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포맨, 기성세대 우울함 대변… 2030이 더 공감해요”
50대 돌싱(돌아온 싱글) 남자 네 명이 모여서 인생 이야기를 한다. 때론 짠하면서 웃기다. 아직 50대가 돼보지 못한 이들도 공감할 수 있는 그냥 사는 이야기. 이혼과 사업 실패, 과거의 과오라는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이들을 보며 ‘사는 건 똑같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마치 ‘이 정도는 인생에서 별 것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SBS 간판 예능 ‘신발 벗고 돌싱포맨’은 2030세대의 지지를 받는 프로그램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네 명의 입담이 재밌기 때문이다. 유튜브 조회 수로도 SBS 예능 중 톱 순위에 든다. 인기 클립은 조회 수가 수백만 회에 달한다. 2021년 7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의 연출은 백수진 PD가 맡았다. ‘정글의 법칙’을 오래 했던 백 PD는 ‘미운우리새끼’를 연출하다가 돌싱 출연자인 김준호 탁재훈 임원희 이상민의 케미를 눈 여겨봤다. 처음엔 9회차까지 예정됐던 ‘돌싱포맨’은 인기에 힘입어 정규 편성됐다.
지난달 8일 서울 마포구 SBS 프리즘 타워에서 만난 백 PD는 “네 명의 멤버가 기성세대의 우울함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의 토크가 40, 50대까지 통할 것 같았다”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배경을 회상했다. 백 PD의 예상보다 더 젊은 세대도 프로그램을 즐겨줘 기뻤다고도 했다. “어떤 분이 ‘돌싱포맨’을 분석해주셨는데 ‘솔직한 지질함’이 역설적으로 유쾌함과 통쾌함을 준다고 표현하셨어요. 저의 생각도 그래요. 지질함은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갖고 있잖아요. 외롭기도 하고 지질한 면모도 있고. ‘돌싱포맨’을 보면서 ‘한때 잘나가던 사람들도 저런 고민이 있네’하고 느끼게 되는 점이 시청자의 마음을 동하게 한 것 같아요.”
게스트도 다양하게 초대한다. 11년차 잉꼬부부가 나오기도 하고 50, 60대에 신혼을 맞이한 이들도 나와 돌싱포맨과 입담을 펼친다. 아직 싱글인 연예인이나 화제의 인물도 나와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백 PD는 프로그램의 이름 때문에 게스트를 섭외할 때 어려움이 종종 있다고 했다. ‘돌싱’이란 단어가 들어가다 보니 당황하거나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관계자분이) ‘저희 배우는 돌싱이 아닌데’라거나 ‘아이돌이 괜히 나가서 돌싱 이미지 겹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아직 프로그램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출연진이 티격태격하는 장면은 ‘돌싱포맨’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인생의 쓴맛을 한 번씩 맛본 이들이 서로 자기가 좀 더 낫다며 비교하면서 고성이 오가는 장면이 재미를 준다. 이 과정에서 다소 거친 단어가 나오기도 한다. 시청자가 이들의 말투나 단어에 반감을 가지지 않게 하는 게 백 PD의 몫이다. 주로 자막이나 음악으로 분위기를 좀 더 둥글게 매만져준다. 그는 “네 사람의 거친 말투를 귀여운 폰트의 자막으로 표현하면서 싸우는 것 같은 장면을 철없는 아저씨들의 귀여운 싸움으로 표현하게 됐다”고 전했다. 자막 편집에만 꼬박 하루가 걸리곤 했다.
중년 남자들의 대화다 보니 수위가 높을 때도 있다. 과거 결혼 생활이나 배우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제작진도 편집할 때 다소 조심스럽다. 백 PD는 “촬영장에서 더 깊은 얘기가 나오지만 방송에 못 내보는 것도 있다”며 “전 배우자나 그 가족과 연관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혹시 말이 왜곡될 수도 있어 걷어낼 때가 있다”고 말했다.
‘돌싱포맨’의 촬영은 출연진의 집에서만 이뤄졌다. 그러다 팬데믹 상황이 풀리면서 최근 괌 여행을 간 회차가 방영됐다. 최근에는 영화관, 족발집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확장됐다. 백 PD는 “제목도 ‘신발 벗고 돌싱포맨’이니까 집에서 촬영했지만 점점 좁은 공간에서 60분 분량을 내는 게 힘들어졌다”며 “앞으로는 해외나 국내 여행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가까운 일본이나 울릉도에 촬영을 가는 방안도 고심 중이다. 그는 “(출연진이) 너무 편한 공간보다는 혹독하고 힘든 상황에 부닥쳐졌을 때 더 빛나는 것 같다는 걸 괌에서 느꼈다”며 “그런 힘든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는 7월 2주년을 맞는 ‘돌싱포맨’이 시청자에게 어떤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길 바라는지 물었다. 백 PD는 “그냥 오늘 얼마나 웃기려는지 기대되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한다”고 대답했다. 회사에서 지친 채 퇴근한 사람들이 잠들기 전에 보고 ‘정말 재밌었다’하면서 잠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돌싱포맨’으로 인한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이혼을 쉬쉬하고 수면 위로 올리지 않던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었다. “돌싱이 흠이 있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아는 이상민, 탁재훈 같은 연예인도 이혼했고, 허울 없이 이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돌싱들이 부담감을 많이 내려놨다고 생각해요. ‘돌싱포맨’도 이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을 만드는 데 약간 일조를 했지 않았을까 싶어요.”
백 PD는 원래 학창 시절 쇼트트랙을 했다. 운동하면서 힘들 때 그에게 힘을 준 건 웃기고 재밌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그도 사람들을 웃기게 할 수 있는 걸 만들고 싶었다. 운동을 그만두고 PD가 되기 위해 준비했다. 대학에 가서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피시방에서 일해보고, 술집에서 호객행위를 하면서 취객도 마주했다. “제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 웃기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웃겨야 할 거잖아요. 그래서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또 제가 다양한 것들을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해보려고 했어요.”
‘정법’ 이후 ‘미우새’에 이어 ‘돌싱포맨’까지 실내 촬영이 길어지다 보니 슬슬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물론 ‘정법’은 그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백 PD는 “그땐 ‘현타’(허무함을 느끼는 순간)가 많이 왔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나왔는데 늪에 빠지고 꽃게에게 물리고 4일째 못 씻고 코모도에 쫓기고 하면서 그랬죠. 하지만 그런 오지에서는 한국에 있었다면 절대 못 봤을 어마어마한 대자연을 볼 수 있었어요. 사막 너머에 달이 떠 있고 그 앞에 낙타가 지나가는 황홀한 광경 같은 거요. 미크로네시아의 무인도에서 만화에서나 봤던 오아시스를 만나고, 그 앞에 야자수와 에메랄드빛 해변이 펼쳐져 있는 장면을 마주했을 때는 정말 이곳을 또 한 번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하고 느낄 정도로 좋았어요.”
백 PD는 “팬데믹 이후 여행 프로그램이 부활하고 있지 않나. 한국 사람 이 한두 명 왔을까 말까 하는 곳들을 유쾌하게 가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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