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2500선의 벽' 넘어설까…삼성전자 '반도체 감산' 호재
코스피가 또 한 번 2500선을 목전에 뒀다.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 사태와 국내 기업의 실적 충격 속에서도 올해 11.4% 오르며 선방한 결과다. 최근 삼성전자가 꺼낸 '반도체 감산' 카드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오는 12일 발표할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가파르게 오르는 국제유가는 변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코스피는 '2500선의 벽'에 막힌채 진퇴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8월 18일(종가 2516.47)을 정점으로 코스피는 빠르게 하락했다. 약 한 달 만에 2100선까지 미끄러졌는데 이후 11월 11일 2480선까지 반등했다가 연말 2200선에서 마무리했다.
올해도 1월 예상 밖의 강세장 속에 2482.02까지 상승했지만 2500선 돌파는 실패했다. 2월까지 버티던 코스피는 3월 중순 2300 중반까지 고꾸라졌다가 3월 22일부터 2400선을 회복했다.지난 7일 코스피 종가는 2490.41이었다. 4월 5일(종가 2495.21)에 이어 다시 2500선 턱밑까지 올랐다.
이번엔 코스피가 2500선을 뚫을 것이란 시장의 기대가 커진 건 반도체발(發) 호재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달 7일 1분기 잠정 매출은 63조원, 영업이익은 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9%, 95.6% 줄었다고 발표했다. 영업이익이 사실상 0에 수렴한 충격적인 실적에도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4.33% 급등했다. 사실상 바닥을 확인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다.
여기에 메모리 반도체의 생산량을 줄이겠다는 선언이 더해졌다.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여러 우려가 있었는데 예상에 없던 감산 카드를 꺼내 시장에 안도감을 불어넣은 셈이다. 위민복 대신증권 연구원은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한 건 시장이 기다려온 주가 상승의 트리거(방아쇠)”라며 “이번 결정으로 2024년 D램 공급이 줄어드는 만큼 삼성전자가 수혜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장의 리더인 동시에 코스피를 이끄는 대장주다. 최근 주가 상승을 주도한 2차전지의 역할을 반도체가 이어받는다면 코스피 상승 흐름은 좀 더 지속할 여지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여행∙레저와 바이오 업종의 실적 개선 기대감도 코스피 오름세에 훈풍 역할을 한다. 최근 국민연금은 주가가 많이 뛴 2차전지 소재주 비중을 줄이고, 저비용항공사(LCC)와 여행사 지분을 늘렸다. 제주 드림타워와 카지노를 운영하는 롯데관광개발의 지분도 4.98%에서 6.07%로 늘렸다. 지난해 11월 비중을 축소했는데 4개월여 만에 지분 투자를 늘린 것이다. 최근 제주와 중국을 잇는 직항 노선이 3년여 만에 재개됐는데 실적 개선이 머지않았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기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대상 카지노는 5월 전후 중국의 단체 관광이 재개되면 또 한 번의 실적 점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상 구간에서 부침을 겪었던 바이오산업을 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하태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1~2년간 시중 유동성이 나빠져 과도하게 주가가 하락했는데 이를 채우는 정도의 회복을 기대해 볼 만한 상황”이라며 “종목보다는 인덱스형 바이오 펀드나 바이오 상장지수펀드(ETF) 중심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들썩이는 유가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코스피 상승세에 제동을 걸 수 있어서다. 시장의 가장 큰 관심은 오는 12일(현지시간) 발표될 미국의 3월 CPI다. 3월 CPI 증가율 예상치는 전년 동월 대비 5.2%다. 시장에선 6%를 기록했던 2월보다 둔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CPI가 예상치를 웃돌 경우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이 와중에 유가도 뛰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배럴당 66달러 선까지 물러섰던 서부텍사스유(WTI)는 단번에 80달러대로 올랐다.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의 감산 선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3분기 성수기 수요, 중국의 본격적인 리오프닝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 유가 오름세가 이어질 수 있다. 유가가 물가를 자극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긴축 완화로 선회하는 건 더 어려워지고, 증시엔 악재다.
9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Fed가 다음 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확률은 71.2%로 일주일 전(48.4%)보다 22.8%포인트 올랐다.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은 28.8%에 그쳤다.
박광남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OPEC+는 경기 하강 국면에 대응하는 조치로 감산을 결정했다고 언급했는데 실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어 일면 타당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과열을 잠재우는 게 숙제지만 갑작스러운 침체 또한 걱정해야 할 상황인 셈이다. 14일 발표하는 미국 3월 소매판매 지표는 경기 연착륙 여부를 따질 가늠자다. 증권가에선 2월(전월 대비 0.4% 감소)과 유사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예상보다 더 많이 감소한다면 소비 둔화, 경기 침체 우려가 본격화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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