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흙파가며 모든 것 쏟아… 8년 노력의 결실 눈물”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5층에는 오픈런 줄이 길게 이어졌다. 오픈런 행렬의 목적지는 ‘노티드월드’. 인파는 빠르게 늘었고 오픈시간까지 30분 만에 200명가량이 몰렸다. 가장 트렌디한 외식기업 GFFG의 대표 브랜드, 노티드의 플래그십스토어인 노티드월드는 오픈 첫날부터 이렇게 ‘빵’ 터졌다. 노티드월드가 문을 열기 직전까지 기대와 회의가 섞인, 반신반의의 전망이 많았다. 트렌드 변화에 한 발 앞서 대응하는 20~30대 사이에서는 ‘언제 적 노티드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석촌호수의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문을 연 노티드월드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제대로 통했다. ‘역시 노티드’라는 반응이었다.
트렌디한 맛집 브랜드를 유치하는 건 백화점 업계가 사활을 걸고 뛰어드는 사업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 인기 브랜드를 유치하기까지의 시간이 간단치 않았으리라는 건 짐작할 만하다. 노티드월드를 롯데월드몰에 입점시키고 매장을 완성해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대중이 열광하는 화려한 공간, 그 뒷단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지난 4일 노티드월드에서 롯데백화점 양현모 델리앤스낵 치프바이어, 강희원 바이어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노티드월드가 문을 열었을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바이어로서 희열 같은 걸 느꼈어요. 저로서는 8년간의 노력과 인연을 이어가면서 결과물을 낸 거라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양현모)
‘8년간의 노력’이라니 무슨 말일까. GFFG는 2014년 처음 외식사업을 시작해 다운타우너(수제버거), 노티드(도넛), 호족반(퓨전한식) 등의 브랜드를 성공시키며 가장 잘 나가는 외식기업 중 하나가 됐다. 양 치프바이어는 GFFG의 시작부터 눈여겨보면서 함께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GFFG는 메뉴뿐 아니라 공간과 콘텐츠로 변화를 주는, 매력적인 브랜드라 협력하면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짝사랑하다시피 좋아하던 브랜드”라고 말했다.
양 치프바이어는 2015년 즈음 이준범 GFFG 대표에게 수시로 찾아갔다. 이슈가 있어도 갔고, 아무 일이 없어도 갔다. 그러기를 8년, 롯데백화점과 GFFG는 지난해 5월 노티드월드를 석촌호수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롯데월드몰 5층과 6층에 복층 구조로 꾸리기로 계약했다. 꾸준히 관계를 이어오며 쌓은 오랜 신뢰관계가 협업의 성사로 이어진 셈이다.
노티드월드가 문을 열기까지 준비 기간은 약 1년 정도였다. 그동안 양현모, 강희원 두 바이어가 GFFG 관계자들과 만난 횟수는 200번 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일주일에 2~3번 이상은 만나서 머리를 맞댔다. “정말 자주 만났어요. 도면을 검토하고 매장 레이아웃을 검토하는 것, 두 회사의 입장을 조율하고 의견 차이를 좁혀가는 것, 팝업스토어 준비 등 해야 할 게 정말 많았거든요.”(강희원)
노티드월드는 서수현, 초곡리, 글로리홀 등 MZ세대가 열광하는 작가들과 협업을 했다. 공간 곳곳이 디자인이고 작품이다. 양 치프바이어는 “멋있는 곳에서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 대중이 열광하는 지점은 거기에 있다”며 공간 디자인에 힘을 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맛의 기본도 중요하지만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 문화와 스토리를 입혀서 브랜딩이 잘된 곳에 눈길이 간다”고 귀띔했다.
근사한 공간에서 감회에 찬 인터뷰를 하던 도중 강 바이어는 ‘손으로 흙을 팠던 기억’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작년 8월 노티드 팝업스토어를 준비하던 밤입니다. 노티드 푸드트럭이 롯데월드몰 1층으로 들어와야 했는데 높이가 맞지 않았어요. 진입이 안 되는 거예요. 일단 바퀴의 바람을 뺐죠. 그래도 5㎝가 걸렸어요. 고민 끝에 ‘흙을 파내자’ 했죠. 한밤중이라 도구도 없고, 저희 둘이 그냥 손으로 흙을 막 파냈습니다.”(강희원)
바이어는 MD(merchandiser)라고도 불린다. MD는 ‘모든 걸(M) 다한다(D)’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맨손으로 흙 파기 정도는 굉장히 있을 법한 일이라는 듯, 강 바이어는 “그때는 힘들다는 생각보다 문제를 해결해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팝업스토어 행사는 20만명 이상이 다녀간 성공적인 이벤트였다.
백화점의 맛집 유치는 단숨에 되지 않는다. 노티드월드 유치가 길게는 8년 노력의 결실인 것처럼 문턱이 높은 곳일수록 공을 들여야 한다. 비법이 있느냐고 물으니 “진정성을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다”(양현모)고 했다.
“한 유명한 셰프님과 같이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분이 아침을 잘 못 드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유를 매일 가져다 드렸어요. 직원이 25명 정도 됐는데 직원분들 것도 챙기고요. 식당이 바쁘면 설거지도 하면서 돕고요. 그런다고 무조건 일이 성사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정성을 보여드리면 언젠가는 알아주시더라고요.”(양현모)
눈도장을 찍고 정성을 들여도 거절당할 수 있다. 아니, 거절은 다반사다. 그런데도 그렇게까지 정성을 다해야 하나. 이런 의문이 들 수 있겠다. 하지만 강 바이어는 “음식을 좋아하고, 트렌드나 핫플레이스도 좋아해서 ‘덕업일치’(관심사와 직업이 일치한다)를 한 사람들이 에프앤비(Food & Beverage) 바이어”라고 했다. 그래서 바이어는 멘탈 관리도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거절당하는 게 흔한 일이라 바이어들 사이에서는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도 했다.
맛집 유치에 이토록 공을 들이는 것은 왜일까. 요즘 소비자들은 희소성에 열광한다. ‘하나뿐인’ 노티드월드가 롯데월드몰을 방문할 이유가 되는 셈이다. 백화점이 맛집을 입점시키려는 것은 이런 특별함에 있다.
“매출도 중요하지만 집객 효과도 중요하게 봅니다. ‘가보고 싶은 곳’이 만들어지면 멀어도 찾아와요.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리고요. 그러면서 다른 곳도 둘러보고 쇼핑도 하고 즐기는 거죠. 백화점이나 몰 입장에서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겁니다.”(양현모)
바이어 입장에서는 보람찬 일이라고도 했다. 강 바이어는 “에프앤비 분야의 최전선에서 트렌드를 이끈다는 보람이 있다”며 “매력적인 브랜드가 하나 들어오면 백화점이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게 있다. 가치를 올리는 데 역할을 한다는 게 도전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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