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디지털 뱅크런’ 위기… 불안 대신 내실 다지는 계기 삼아야

2023. 4. 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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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동안 전 세계가 연쇄적인 은행 도산에 시달렸다. 처음은 그저 장난 같은 채팅에서 시작했을지 모른다. “우리 거래은행이 유상증자에 실패했다는데 혹시 망하는 거 아냐?” 이런 채팅을 주고받은 지 열흘 만에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1주일도 안 돼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스은행(CS)이 167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이어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주가가 급락했고, 미국 4대 은행인 웰스파고도 흔들렸다. 지금은 주춤하고 있지만 또 어떤 은행이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에 똬리를 틀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금융산업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 돈을 맡겨놓은 은행은 안전한지 마음을 놓지 못한다. 여기에 한마디로 답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불안한 상황이 이제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나쁜 소문만으로도 뱅크런 발생
게티이미지뱅크

은행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예금을 받아 이를 비싸게 빌려줘 수익을 올리는 회사다. 그런데 만일 예금자가 만기 전에 돈을 찾겠다고 하면 은행은 원래 주기로 했던 것보다 싸게 이자를 쳐주고(중도해지 이자) 돈을 돌려준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예금을 찾겠다는 사람들이 은행으로 달려올(뱅크런) 정도로 많은 경우, 이른바 예금 대량 인출 사태가 발생할 때다.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현금으로 이 인출 수요를 감당해내지 못하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번 미국 SVB 부도 사태도 여기에 해당한다. 먼저 SVB에 뱅크런이 발생한 원인으로 방만한 위험 관리가 지목되고 있다. 이 은행은 자산의 과반을 장기국채에 ‘몰빵’ 투자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격언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그것도 부채와 자산의 만기를 잘 헤아려야 하는 은행으로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금리 상승(채권값 하락)으로 보유 채권의 평가손실이 계속 느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 은행이 망한 직접적 원인은 스마트폰이다. 이상한 소문이 돌자 예금자들은 옛날처럼 은행으로 달려가지 않고 온라인뱅킹으로 순식간에 예금을 인출해 버렸다. 처음 9일 동안 420억 달러가 인출될 때까지도 담담히 중도해지 이익을 챙기던 이 은행은 열흘째 아침에 인출 요청된 예금 규모가 1000억 달러(전체 예금의 57%)에 달하자 손을 들고 말았다. 불안의 전파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것이다.

불안은 전염된다

미국 은행 서열 16위의 SVB가 부도나자 세계 금융시장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 불안감이 스위스의 CS로 집중됐다. CS는 과거 본 칼럼에서도 다룬 바 있듯이 무리한 경영으로 작년 4분기에만 약 1000억 달러의 예금이 이탈한 요주의 은행이었다. 마침 이 은행의 최대주주인 사우디국립은행이 규정상 CS에 대한 추가 지원이 어렵다는 인터뷰를 하자마자 사람들은 CS 주식을 투매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내용을 ‘위험’으로 해석한 것은 사람들이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스위스연방은행은 자금을 긴급 지원했지만 이틀 뒤 CS는 라이벌 은행(UBS)에 인수되고 말았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불안은 과거 CS와 비슷한 경영 형태를 보였던 독일의 도이체방크로 옮겨갔고, 최근 당국으로부터 거액의 제재를 받은 미국 웰스파고은행과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찰스슈왑 증권사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멀쩡한 금융회사도 얼마든지 망할 만큼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 불안에도 요지부동인 미 연준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해진 이유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금리가 계속 올라가게 되면 기업 매출이 줄어들고 돈이 돌지 않는 등 영향의 반경은 넓어지고 정도는 심해진다. 그리고 드디어 그 영향이 금융회사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가 긴축경영으로 전환할 것이므로 중앙은행이 굳이 금리를 올리지 않더라도 시중의 돈은 더 줄어들 것이다. 연준은 이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에 정책금리를 한 번 더 인상해 물가 안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물론 연준은 이번 뱅크런은 개별 은행 문제로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산되지 않을 걸로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은 개별 은행이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반면 우리는 거의 모든 금융회사가 잠재적 부실을 안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언론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과 이와 연계된 금융회사 연체율을 보도하고, 가계 대출과 자영업 대출이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신문을 보노라면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아직 불안에 휩싸이지 않았다. 예금을 보장한도까지 분산해 놓은 덕택도 있겠지만, 공연히 불안해하다 중도해지의 손실만 봤던 과거 경험이 반면교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당국은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관치(官治)라는 옛 방식에 집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금리 상승 영향이 통상 6개월에서 2년까지 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까지도 기준금리를 동결한다고 해도 적어도 1년간은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고 봐야 한다. 당장이야 부동산 규제를 풀고 예대금리를 낮추고 돈을 더 풀면 될 것 같지만, 코로나 시기에 보았듯이 그 돈은 생산적 부문으로 가기보다는 투기자산으로 몰리거나 외국으로 빠져나갈 공산이 크다. 성급한 미봉책은 불안을 더욱 키울 뿐이다. 지금은 고통스럽더라도 천천히 바람을 빼면서 내실에 충실할 때다.

안희욱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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