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유토피아의 정원 섬, 보길도 원림
보길도는 가보기 어려운 곳이다. 해남 땅끝에서 배를 타고 노화도로, 다시 연도교를 건너야 하는 먼 섬이다. 400여 년 전 당대의 풍류가 윤선도는 섬 곳곳에 정원을 만들어 이 섬을 ‘세상 밖 비경’으로 바꾸었다. 고향 해남을 떠나 제주도로 가던 중 수려한 풍광의 보길도를 발견하고 “하늘이 나를 기다려 이곳에 머물게 한 것”이라 하며 원림(園林) 경영을 시작했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살림집 낙서재와 부속정원 곡수당이 있는 부용동, 그 건너편 산에 개인 수양처로 조성한 동천석실, 그리고 해안에 위치한 본격적인 정원 세연정 일대다.
낙서재는 소박한 주택이지만 그의 아들이 조성했다는 곡수당은 흐르는 물을 주제로 연출한 독창적인 정원이다. 인공 폭포로 끌어들인 물줄기를 인공 못에 가두었다 흐르게 한다. 그 위로 3개의 다리를 걸어 이리저리 넘나들며 물의 소리와 일상의 흐름을 즐겼다.
동천석실은 한 평 남짓의 작은 차실 건물이다. 그러나 오르는 길은 돌다리·돌문·돌폭포·돌사다리·돌연못 등을 조성한 거대한 자연형 정원이다. 석실에 앉으면 부용동 일대의 풍광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용두암에 설치했던 도르레로 차를 날랐고, 차바위에서 차를 마시며 호연지기를 길렀으리라.
세연정 일대에는 인공 보를 막아 큰 못을 만들고 인공 섬과 정자를 세웠다. 그럼에도 너무 자연스러워 가장 빼어난 한국의 정원으로 꼽힌다. 연못에 아동을 태운 배를 띄웠고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부르게 했다. 노래에 맞추어 무희들은 동대와 서대 위에서 춤을 추었고, 악단은 앞산 중턱 바위에서 음악을 연주했다. 윤선도가 지은 한글 시조들은 국문학 사상 최고로 꼽히는데, 그 대표작들이 해남과 보길도에서 창작되었다. 그는 80 생애의 절반을 유배와 은거로 지낸 풍운아였다. 보길도는 모진 세속의 시름을 잊기 위한 개인의 원림이었지만, 현재도 여전히 세상에 다시 없을 예술적 이상향으로 우리 모두에게 남아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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