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평화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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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길을 걷다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이 길을 물어왔다.
얼마 전까지 민주평통자문회의의 상임위원회 10개 분과 중 하나였던 평화·법제분과위원회가 사라졌다.
평화 연구를 주로 해오던 지방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경우에는 이제 평화가 아닌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한 연구를 주문받았다고 한다.
평화를 통해 전쟁을 방지하고 갈등을 다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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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길을 걷다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이 길을 물어왔다. 친절하게 알려주고 나니 대뜸 얼굴에 근심이 서려 있다며 “지금 평화로우신가요?”란 질문을 해왔다. 오래전 들었던 “도를 아십니까?”가 진화한 사이비종교의 포교 활동이거나 돈을 노린 사기꾼이려니 하고 무시하고 가려다 장난기가 발동해 한마디를 던졌다. “선생님, 평화를 아십니까?”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혹 나를 자신과 같은 부류로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최근 넷플릭스에 사이비종교와 관련한 웹다큐가 인기리에 방영됐다. 사이비 교주의 엽기적 행각에 집중된 구성에 불편함을 느끼면서 왜 그곳에 빠진 사람들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인간의 나약함과 종교적 환상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 상품 구매를 강요하는 다단계식 사기와 유사한 점이 있다. 결국 지위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스스로 사이비 종교이든 다단계 사기회사이든 조직에 충성을 경쟁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직에 대한 충성 경쟁은 비단 사이비종교나 다단계 사기단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여러 곳에 해당하는 모습이다. 자신이 정권에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한 말들을 서슴없이 하고 다니는 소위 도인(道人)을 자처하는 사람이나 뭘 믿고 설교 시간에 대통령과 장관을 향해 막말을 쏟아내는 목사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충성과 복종을 경쟁해 지위와 권력을 얻으려는 사이비 정치인, 사이비 전문가, 사이비 언론이 넘쳐나는 혼돈의 세상이다. 사회가 혼란할수록 사이비종교와 사기꾼들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사이비는 인간의 두려움과 불안을 먹고 사는 아메바와 같다. 멍청하고 사리분별력이 없는 사람을 아메바에 비유하기도 하니 어쩌면 아메바 정치인, 아메바 전문가, 아메바 언론이란 표현도 틀리지 않은 듯하다.
힘에 의해 위협과 갈등이 조장되고 있는 사이 평화가 외면당하고 있다. 연일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고 무인기가 머리 위를 날아다닌다. 이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군사적 대응을 주문한다. 한·미 연합훈련을 넘어 한·미·일 군사협력까지 대대적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어 위기관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해도 남북 간 연락을 주고받을 최소한의 안전핀 통신망조차 없다. 분단사회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평화유지선마저 사라져버렸다. 평화를 만들려는 노력이 사라지고 점차 공포 속으로 내몰리게 될 서민들은 힘에 의한 평화가 지켜질 수 있다는 사이비 환각 속에 자신을 가두려 할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평화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 민주평통자문회의의 상임위원회 10개 분과 중 하나였던 평화·법제분과위원회가 사라졌다. 분과위를 재조정했다고 하지만 평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분과위가 없다. 평화통일교육에서도 평화 관련 부분이 축소되거나 없어졌다. 평화 연구를 주로 해오던 지방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경우에는 이제 평화가 아닌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한 연구를 주문받았다고 한다. 권력에 기생하고 정권과 공생하는 세상이다.
정전 협정이 체결된 지 7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한반도는 평화 부재 상황이다. 지금까지 평화를 지켜왔고 이제부터 평화를 만들고 다져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여태껏 우리가 지켜왔던 것이 진짜 평화였을까? 지금 남북은 군사력만이 평화의 상수인 양 서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평화는 전쟁과 갈등의 없음이 아니라 평화 자체가 있는 상태다. 평화를 통해 전쟁을 방지하고 갈등을 다뤄야 한다.
사이비 평화주의자가 돼도 좋다. 광화문, 시청광장, 삼각지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의 옷깃을 끌며 이렇게 묻고 싶다. “평화를 아십니까?”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군사안보)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군사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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