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구청장 김종훈 "청년들한테 혼났습니다, 왜냐면요"
[이용우 기자]
지난 3월 30일, 울산으로 향하는 마음이 설렜다. 단지 봄날의 정취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자체 첫 최소생활 노동시간 보장제 도입, 전국 최초 '하청노동자 지원조례' 제정... 울산 동구에서 반가운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김종훈 울산동구청장은 2011년 보궐선거로 동구청장이 된 이후, 울산동구 국회의원을 거쳐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다시 동구청장으로 당선됐다. 8년 만에 다시 동구청으로 돌아온 것이다.
▲ 더 아픈 손가락을 보듬는 것이 진보구청장의 역할이라는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
ⓒ 진보당 |
-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사실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거대 양당이 아닌 저를 선택해준 주민들과 진보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기대가 모두 있기 때문에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직원들과도 호흡을 맞춰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네 행사에 방문을 많이 하긴 하는데, 형식적 방문보다는 주민들과 시간을 두고 깊이 소통하고 토론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지혜가 있더라고요."
- 두 번째 동구청장이 된 것인데, 그 전과 무엇이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솔직히 처음에는 두 번째니까, 전보다 수월하지 않을까 잠깐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어요. 세상이 발전한다고들 하는데 우리 삶이 좋아진 건 아니더라고요.
동구가 많이 어려워졌어요. 예전엔 중공업에서 일하면 그래도 살 만했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모든 삶이 하향평준화 된 것이 문제입니다. 자영업만 해도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 구청장을 하던 때보다 인구가 5만 가까이 줄었지만 식당 수는 크게 변화가 없어요. 개업과 폐업이 계속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임금 구조도 더 열악해지면서 많은 분이 '희망'이라는 글자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희망을 잃었다'는 얘기를 하던 김 구청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짊어져야 하는 무게감이 커 보였다. 그는 담담히 청년들의 이야기로 이어갔다.
"얼마 전 청년들과 간담회를 했어요. 뒷풀이를 했는데, 제가 많이 혼났어요. 그들에게 '어렵지만 취직도 하고 먹고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동구가 지원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한 청년이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왜 우리를 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대상으로만 인식하죠?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관심은 있으신가요?'라고."
김 구청장이 대담 내내 강조한 것이 있었다. 바로 '삶과 사람'이다. 그는 한 청년의 목소리를 통한 각성을 담담하게 고백했다. 정책 속에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의 생생한 삶에 착목하겠다는 그의 다짐이 느껴졌다.
- 유일한 진보당 소속 구청장입니다. 진보행정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을까요?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을 텐데 지금 양극화 문제 정말 심각합니다.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해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저는 진보행정이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아픈 손가락을 위한 정치가 바로 그것이죠.
예를 들어, 자기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기초단체장으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실업급여를 받을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하청노동자 지원조례가 제정됐습니다.
"하청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았어요. 국회에서도 논의가 있었지만 하청노동자에게 도움 되는 정책과 법률 등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진보정당의 경우도)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조례 등을 냈지만 단 한 가지도 통과되지 않았어요.
지자체에서는 없는 강에 다리도 놓을 수 있다지만 하청노동자의 삶에는 주목하지 않았어요. 이건 정말 중요한 삶의 문제입니다. 국회가 할 일이냐 지자체가 할 일이냐가 아닌 거죠. 주민들의 삶을 지켜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동구의회는 지난 3월 22일 '울산광역시 동구 하청노동자 지원 조례안'을 가결했다. 이 조례안은 지역 노동단체와 진보3당으로 구성된 '노동자가 살맛 나는 동구만들기 공동위원회'가 주민 4026명의 동의를 받아 직접 제출했다.
"목소리 내기 힘든 5인미만 사업장 들여다봐야... 조례 반응? 주민들 크게 공감"
- 조례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주민투표를 했을 때 '하청노동자 지원'이 1등이 나왔어요. 많은 사람이 여기에 개선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번 조례가 만들어진 이유입니다."
김 구청장 말대로 지난해 가을, 2만 3328명이 참여했던 동구살리기 주민투표에서 하청노동자 처우개선 요구가 27.0%로 1위를 차지했다. 주민들의 투표로 요구안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당사자들이 주민서명을 받아 조례를 청구했다. 구의회를 통과한 조례는 실행만을 앞두고 있다. 동구청 앞에도 하청노동자 지원조례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김 구청장의 얼굴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렇지만 모든 행정이 일사천리로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2년 9월 30일 김 구청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노동복지기금 사업이 동구의회에서 부결됐다. 김 구청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 하청노동자 지원조례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노동복지기금도 통과돼야 하죠? 노동복지기금 사업은 부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구의회 협조를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인지요?(*울산동구 노동복지기금 -조선업 대불황 등으로 대량 실직이 발생할 경우 노동자의 긴급 생활 안정, 주거 및 의료 등 복지증진, 교육 및 훈련 지원 등에 쓰일 300억 원 규모의 기금조성사업)
"저희가 '2040동구청 비전과 전략' 수립을 위해 용역을 하고 있어요. 주민 500명 대상으로 가장 필요한 사업을 조사했는데 1순위가 바로 '노동복지기금'이 나왔습니다. 주민들이 지켜보고 계셨던 거죠. 그리고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지난번에 부결된 이유는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국민의힘 의원이 많기 때문에 부결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적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차례 토론하고 의회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의회에도 부족한 점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면 개선하겠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의회가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고 절박한 사람들의 삶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잘 추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조선업 불황으로 동구인구가 많이 줄었습니다. 특히 청년인구 유출이 매우 심각합니다. 청년들과 대화도 많이 하시는데, 이들을 위한 대책이 있을까요?
