠.
지금까지 본 것과 달리 화려한 채색으로 시선을 모은 백자도 있습니다. 청나라 옹정제 때 만들어진 분채 모란문 대병이죠. “중국의 채색 자기는 조선백자에 영향을 미쳐 채색 장식이 나타나게 돼요.” 이 연구원의 설명에 희재 학생기자가 “아부다비 대통령궁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선물한 달항아리가 전시된 것을 봤다”며 “옆에 놓인 다른 나라 도자기보다 화려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던데 외국인들은 달항아리 같은 백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어요.
“영국의 유명 도예가 버나드 리치가 1935년 서울에 왔다가 달항아리를 구입해 가져가면서 ‘나는 행복을 가지고 떠난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어요. 그 달항아리는 현재 대영박물관에 있죠. 화려하지 않아도 특유의 멋이 있다고 느끼는 듯해요. 조선백자 기술을 보면 화려하게 못 만들어서 안 만들었다기보다 그런 화려함을 원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앞서 봤던 백자청화철화동채 초충난국문 병의 경우 청화·철화·동화 안료를 함께 사용해 꽃잎과 풀벌레에 각각 색을 칠했는데, 매우 뛰어난 기술이거든요. 채색 자기의 영향을 받았지만 다르게 표현해낸 거죠.”
관요에서 만든 듯 양질의 항아리에 지방 가마서 만든 듯 자유로운 형태로 꽃을 그린 백자철화 초화문 호. [리움미술관]
청화로 잎을 그리고 동화로 붉게 모란을 채색한 백자청화동채 모란문 호, 병을 감싼 구름을 진홍색 동 안료로 표현하고 청화로 용을 그려낸 백자청화동채 운룡문 병, 참신한 형태의 백자청화동채 금강산형 연적, 백자동채 개형 연적 등을 살펴보며 소중 학생기자단은 과히 알록달록하지 않아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조선의 미감을 느껴봤습니다. 일부 백자는 디지털로 구현돼 문양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요.
지금까지 본 것과 달리 아이들 그림 같기도 하고 추상화 같기도 한 문양으로 장식된 백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방에서 만든 철화·동화백자에는 까치·호랑이 등 민화 소재도 많이 등장하고, 같은 용이라도 짓궂은 표정이 재미있게 나타나죠. 꽃잎 하나하나 정성껏 칠했던 청화백자와 달리 꽃인지 외계인인지 헷갈리는 백자철화 초화문 호와 백자철화 국화문 호를 본 세 사람은 절로 미소를 지었죠.
이준광(맨 왼쪽) 책임연구원이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밥그릇·국그릇 등 조선 사람들의 일상 생활용기로 사용된 백자 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방에서 만들어진 백자는 다양한 흰빛을 띤다.
일부 백자는 유리 진열장 안이 아니라 커다란 둥근 상에 놓인 것처럼 전시됐는데요. 조선 사람들의 일상 생활용기로 쓰인 백자 발입니다. 중앙 관요에서 만든 흰색과 달리 회색빛·갈색빛·푸른빛이 많이 들어간 백자였죠. “임진왜란 때 조선백자를 약탈해 간 이들은 찻그릇으로 쓰기도 했지만 사실 조선에선 밥그릇·국그릇 등으로 썼어요. 아까 본 연적이나 필통처럼 문방구나 소 모양 희준 같은 제기도 백자로 만들어 썼죠. 이처럼 조선백자는 왕실에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사용한 게 특징입니다. 백자가 지닌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는 조선이 추구한 사회 분위기와 잘 맞았죠. 『성종실록』을 보면 왕이 승정원에 백자 술잔을 하사하며 사람으로 치면 선하지 못한 게 용납될 수 없는 것과 같이 공평하고 지극히 바르다(大公至正)고 비유한 기록이 있는데요. 백자를 통해 유교사회 조선의 이상적인 인간상인 군자(君子)에 대한 생각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죠.”
500여 년의 세월을 망라한 조선백자를 만나고 돌아 나오는 길은 순백자 호가 배웅합니다. 사실 남겨진 유물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티 없이 맑은 흰빛이든 질박하게 가라앉은 흰빛이든 순백자라죠. 이 연구원은 “순백자는 항상 바르고 선한 사람과 같다”며 “백자 안의 군자의 모습을 찾아보라”고 귀띔했어요.
조선백자 총 185점을 선보이는 전시의 마지막은 순백자 호가 장식했다.

■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전

「 장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55길 60-16 리움미술관 기획전시실
기간: 5월 28일까지(관람 2주 전부터 홈페이지(www.leeum.org)서 예약, 예약 필수)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매표 마감 오후 5시 30분)
청소년 단체(초5~고3, 10~35명) 워크북 프로그램 운영: 화~금 오전 10~11시, 화~일 오후 2~3시, 홈페이지 선착순 접수

■ 소년중앙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조선백자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즐거운 취재였습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백자에 그려진 용이 왕을 뜻하고, 구름을 몰고 다닌다는 점입니다. 구름은 용이 비를 내리는 상징이고, 왕이 비를 다스려 백성의 농사가 잘되길 바랐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죠. 그리고 한 외국인이 조선백자를 사면서 "행복을 들고 간다"고 말했다는 이야기에 다소 밋밋해 보이던 백자가 더욱 좋아졌어요. 저는 조선백자 중 달항아리가 가장 좋습니다. 달항아리를 보면 진짜 밤에 달을 보는 것 같은데, 저는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거든요. 일본 도둑이 달항아리를 훔치려다 들키자 도망치기 위해 일부러 떨어트려 산산조각이 났는데, 이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티가 나게 복원한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취재한 내용을 생각하며 전시회를 다시 천천히 보고 싶어요.

-왕희재(서울 마포초 5) 학생기자

평소에 잘 알지 못했던 백자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게 되어 좋았습니다. 연구원님께서 달항아리 등 백자에 얽힌 역사나 사건을 알려주신 게 인상 깊었죠. 해설과 함께 작품을 보니 느낌이 달랐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백자의 종류가 다양해서 신기했죠. 또 백자가 만들어진 곳이 지방인지 수도권인지에 따라 백자에 그려진 그림부터 퀄리티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놀라웠어요. 다양한 사실을 알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었으며, 다시 한번 조선백자를 보러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은서(서울 경복초 4) 학생기자

첫 취재로 국내외 백자 명품을 모은 특별전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을 다녀왔어요. 입구에서 전시명을 보는 순간 직접 보게 될 백자가 기대됐죠. 전시 제목 ‘군자지향’은 ‘군자의 모습을 추구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학교 사회시간에 배우는 '조선시대‘가 떠올라 반가웠어요. 여러 모양, 여러 무늬의 백자를 하나하나 가까이서 볼 수 있어 더욱더 값진 시간이었죠.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 청화백자부터 여러 기법으로 만들어진 백자 중 달항아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참 푸근하고 멋있게 생겼죠. 정식 명칭은 "백자 대호(큰 항아리)"라고 해요. 백자 하나하나의 이름부터 그 백자가 의미하는 것을 생각하며 보다 보니 이렇게나 많은 백자를 모아 전시 기획을 하신 연구원님이 대단해 보였죠. 덕분에 저는 백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정아인(서울 영훈초 6) 학생기자

글=김현정 기자 hyeon7@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리움미술관, 동행취재= 왕희재(서울 마포초 5)·유은서(서울 경복초 4)·정아인(서울 영훈초 6) 학생기자, 자료=리움미술관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