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고대 그리스의 두 여성상
고대 그리스의 영웅이라 하면 보통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우스 같은 남성적 인물들을 떠올지만 그리스 신화에는 수많은 여성 영웅들도 등장한다. 그중 대표 격인 헬레나와 페넬로페는 각각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여주인공으로, 상반되는 그리스의 여성상을 상징한다. 제우스신의 딸인 헬레나는 남편인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를 버리고 젊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눈이 맞아 달아난, 말 그대로 ‘나쁜 여자’의 원형이다. 헬레나를 찾아오겠다는 명분으로 일어난 사건이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리스인들은 헬레나를 진실한 영웅으로 추대하고 그의 신적인 아름다움을 숭배했다. 여성의 권리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사회에서 애정과 마음을 따라 행동하는 그의 추진력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이타카의 여왕 페넬로페는 한마디로 그리스의 춘향이다. 남편 오디세우스가 10년간 트로이 전쟁에서 싸우고, 또 10년에 걸친 모험적인 귀향을 하는 동안의 긴 세월을 일편단심으로 기다렸다. 페넬로페도 미녀로 유명했고, 영리하다는 명성도 떨쳤다. 비판할 여지도 있다. 그 20년 동안 성년이 된 아들 텔레마코스는 왕의 자리를 이어받지 못했고, 청혼을 빌미로 궁전에 눌러앉은 108명의 구혼자가 왕실의 부를 다 써버리는 걸 방치했으니 무책임한 왕비이기도 했다.
내가 가르치는 ‘그리스의 영웅들’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헬레나와 페넬로페 중 어떤 여성상이 더 이상적인지를 묻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날이 갈수록 여학생들이 페넬로페를 더 지지하는 경향이 보인다. 1970년대 『비행공포』라는 소설로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페미니스트 작가 에리카 종이 근래에 한 불평이 생각났다. “우리 세대의 모토는 섹스와 자유였는데, 우리 딸들은 오히려 아기 낳고 가정을 꾸려 나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어느 선상에 있는지를.
김승중 고고학자 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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