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LG그룹과 자본주의 5.0시대

강주화 2023. 4. 10.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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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은 올해 1분기 호실적을 냈지만 맘 놓고 웃긴 힘들 것 같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어머니 김영식 여사와 두 여동생은 지난 2월 말 법원에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GS그룹 LS그룹 LIG그룹 LF그룹 등이 LG에서 분리될 때도 잡음이 없었는데, 취임한 지 5년이 다 된 시점에 현 회장을 피고로 한 상속 관련 소송이 제기됐으니 아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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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화 산업2부장


LG그룹은 올해 1분기 호실적을 냈지만 맘 놓고 웃긴 힘들 것 같다. 1947년 창립 이래 초유의 상속 다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어머니 김영식 여사와 두 여동생은 지난 2월 말 법원에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구 회장은 고 구본무 전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큰아들이다. 구 회장은 장자(長子) 승계를 위해 2004년 구 전 회장의 양자로 입적됐다. 구 회장은 2018년 구 전 회장 별세 이후 지주회사인 ㈜LG 주식 8.76%를 상속받아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두 동생은 각각 2.01%, 0.51%를 분할 상속받았다. 김 여사는 1주의 주식도 받지 않았다. 법정 유류분 기준에 따르면 상속 비율은 ‘1.5(배우자) 대 1(자녀 1인당)’이다. 다만 구 전 회장의 5000억원 규모 개인 재산을 세 모녀가 물려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재벌가에서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분쟁이 있었지만 인화(人和)를 강조하는 LG그룹에서는 없었다. 언쟁하다가도 누군가 “‘인화의 LG’에서 왜 이래”라고 하면 웃어넘긴다는 일화에는 그런 기업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 있다.

GS그룹 LS그룹 LIG그룹 LF그룹 등이 LG에서 분리될 때도 잡음이 없었는데, 취임한 지 5년이 다 된 시점에 현 회장을 피고로 한 상속 관련 소송이 제기됐으니 아연할 것이다. 이번 소송은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 상속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로 알려졌지만, 장자 승계라는 LG그룹의 경영권 승계 원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는 ‘왜 이제 와서 소송이냐’라는 의문과 함께 ‘아직도 장자 승계냐’라는 반문이 뒤섞여 나온다. 장자 승계는 가부장제 전통이다. 아들을 우선하는 호주제가 폐지된 지도 20년이 다 돼 간다. 장자 승계는 경영권 분쟁을 막는 가장 효율적인 승계 원칙으로 선택됐겠으나 변화된 시대에 맞는지 검토할 때다. 장자 승계는 앞으로 LG가 딸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고 양성평등에 어긋난다는 외부의 비판이 뒤따를 것이다.

CSV(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가 중요한 ‘자본주의 5.0시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과 마이클 유진 포터 교수는 2011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CSV 개념을 공식 발표했다. 기업 활동 초점을 사회적 가치와 연동된 경제적 가치 창출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도 그 연장선이다. 요즘 사랑받는 기업은 CSV를 잘하는 곳이다. 등산용품 제조업체 ‘파타고니아’는 고엽제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100% 유기 재배된 재료로 옷을 만든다. 생산 단가가 높아지므로 매출이 줄어야 정상이지만 이 회사를 지지하는 열성적인 소비자들이 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힙한 브랜드 중 하나가 됐다.

파타고니아가 환경 보호로 CSV를 한다면 LG그룹은 인화로 CSV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LG복지재단은 2015년부터 선행을 한 시민에게 수시로 LG의인상을 주고 있다. 이 상은 우리 사회에 다른 사람을 돕는 문화가 확산하는 데 보탬이 된다. 양성을 차별하지 않는 것 역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자 평등의 가치를 생산하는 일이다. LG그룹이 창업 초기부터 줄곧 강조한 인화는 이 평등의 가치까지 포괄할 수 있다. 2대 구자경 회장은 1986년 “‘인화’는 인간 중시의 경영, 소비자를 존중하는 경영, 국민을 위하는 경영, 인류의 장래에 이바지하는 정신을 포용한다”고 했다. 모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소비자, 국민, 인류의 장래에 기여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다행히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LG그룹이 인화의 정신으로 이번 소송을 슬기롭게 풀어가길 기대한다.

강주화 산업2부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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