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엔 개성사무소 폭파…통신 멋대로 끊고 청구서 내미는 北

박현주 2023. 4. 1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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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7일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채널과 군 통신선 정기 통화에 답하지 않은 데 이어, 주말에도 가동하는 군 통신선의 경우 9일까지 사흘째 무응답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중 정찰위성 발사라는 도발을 예고해 가운데 긴장 고조를 위해 의도적으로 통신연락선을 단절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2021년 10월 군 관계자가 당시 복원된 남북 군 통신선을 통해 시험 통화를 하는 모습. 사진 국방부


"죗값 치르라"며 일방 차단


9일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군 통신선 업무개시와 마감 통화를 모두 받지 않았다. 남북 군 당국은 평일과 주말 모두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4시에 통화를 진행하는데 지난 7일부터 불통 상태다. 평일에만 진행하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채널도 지난 7일 무응답이었다.

북한의 통신선 차단은 전례가 있다. 한·미 연합훈련, 대북 전단 살포 등을 빌미로 일방적으로 통신연락선을 끊으며 긴장을 고조시켰다가, 어느새 전격 복원을 결정하며 그 대가로 대남 '청구서'를 날리는 패턴이 반복됐다.

2020년 6월 9일 북한은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해 통신연락선을 차단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 "우선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만인 같은 달 16일 북한은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2020년 6월 9일 북한 조선중앙TV는 "9일 12시부터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 채널을 차단, 폐기하겠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북한 입장에선 통신선 차단은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대남 도발 위협을 고조시키는 '손 쉬운' 대적 사업의 일환이었다. 이번에도 지난 6일 정부가 '개성공단 내 남측 자산의 무단사용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내려고 하고 북측이 수령을 거부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통신연락선 차단의 명분으로 삼았을 수 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통신연락선의 경우 추후 북측도 필요시 활용할 수 있는 소통 수단이자 대남 레버리지이기 때문에 남겨뒀지만, 최근 정부가 소위 '듣기 싫은 소리'를 하자 돌연 끊어버린 것으로 보인다"며 "일방적인 불통 상황에 조바심을 내면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어가는 셈이니 의연하게 대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전화 받고선 남측에 "노력하라"


북한은 일방적으로 끊은 통신연락선을 복구할 때면 어김 없이 대남 '청구서'를 내밀곤 했다.

2021년 7월 북한은 1년 1개월 만에 통신연락선을 전격 복원한 지 닷새 만에 김여정 부부장을 등판시켰다. 김 부부장은 "(통신연락선은) 단절되었던 것을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놓은 것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달지 말아야 한다"며 "남조선측이 8월에 또다시 적대적인 전쟁연습을 벌려놓는가 아니면 큰 용단을 내리겠는가에 대하여 예의주시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당시 8월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 일정을 염두에 두고 대남 압박술에 나섰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2주만에 다시 정기 통화에 답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같은 해 10월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두 달만에 통신연락선을 재개했다. 김여정 부부장이 끊은 통신연락선을 김정은 위원장이 잇는 '냉온 전략'이었다.

그러면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당국은 북남통신련락선의 재가동 의미를 깊이 새기고 중대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김 위원장이 직접 제시한 조건은 '적대시 정책'과 '이중기준'의 철회였다. 임기 말까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해 통신연락선을 카드로 활용하려 했다.
2021년 7월 남북이 통신연락선을 재가동하자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남측 연락대표가 북측 연락대표와 통화하는 모습. 통일부.


조만간 도발 앞두고 '예열'


윤석열 정부 들어선 처음인 이번 '불통' 사태의 배경 역시 남측을 향한 불만 표시, 주요 도발 전 긴장 고조, 향후 요구 관철을 위한 밑밥 깔기 등의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이달 중 정찰위성 발사를 예고했으며,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4월 15일)도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최근 한·미 연합훈련을 비롯해 정부의 북한인권보고서 공개 발간,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공동성명,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한 대남 맞춤형 대응 수단"이라며 "당분간 쉽게 통화를 재개하진 않을 것으로 보이고, 향후 더 강도 높은 대적 행동을 하기 위해 사전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의도적인 응답 거부 혹은 기술적 이상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일단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채널은 평일에만 가동되기 때문에, 월요일인 오는 10일 북한의 응답 여부를 확인하고 관련 조치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KBS 1TV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전화선(통신연락선)이 끊어진 건 상당히 유감이고 곧 북한이 복귀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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