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도 야도 속앓이하는 ‘양날의 칼’ [신율의 정치 읽기]
“적대적 대결 정치의 극단으로 달려가는 진영 사이에서 ‘무당파’로 불리는 전에 없이 드넓은 바다가 우리가 들어야 할 최우선의 민심이다.”
더불어민주당 내 비명계에 속하는 송갑석 최고위원이 한 말이다. 이 말은 현재 민주당이 가야 하는 길은 중도층을 포용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기 힘든 상황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이런 고민은 민주당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양당 모두 이른바 ‘강성 지지층’ 문제로 내심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 3월 12일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전광훈 목사의 ‘광화문 전국 주일 연합 예배’에 참석해 자신은 5·18 정신 헌법 수록에 반대하며, 헌법 수록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국민의힘을 비롯한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왔다. 파장이 커지자 김재원 최고위원은 사과하면서, 5·18 정신 헌법 수록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던 김 최고위원은 3월 25일 미국의 한인 보수 단체인 ‘북미자유수호연합’ 주최 강연회에서 “전광훈 목사께서 우파 진영을 전부 천하통일해서 요즘은 그나마 광화문이 우파 진영에게도 민주노총에 대항하는 활동 무대가 됐다”고 언급했다. 한마디로 강경 우파 덕분에 지금의 보수가 존재한다는 식의 발언이다. 해당 발언이 또다시 문제가 되자 “전광훈 목사의 ‘전’자도 꺼내지 않겠다”고 또 사과했다. 문제의 발언을 했다 사과하는 패턴의 반복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잘못된 발언에 대응하는 국민의힘 지도부 반응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경고’는 했지만 징계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극단적 목소리를 싫어하는 중도층을 의식한다면, 이런 발언에 대해 당연히 신속하고 강경하게 대응을 해야 했다. 과거 이준석 전 대표 발언에 대해 ‘신속하게’ 움직인 모습을 상기하면, 신기하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을 보인 이유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상정할 수 있다.
첫째, 이제 막 출범한 김기현 대표가 초기부터 당 지도부 일원을 징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처음부터 삐걱대는 모습을 보여주면, 이후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일단 김재원 최고위원 문제를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징계를 내린다고 해도 당원권 정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다. 이 정도로는 징계를 하고도 여론 질타를 받을 수 있다.
세 번째, 이유가 중요하다. 김재원 최고위원에 대해 징계를 내리면 당내 강경파 당원이 크게 반발할 것이고, 이들이 반발하면 고정 지지층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는 이른바 ‘개딸’ 문제를 놓고, 친명과 비명 간 갈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비명은 ‘개딸’ 공세 때문에 제대로 업무를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친명 의원들은 개딸을 일종의 프레임으로 본다. 친명계 김남국 의원은 “적극 지지층은 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에도 있고, 오히려 국민의힘 (적극 지지층)이 민주당보다 훨씬 더, 10배 이상 욕설하고 비하하고 쫓아다니면서 폭력 행사하고 이런 사람이 많다. 우리 지지자들은 그런 사람이 아마 일부일 것인데, 자꾸만 보수 언론과 국민의힘에서 ‘개딸’ 프레임을 만들어 민주당 지지자를 뭔가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이고 무지성적이다’라는 식으로 폄훼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재명 대표는 당내 강경파 당원에게 자제를 호소하고는 있지만, 친명계 의원의 이런 분위기를 보면 당내 강성 지지층 목소리가 쉽게 잦아들기는 힘들 것 같다. 민주당의 이런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강성 지지층과 정치인의 팬덤이 정당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는 이재명 대표는 이들의 강경한 목소리를 통해 당내 입지를 보다 확고히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강경한 목소리는 침묵하는 다수를 압도한다. 그렇기에 이들 목소리가 곧 여론이라고 착각할 수 있고, 이재명 대표의 당내 입지가 탄탄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들 강성 지지층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반대편에 있는 정치인 혹은 계파를 대신 공격해준다. 따라서 해당 정치인은 자신의 반대파를 굳이 공격할 필요가 없어진다. 오히려 관대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내 친명들은, 강성 지지층 존재를 ‘소중한 당의 자산’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때 딜레마는 있다. 강성 지지층만 갖고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이다.
총선 승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는 중도층이다. 지난 3월 31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3월 28일부터 3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은 10.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우리나라 유권자의 주관적 정치 성향은 보수 31%, 중도 성향 평가 유보가 43%, 진보가 26%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탄핵 이전인 2016년의 이념 지형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탄핵 직후에는 진보가 급속히 증가했는데, 현재는 진보가 다시 줄어들고 반대로 보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해당 여론조사의 정당 지지도를 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33%로 똑같다. 이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은 현재 중도층 지지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민주당은 중도층의 일부 지지를 받고 있다. 결국 국민의힘의 지지층 외연 확장성은 민주당보다 떨어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안심해도 될까? 그렇지 않다.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현재의 지지율을 갖고는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 양당 모두 중도층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 양당의 딜레마가 있다. 양당 모두, 극단적인 정치 성향을 혐오하는 중도층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당내 강성 지지층 목소리를 잦아들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럴 경우, 강성 지지층 불만이 커지면서 고정 지지층이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이재명 대표 딜레마가 크다. 총선에서 패배하면 이 대표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릴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중도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중도의 지지를 받기 위해 강성 지지층 목소리를 누를 경우 당내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총선까지는 앞으로 1년가량 남았다. 우리나라 정치판은 워낙 별의별 일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떤 선거 구도가 형성될지는 알 수 없다. 작금의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당연히 양당 모두 기회는 있다. 그 기회를 어떻게 살리는가가 총선의 승패를 가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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