"청년노동자타운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청년노동자타운 사업은 동구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에게 임대하는 공유주택 단지 조성을 말한다. 김 구청장은 임기 시작과 함께 청년에 대한 지원계획을 자주 밝히고 있다. 울산동구 청년센터를 올해 초 개소했다. 취업 도전 프로그램도 정부 지원을 받아 운영할 예정이다. 청년주택에 김 구청장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었다.
"1960, 1970년대 근로자 주택의 접근방식은 안 된다고 봐요. 정부에서 얘기하듯이 집만 주면 청년들이 일할 것이라는 생각 말이죠. 이곳에서 청년들이 공동체를 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도시디자인팀, 건축팀, 정책팀 등의 TF를 꾸려 추진하는 이유죠."
그에게 다시 물었다.
- 조선업 상황은 어떤가요?
"저는 동구인구가 늘어난다고 행복한 도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선업이 망해도 동구주민은 살 수 있어야 하죠. 거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기업을 중심으로 바라보며 행정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물론 주민의 삶과 (조선업이) 관계는 중요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주민의 삶과 관계된 동구의 비전이겠죠."
- 새로운 먹거리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만들 수 있는 대책이 있을까요?
"조선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예측할 수는 없겠죠. 다만, 고용이 늘어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예전의 도시형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봐요. 일본의 사례만 봐도 그러하죠. 특히 동구가 울산 면적의 3.4%에 불과한 상황에서 새로운 산업 유치도 여의치 않아요.
동구에는 '대왕암'이 있어 관광지로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후 여건도 좋습니다. 울산 다른 구에 비해서도 3-5도 정도 낮을 정도로 시원합니다. 지구온난화 시대에 정말 살기 좋은 여건이죠. 주거여건, 복지, 환경 등을 잘 개선해 나간다면 정말 살기 좋은 곳, 많은 노동자가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동구가 추진 중인 '청년노동자타운'은, 제조업 도시나 노동운동을 하는 분들도 큰 관심을 가지실 거 같습니다.
"네, 지금 시행되고 있는 고향사랑기부제를 이런 취지 아래 추진하고 있습니다. 동구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청년주택 사업을 위한 지정기부 방식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청년, 노동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사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10억 정도를 모금 목표로 의회통과와 함께 본격화할 계획입니다."
- 울산동구라는 고향의 이미지보다 여기에 있는 청년노동자를 향한 마음이 더 중요하겠습니다.
"울산동구에서 여기서 살아가는 청년노동자들의 삶이 좋아질 수 있도록 열심히 홍보하고 모금해 보려고 합니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많은 단체의 의견도 듣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고무적으로 느껴집니다. 내용과 형식 모두 잘 고민해서 모범을 만들고 싶습니다."
▲ 김종훈 구청장과 대담을 진행중인 장진숙 진보당 공동대표(지방자치위원장) |
ⓒ 진보당 |
- 주민대회 조직위원회와 소통은 잘 되고 있는지요?
"(첫 주민대회와 달리) 2회 주민대회에서는 제가 요구를 받아들이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행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을 우선 추진할지 고민이 많은데, 적어도 2만 명이 넘게 참여해서 결정하니 고민이 줄어들죠. 감사할 일이 많아요. 앞으로 주민대회 측에서 고민을 더 넓히고 동구청에서도 행정 내에서 할 수 있는 방안들을 더 많이 찾아보려고 합니다."
- 주민들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른 구청과 차이가 있어 보이네요.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행정에서 모두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도 있을 수 있어요.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려면 예산 체계도 잘 세워야 하니까요. 다만, 문제는 주민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당신들이 왜 나한테 뭐라고 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어!'이런 태도를 보이는 지자체가 많은데 결국 권리에 대한 왜곡이 있는 것이죠. 위임된 권력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담을 진행하던 구청장실의 배경 사진이 아름다웠다. 그 이야기를 건네니 김구청장의 자랑이 이어졌다.
"대왕암에서 슬도까지, 특히 지금 가시면 유채꽃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꼭 걸어보세요."
▲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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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상한 나라의 지방의원' 연재는 이번 편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진보당 지방자치위원회에서는 이후에도 지방자치 발전과 진보정치의 역할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지속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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