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도 안 쓰던 제가 나이 일흔에 소설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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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택주 기자]
▲ 한글꽃을 피운 소녀 의병 북토크 왼쪽 권오준 생태동화작가. 오른쪽이 필자. |
ⓒ 권해진 |
나이 일흔에 그만, 사고를 하나 쳤습니다. 아이들이 읽는 얘기책을 펴냈거든요.
<한글꽃을 피운 소녀 의병>이라고 임진왜란을 다뤘습니다. 세종임금이 온 힘을 기울여 만들었으나 가장자리로 떠밀린 한글이 나라를 살리는 데 한몫을 톡톡히 한다는 얘기입니다. 한글뿐 아니라 백정을 비롯해 놀이패나 방물장수, 늙은이 거기에 조선으로 귀화한 일본 군인들까지 나라 살리는 데 팔 걷고 나섭니다.
여리고 서툴기 그지없을 아이들도 한몫합니다. 팔을 쓰지 못하거나 다리를 저는 아이까지도 뛰어듭니다. 한데로 떠밀린 이들이나 하찮다고 내쳐진 것들이 나라 살림에 목숨 걸고 나섰다는 얘기입니다.
비밀병기 한글은 붓에 실려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연장으로 싸움터에 나섭니다.
"하얀 해 검 하늘 어울리어 낳은 땅 / 어우렁더우렁 서로 살려라 / 일깨우신 큰 뜻, 품어 새긴 그 이름 / 아사달 아사달! // … 동무야 모여라! 내남없이 나서자! / 우리나라 사람 힘껏 지키자! / 어울려 나서는 우리가 곧 담이다 / 무찔러 일본군..."
"...이 원수들을 어찌 그냥 둘 수 있겠습니까? 내남직없이 나서서 온 힘을 기울여 야차 같은 왜적들을 남김없이 밀어내야 합니다. 싸울 사람뿐 아니라 다친 사람을 살리거나 땔감을 하고 밥을 짓는 이들도 다 의로운 맞싸울이들입니다. 뜻이 있는 분들은 의령에 있는 홍의부대로 달려오십시오."
아울러 "오월 스무나흗날 새벽에 기마병 스물, 철포 부대 이백 사람을 비롯해 일본군 이천 사람이 남강을 건너 진주로 쳐들어온다" 하는 이 말을 "남강 아무개, 스무나흗날 일찍, 오이 스무 접, 가지 두 접, 소 두 필"이란 암호입니다.
사실 저는 글과는 담쌓은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 숙제 일기를 벼락치기로 써내고 날씨가 틀려서 담임선생님에게 되게 혼이 난 뒤로 쉰 살이 넘도록 일기도 써본 적이 없을 만큼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러다가 모시던 법정 스님 곁을 스치기만 해도 베일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 스님이 얼마나 따뜻한 분인지 드러내 보이겠다면서 다섯 해 동안 글쓰기를 익혀 예순 언저리에 책을 냈습니다. 그 뒤로 심심치 않게 책을 냈으나 소설은 처음입니다.
▲ <한글꽃을 피운 소녀 의병> 앞표지 |
ⓒ 한솔수북 |
꿈에도 생각지 않던 일을 저지른 데는 검색하다가 "임진왜란이 조선 백성을 '민족'으로 만들었다"란 글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따라 들어가니 <임진전쟁, 민족의 탄생>이란 책 소개로 "창제한 지 150년이 지나도록 '지방적이고 사적이며 여성적인 언어'로 여겨지던 한글은 전란 와중에 '우리끼리' 통하는 언어로서 특별한 지위를 갖게 됐다" 하는 글월이 제 눈길을 붙잡았습니다.
우리끼리 뜻을 나눌 수 있다는 말은 일본 사람은 뜻을 알기 어렵다는 말씀이잖아요. 흥미가 일어 바로 사보니 "한글로 쓴 왕실 문서를 사람들이 많이 모이거나 지나다니는 장소에 게시했다"란 말씀이 나오더군요. 바로 이 말씀이 <한글꽃을 피운 소녀 의병>을 낳았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책을 펴낼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생태동화작가인 권오준 선생하고 전화 통화를 하다가 "임진왜란 때 한글이 아니었으면 나라를 살리지 못했을 수도 있었답니다"라고 하면서 "한글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일본 말을 쓰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했어요.
엎질러진 물 써야 했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임진왜란 언저리에 있는 책들을 사 모았습니다. <쇄미록>,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선조 나는 이렇게 본다> 같은 책부터 <바다의 가야금>, <임진무쌍 황진> 같은 소설을 비롯해 한 백여 권 읽었습니다. <쇄미록> 같은 책은 읽고 또 읽었어요.
▲ 줄넘기하며 노래 부른느 삽화 |
ⓒ 김옥재 |
어찌어찌 펜을 들었으나 대사는 그려내겠는데 이야기를 풀어내거나 풍경을 그려내기 어려웠습니다. 하는 수 없이 조선이나 고려 또는 고구려나 백제·신라 시대를 그린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는 온건해 전쟁이 주는 아픔을 실감하기 어려워 훨씬 잔인한 왕좌의 게임이나 바이킹을 다룬 드라마들을 눈이 짓무르도록 열 달 동안 1.5배속으로 봤습니다.
이런저런 몸부림 끝에 허술하기 그지없는 원고지 880매를 넘겼습니다. 이만큼이면 어른 장편소설 분량입니다. 다시 낑낑 머리 싸맨 끝에 400매 남짓한 원고로 줄여 <한글꽃이 피운 소녀 의병>이 선보입니다. 이 책을 여는 열쇠는 ①비밀병기 한글 ②여리고 서툰 이들 ③조선 사람이 된 일본군입니다.
지난 7일 온라인에서 책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어떤 분이 이렇게 묻더군요. 이 책에 가장 중요하게 담아내려고 했던 얘기가 무엇이냐고요. '지피지기'입니다. 어째서 손자병법에서는 '적'이란 낱말이 뻐젓이 있는데 '피'라고 했을까요? 저는 저쪽을 적으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고 봤습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잘 아시지요? 저쪽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입니다. 지피지기를 잘하면 어떻게 될까요? 싸울 일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지피지기를 깊이 하면 어찌 될까요? 동무가 됩니다. 평화로 가는 길, 지피지기로 열 수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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