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승아’ 없도록”…만취차량 참변 초등생 유족 오열
대전 서구 둔산동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초등학생 배승아(9)양의 유족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배양의 빈소가 차려진 대전 한 장례식장에서 9일 취재진을 만난 유족은 이번 사고의 비극을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배양의 실명을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생전 해맑고 발랄했던 배양의 사진도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면서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과 음주 운전자의 엄벌을 간절하게 호소했다.
빈소에는 활짝 웃는 배양의 모습이 담긴 영정이 놓여 있었다. 배양의 어머니 A씨(50)는 배양의 오빠인 아들 B씨(26)와 함께 빈소 한쪽 구석에 기대앉아 “아직 아기인데 얼마나 아팠을까, 우리 아기 불쌍해서 어떻게 보내나”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A씨는 “사고 나기 15분 전에 ‘친구들이랑 조금만 더 놀다 들어가겠다’고 전화가 왔었는데 그게 마지막 통화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토로했다. 배양은 사고 당시 친구들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생활용품점을 들렀다 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A씨는 “횡단보도 건널 때는 꼭 초록불인지 확인하고, 손들고 주위를 잘 살피고 건너라고 수도 없이 가르쳤다”면서 “차가 인도로 돌진해 딸아이를 앗아갈지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가슴을 쳤다.
혼자서 남매를 키우느라 집에 있을 틈이 없던 엄마를 위로한다고 틈만 나면 유튜브를 보며 개인기를 연습하던 딸이었다고 A씨는 돌이켰다. 그는 취재진에게 배양의 사진을 보여주다가 “애답지 않게 생각이 깊고 철이 너무 일찍 든 딸이었는데…. 마지막까지 아파하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며 오열했다.
오빠 B씨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동생을 딸처럼 키워왔다고 한다. B씨는 “(승아의) 생일이 한 달여 밖에 안 남았다. 자기 침대를 갖는 게 소원이라고 해서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라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가족들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망 사고를 막기 위해선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씨는 “민식이법 이후에도 스쿨존 사망사고는 계속돼 왔고, 결국 동생이 희생됐다”며 “부디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해 더는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연합뉴스에 전했다. 그는 KBS에도 “제2의 승아가 발생하지 않도록 살인죄가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전날 오후 2시21분쯤 대전 서구 둔산동 탄방중 인근 교차로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60대 남성이 운전하던 SM5 차량이 도로 경계석을 넘어 인도로 돌진해 길을 걷던 어린이 4명을 덮쳤다. 그중 배양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 도중 숨졌고, 다른 9∼12세 어린이 3명도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사고를 목격한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운전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사 및 위험 운전 치사,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이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당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대낮에 벌어진 스쿨존 음주운전 교통사고 사망을 두고 음주운전에 대한 관리·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처벌을 대폭 강화한 민식이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020년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는 2020년 483건에서 2021년 523건으로 크게 늘었고, 지난해에도 481건으로 500건에 육박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처벌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1∼12월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중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69건 중 1건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안전시설 강화, 시민 의식 제고와 함께 가해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연합뉴스를 통해 “민식이법 시행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스쿨존 내 교통사고는 가중처벌이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단순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해서 보상 등 민사적 책임을 지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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