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경 칼럼] 이방인 대통령은 시대착오적 게토를 부숴야 한다
거인(巨人)의 생애를 당대의 안목으로 재단(裁斷)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부박한 포퓰리즘을 넘어선 용기와 성취를 놓치기 때문이다. 청년기에 “독재자 물러나라”고 외치다 옥고(獄苦)까지 치른 4·19 혁명 주역들이 우남(雩南)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그동안 오해가 많았다. 과오도 있었지만 공적이 더 많다”고 평가했다. 역사적 화해와 재평가에 63년이 걸렸다.
우남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항일운동에 헌신했고,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었다. 소작농을 내땅 가진 자작농으로 만든 농지개혁은 “최초의 경제 민주화 조치”(이장규 전 서강대 부총장)였고, 북한의 남침 때 공산화를 막았다. 기습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승부수로 내켜하지 않는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제2의 6·25’를 막아 경제강국 도약의 초석이 된 ‘신(神)의 한 수’였다. 그를 친미(親美), 친일(親日)로 낙인찍는 것은 무지(無知)와 협량(狹量)의 소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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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영남당’ 극우 목사에 휘둘려
민심 이탈…총선 참패 경고등 켜져
수도권·청년·중도 품는 전환 필수
이승만·이명박 재평가 힘이 될 것
」
우남은 자신의 몰락과 퇴장마저도 연약한 민주주의를 반석 위에 올리는 제의(祭儀)로 승화시켰다. 86세의 노(老)대통령은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문했다. 자신을 부정(否定)한 이들이지만 “부정(不正)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 이 나라는 희망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며 깨끗하게 하야(下野)했다. 그런 우남과 마주한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는 “각하는 미국의 조지 워싱턴입니다”라고 경의를 표시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3학년이었던 이영일 전 의원은 참배를 마치고 “독재자 프레임을 씌울 이유가 없어졌다”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수감 중 젊은이들로부터 수천 통의 위로 편지를 받았다. 광주의 고3 학생은 “사과드린다. 광우병 시위에 참가한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쁜 대통령으로 알았는데 업적을 돌아보니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최고의 대통령으로 존경한다”고 했다. 그는 퇴임 후 서울대생의 투표에서 ‘존경하는 대통령’ 1위로 선정됐다.
이승만·이명박을 잇는 보수 지도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년을 앞두고 위기를 맞고 있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동반 추락했다. 민심과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수도권 민심을 대변하는 안철수·이준석이 밀려났다. 중도와 청년에 강한 인물들이다. 당대표와 정책위의장이 PK, 원내대표가 TK인 '도로 영남당'이 됐다. 수도권·청년·중도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 최악의 구도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은 필패다.
이 판국에 극우인 전광훈 목사 광풍(狂風)까지 불고 있다. ‘태극기 부대의 총사령관’인 그는 황교안 전 대표와 손잡고 지난 총선을 참패로 이끈 주역이다. 그는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우리가 김 의원 밀었잖아” “김기현 장로도 밀었잖아” “우리가 200석 만들어 주면 뭐 해줄래”라고 묻는다. “목사님이 원하시는 걸 관철시키도록 하겠다”는 다짐이 돌아왔다.
이 무슨 황당한 거래인가. 전 목사 추종자들이 권리당원으로 가입했고, 당은 3·8 전당대회 전에 ‘여론조사 30%, 당원 투표 70%’였던 경선 룰을 ‘100% 당원 투표’로 바꿨다는 사실을 알면 비로소 이해가 간다. 이러니 민심과 불화하는 시대착오가 일상이 된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반대한다”고 했다. 태영호 최고위원은 “4·3 사건은 김일성 지시”라고 했다. 산불이 났는데 강원지사는 골프 연습을 하고, 충북지사는 술자리에 갔다. 권력에 취해 정신줄을 놓고 있다.
‘굴러온 돌’ 윤석열 대통령만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 정권이 엄두를 못 낸 강제징용 해법을 과감하게 제시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섰고, 인기 없는 노동·연금·교육개혁에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박힌 돌’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되는 일이 없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지만 재·보궐선거 패배를 막지 못했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의 지도자여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 황당한 가짜뉴스인 광우병 사태로 지지율이 추락하자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으로 급선회했다. 진보 성향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호남 출신의 합리주의자 김황식 전 감사원장을 차례로 총리에 기용했다. 덕분에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마지노선이라는 ‘지지율 40%’를 돌파했다.
윤 대통령은 편한 자리에서 “서울대 본고사에 아주 어려운 기하 문제가 나왔는데 보조선을 그어 보니 쉽게 풀려서 합격했다”고 했다. 민심과 불화하는 집권세력의 분위기를 통째로 바꾸는 보조선도 그으면 좋을 것이다. 부당하게 폄하됐지만 마침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한 이승만·이명박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힘이 날 것이다. 아직 4년이 남았고,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신세진 것 없는 이방인(異邦人) 대통령 특유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 집권세력이 스스로를 감금하는 시대착오적 게토(Ghetto)를 부숴야 한다.
이하경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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