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가는 길이 아시아 축구 역사다

송지훈 2023. 4. 1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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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31·토트넘)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개인 통산 100호 골 고지에 올랐다. ‘축구 변방’이라 여겨지는 아시아 출신 공격수로 각종 편견과 차별을 딛고 이룬 성과라 더욱 값지다.

손흥민은 9일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끝난 브라이턴과의 2022~23시즌 EPL 30라운드 홈 경기에 선발 출전, 전반 10분 골을 터뜨렸다. 올 시즌 정규리그 7호 골이자 컵 대회를 포함한 시즌 11호 골. 손흥민의 선제 득점을 앞세운 토트넘은 후반 해리 케인의 추가 골을 묶어 2-1로 승리하며 4위 뉴캐슬과 승점(53점)이 같은 5위를 유지했다. 다음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출전 마지노선인 4위 싸움의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9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100호 골을 터트린 뒤 양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손흥민. 최근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세리머니다. [AFP=연합뉴스]


통산 100번째 득점은 손흥민 특유의 득점 방정식을 고스란히 적용해 만들어냈다. 상대 진영 왼쪽 페널티박스 모서리 부근에서 볼을 잡은 뒤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골대 오른쪽 구석을 꿰뚫었다.

■ ◇프리미어리그 100골 이상 주요 선수

「 1 앨런 시어러 260골 441경기 블랙번, 뉴캐슬
2 웨인 루니 208골 491경기 에버턴, 맨 유
3 해리 케인* 206골 312경기 노리치시티, 토트넘
4 앤디 콜 187골 414경기 맨 유 등 6팀
5 세르히오 아구에로 184골 275경기 맨체스터 시티
6 프랭크 램파드 177골 609경기 첼시 등 3팀
7 티에리 앙리 175골 258경기 아스널
8 로비 파울러 163골 379경기 리버풀 등 4팀
9 저메인 데포 162골 496경기 토트넘 등 5팀
10 마이클 오언 150골 326경기 리버풀 등 4팀
12 로빈 판페르시 144골 280경기 아스널, 맨 유
15 모하메드 살라* 132골 221경기 첼시, 리버풀

31 디디에 드록바 104골 254경기 첼시
32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103골 236경기 맨 유
33 맷 르티시에 100골 270경기 사우샘프턴

손흥민* 100골
*는 EPL 소속 현역 선수

지난 2015년 레버쿠젠(독일)을 떠나 토트넘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손흥민이 EPL 무대에서 100골을 쌓아 올리기까지는 8시즌 260경기가 필요했다. 햇수로는 7년 6개월 26일, 날짜로는 2757일 만이다. 지난 1992년 출범한 EPL에서 통산 100골 고지에 오른 선수는 34명뿐이다. 손흥민은 통산 34번째이자 잉글랜드 국적이 아닌 선수로는 14번째, 아시아 선수 중에서는 최초로 100호 골 기록을 세웠다.

역대 1위는 앨런 시어러(260골)이며 웨인 루니(208골)와 해리 케인(206골)이 이 부문 2~3위를 달리고 있다.

EPL 데뷔골

유럽 무대에 도전한 아시아 선수들은 대개 ‘빠르고 근성이 뛰어나지만, 피지컬과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선입견과 싸운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종종 인종차별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손흥민이 쌓은 100골은 ‘아시아 선수’라는 타이틀의 한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몸으로 부딪쳐 싸워온 흔적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경쟁하는 EPL 무대에서도 톱클래스로 인정받는 테크닉과 골 결정력, 지능적인 움직임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지난 시즌 23골을 터뜨리며 EPL 득점왕에 올라 아시아 선수도 축구의 심장부에서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손흥민은 “내 경기를 지켜보며 모든 아시아 선수들, 특히 한국 선수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길 바란다”면서 “아시아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온 몸으로 골 넣은 손흥민

영국 주요 매체들도 손흥민의 대기록 달성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BBC는 “손흥민은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도 최고(top man, top player)”라면서 “지난 2015년 토트넘에 합류한 이후 한결같이 겸손하고 긍정적인 성격을 유지하며 최고의 선수로 꽃을 피웠다”고 칭찬했다.

토트넘 동료들도 경기 종료 직후 라커룸에서 손흥민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대기록 달성을 축하했다. 뒤늦게 손흥민과 마주한 케인은 뜨거운 포옹을 하면서 격려했다. 옛 동료 무사 시소코(낭트)는 “손흥민은 항상 주위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한다. 특히나 패배를 포함해 팀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훈련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 언제나 가장 집중하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손흥민의 득점이 터진 직후 EPL 사무국과 토트넘 구단은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한편 손흥민은 이날 통산 100호 골을 터뜨린 이후 특유의 사진 찍기 세리머니 대신 하늘을 가리키는 동작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최근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마음을 다잡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몇 주간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면서 “내 골을 할아버지께 바친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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