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와도 수비수 멀뚱멀뚱…애들도 승부조작, 충격의 中 축구비리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중국 축구 관료 줄줄이 체포
중국 축구의 비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축구국가대표 감독부터 중국축구협회장, 기업, 정부 고위 간부까지 줄줄이 체포됐다. 승부조작과 뇌물, 돈벌이로 연결된 중국 축구계의 ‘검은 사슬’은 전대미문의 ‘축구 게이트’로 부상했다. 중국인들은 “썩은 배추보다 못하다”며 비난을 쏟아냈고 14억 중국 축구의 수준에 한탄했다.
유소년 축구 단계에서부터 비리 의혹이 불거지니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8월 중국 유소년(U15) 축구대회 광저우(廣州)시와 칭위안(淸遠)시의 결승전. 전반전까지 1대1로 팽팽하던 상황은 후반 들어 칭위안 팀이 2골 연속 득점하며 3대 1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멀뚱멀뚱 수비수에 의혹 폭발
공정했다면 별다른 관심을 끌지 않았을 청소년 축구 경기였다. 그러나 경기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승부조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장면에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했다. 비난 여론이 폭발하자 중국축구협회가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석 달 뒤, 축구협회는 승부조작 사실을 확인했다며 광저우 축구협회의 회원 자격을 2년간 박탈했다. 광저우 축구협회장, 헝다(恆大) 축구학교장과 부교장, 감독과 수석코치 등 10여 명이 문책받았다.
이 사건이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는 경기에서 승리했던 광저우 팀이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인 헝다가 키우는 유소년 축구팀이었기 때문이다. 광저우헝다는 중국 프로 축구 최상위권 팀이기도 했다.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유소년 팀이 실력이 아닌 돈으로 상대 팀과 심판을 매수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었다. 중국 축구의 꿈나무들이 어린 나이부터 돈에 매수되는 경기를 보고 성장한다며 과연 제대로 된 선수가 될 수 있을까.
국가대표 감독도 승부조작 혐의
그의 혐의에 대해 중국 매체들의 보도가 쏟아진 가운데 북경청년보는 프로 축구 승부 조작 사건과 연관돼 있다고 분석했다. 2019년 당시 중국 프로축구 1부 리그 우한팀 감독이었던 리톄가 2부 리그 강등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에서 상대팀 골키퍼에게 뇌물을 주고 승부조작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다수의 의심쩍은 경기로 우한 팀의 성적을 끌어올렸던 리 감독은 5년간 1억8000만 위안(약 34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재계약에 성공했다.
이미 5개월째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리톄 사건과 연루된 이들은 최소 27명에 이른다. 프로축구 선전팀 전·현직 구단주. 허베이팀 스폰서 업체 간부, 전직 축구 국가대표 선수 4명, 지역팀 선수 등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상태다. 선전팀, 허베이팀은 리 감독이 거쳤던 프로구단들이다.
“선수 연봉 올려주고 일부 챙겨”
리 감독은 승부조작 뿐 아니라 선수들의 연봉을 올려준 뒤 일부를 챙겼고, 국가대표팀 감독의 권한을 악용해 실력보다 친분이 있는 소속사의 선수들을 기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불길은 윗선으로 옮겨붙고 있다. 지난 1월 16일 류이(劉奕) 중국축구협회 사무총장이 해임됐다. 중앙기율위 조사 대상에 포함되면서다. 중국 매체에선 류이가 3개월간 협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부인이 그의 숨겨진 업체를 운영하다 함께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음날엔 천융량(陳永亮) 축구협회 사무차장도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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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프로리그는 모두 승부조작”
같은 날 산둥(山東) 프로축구팀 선수 우싱한(吳興涵 )이 “중국 프로리그는 모두 승부조작이며 한 경기에 40만 위안(약 76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말한 소셜미디어 발언 내용이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검열이 심한 중국이지만 이같은 내용과 관련 보도는 현재까지 삭제되지 않고 있다. 당사자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조직의 비리를 감시해야 할 왕샤오핑(王小平) 축구협회 징계위원장과 황송(黃松) 축구협회 경기부장도 중앙기율위의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경기 규칙부터 시합 일정과 운영, 승부 조작 등을 책임진 고위 관리들까지 전부 비리 의혹과 연결돼 있었다. 중국축구협회 전체가 축재와 비리의 온상이었던 셈이다.
中 축구 최고위직까지 번져
두 달 전 천쉬위안 중국축구협회장이 연행됐을 때 두자오차이는 당국의 방침을 존중해야 한다며 무관한 척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젠 비리 자금의 통로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예선에서 중국 대표팀은 최약체라던 오만에까지 0대2로 패하며 아시아 국가 순위 10위에 그쳤다. 중국 매체에선 “답 없는 중국 축구는 땅 속에 처박힌 썩은 배추만도 못하다”는 중국 국민의 자조적인 반응까지 등장하고 있다.
베이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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