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DDR4 라인 3~6개월 생산 줄인다” 삼성, 감산방안 구체화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삼성전자가 감산을 공식화한 가운데 조만간 내부적으로 감산 세부방안을 통보할 예정이다. 삼성은 DDR4 등 범용제품을 중심으로 감산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감산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9일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삼성은 평택 라인보다는 화성캠퍼스의 D램 생산라인을 중심으로 감산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화성의 D램 라인에서 최소 3~6개월간 감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생산능력이 늘었지만 (기술적 감산을 통해) 이미 지난 2·3월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전체 웨이퍼 투입량이 5~7%가량 줄어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2·3월에도 웨이퍼 투입량 5~7% 줄어”
삼성전자는 화성·평택캠퍼스에 총 6개의 D램 생산라인을 가동 중인데 화성에선 DDR4 등의 범용제품을, 평택에선 선단 공정과 DDR5·LPDDR5 등 최신 제품을 각각 주로 생산한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DDR4 중심의 생산량을 축소하는 동시에 DDR5·LPDDR5 생산 전환 및 선단 공정 비중 확대를 통해 메모리 공급 과잉 해소에 주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향후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고 재고가 충분한 DDR4 제품을 줄이면서 매출 확대가 기대되는 DDR5·LPDDR5 제품으로 생산 포트폴리오를 옮겨가려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얘기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1Gb×8)의 고정거래 평균가격은 3.35달러(지난해 6월)→2.85(8월)→2.21달러(10월) 등으로 하락해, 올해 들어 1.81달러선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트랜드포스는 지난달 중순 보고서를 통해 삼성의 올 2분기 D램(12인치 웨이퍼 기준) 생산량이 60만8000장까지 줄어, 지난해 4분기(월 67만 장) 대비 최대 9.25% 줄어들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삼성이 감산을 공식 발표하면서 이 수치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삼성이 D램 생산량을 지난해보다 25~20%가량 줄일 것으로 본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올 3~4분기쯤 인텔의 사파이어래피즈 중앙처리장치(CPU)가 데이터센터에 본격 납품되면 DDR5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며 “수요자들의 데이터센터용 D램 확보에 대비해 판매가가 높은 DDR5 위주로 전략을 재설정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삼성 “공급 확보된 제품 중심으로 조정”
삼성전자는 지난 7일 감산 소식을 발표하면서 “미래를 위한 라인 운영 최적화와 엔지니어링 런(시험 생산) 비중을 확대할 것”이라며 “이외에 추가로 공급성이 확보된 제품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난이도가 높은 선단 공정 등에 대한 ‘기술적 감산’을 확대하고, 재고가 많이 쌓인 범용제품에 대해선 ‘인위적 감산’을 한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하반기 수요에 대비해 그간 ‘무감산’ 기조를 이어온 것이고, 생산·재고량 등을 시뮬레이션해 계획한 ‘전략적 감산’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입장에서 (메모리) 수요가 예상과 달리 너무 부진했고, 그에 따른 연간 적자 확대와 현금 경색 우려가 감산을 결정하게 된 요인”이라며 “고객사 입장에서 삼성전자의 추가 감산이 없다면, 메모리의 가격 하락이 지속할 것이기 때문에 구매를 서두를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시장 점유율을 목표치만큼 벌린 것으로 보고, 추가 손해를 막기 위해 감산을 발표한 것으로 본다”며 “이미 재고 물량을 충분히 확보한 만큼 감산에 나서도 시장 격차를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무감산 기조로 점유율 격차 벌리는 성과
삼성전자는 무감산를 통해 2·3위 업체와 시장 점유율과 기술 격차를 벌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트랜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각각 40.7%, 28.8%, 26.4%였으나 4분기엔 45.1%, 27.7%, 23%로 집계됐다. 삼성의 점유율이 4.4%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올 1분기에는 업체 간 격차가 소폭 더 벌어졌을 것으로 본다. 여기에 마이크론은 지난달 2분기(2022년 12월~2023년 2월) 실적 발표에서 2023회계연도의 시설투자(CAPEX) 금액을 기존보다 5억 달러 하향한 최대 70억 달러(약 9조1200억원)로 발표해 추가 감산을 시사했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규모에서는 앞서지만, 과거와 같은 기술 초격차를 잃어버렸거나 오히려 뒤졌다는 분석이 있었다”며 “내년 중반 이후엔 다시 기술에서 선도를 회복하고, 본격적으로 극자외선(EUV) 공정이 확대되는 2025년부터는 생산 효율에서도 격차를 벌려 나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판가 30% 이상 안 오르면 수익성 회복 어려워”
삼성전자는 이번 잠정 실적 발표에 앞서 ‘감산 수위’에 대해 내부 회의를 수차례 열고 논의해왔다고 한다. “향후 반도체 업황을 고려해 지금이라도 감산을 공식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경쟁 업체와의 격차를 더 벌리고 회사의 미래 가치를 위해 기존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지만, 최종적으로 감산을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업계는 삼성전자의 이번 감산 행렬 동참에 따라 ‘반도체의 봄’이 앞당겨질지 주목하고 있다. 통상 감산 효과는 3~6개월 뒤에야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시장과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은 메모리 가격 하락세가 진정되며 업황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 전망치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은 올 1분기 3조765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3분기까지 적자가 이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4분기엔 3130억원의 영업이익을 볼 것으로 관측한다.
반면 수요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반도체의 겨울’이 길어질 것이란 견해도 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D램 판매가가 현재보다 30~40% 오르지 않으면 (삼성의) 수익성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며 “어설픈 감산으로 판매가가 10~20%만 오르면 손해가 오히려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재근 석학교수는 “삼성전자의 감산 발표는 시장에서 곧바로 영향이 나타날 것이다. 한 달쯤 뒤부터 D램 가격이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면서도 “다만 메모리 사업은 최소 20% 이상 흑자가 나야 투자 등을 정상화할 수 있는데 반도체 혹한기가 올 3~4분기에서 내년 1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DDR5=메모리 반도체인 DDR5 D램은 전작인 DDR4보다 연산 속도가 2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공지능(AI) 열풍 확산으로 고성능이 요구되는 서버 등에서 채용이 확대되고 있다. LPDDR은 스마트폰·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저소비 전력 제품이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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