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한학자' 임창순이 남긴 특별한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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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 9일, 대법원 확정 판결 18시간 만에 인혁당 관련자 8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4월 9일 '사법 살인의 날'을 맞아, 임창순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대구 두산동 88-4 모산학술재단 문화예술공간을 찾았다.
"청명 임창순의 대구시대(1946-1949)"라는 제목의 이 사진전은 지난 4월 7일 시작됐는데 오는 27일까지 계속된다.
* 인혁당 한학자 임창순 선생의 교사 시절 사진 몇 점을 지면으로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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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기자]
▲ 인혁당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던 한학자 임창순은 1946-9년 대구에서 교사 생활을 할 때 사진들을 모아 사진첩으로 정리하면서 권두에 "이 사진첩의 학생들이 모두 성불하기를 바란다."라고 써 두었다. |
ⓒ 임창순 |
1975년 4월 9일, 대법원 확정 판결 18시간 만에 인혁당 관련자 8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로부터 32년 지난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8명에 대한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 1949년 경북여중 경주 수학여행 때 담임반 학생들과 불국사에서 찍은 사진이다. 회랑이 없던 시절이라 석가탑과 다보탑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채롭다. (전시작을 촬영한 것이므로 원본 사진과 여러모로 다릅니다.) |
ⓒ 임창순 |
임창순은 어릴 때 서당에서 배운 것이 학력의 전부이지만 1985년부터 1993년까지 문화재위원장을 역임했을 만큼 걸출한 한학자이다. 그는 40세이던 1954년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된다. 그러나 1960년 4·19 교수 데모를 주도하면서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현수막의 글씨를 쓰고,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위원으로 통일운동에 참여한 것이 죄가 되어 5·16 직후 3개월 동안 구속되었다가 결국 학교에서 쫓겨난다.
▲ 경북여중 개교 32주년 기념 종합예술제 사진(1949년). 갖가지 복장과 분장을 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당시 교육이 요즘보다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
ⓒ 임창순 |
4월 9일 '사법 살인의 날'을 맞아, 임창순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대구 두산동 88-4 모산학술재단 문화예술공간을 찾았다. "청명 임창순의 대구시대(1946-1949)"라는 제목의 이 사진전은 지난 4월 7일 시작됐는데 오는 27일까지 계속된다. (관람시간 : 오전 11시-오후 6시, 일요일 휴관)
임창순은 1914년에 태어나 199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모산학술재단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전은 그가 직접 마련한 것은 아니다. 그의 아들 임세권 안동대 명예교수가 준비해서 개최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전시된 사진이 임창순 선생이 촬영한 작품들도 아니라는 점이다. 임창순은 대구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해 1946년부터 1949년까지 경북여중, 경북중 등에서 교사로 일했다. 전시된 사진들은 이 시기 대구의 학생과 교사들의 활동상을 담고 있다.
일반인이 찍어서 '일상의 기록'을 증언한 사진의 가치
또 하나의 특이점은 임창순이 사진을 찍은 사람의 이름을 밝혀두었다는 사실이다. 종합예술제 기념 사진 등에는 "부원들의 용투에 또 한 번 감격한다'는 소회를 밝혀두기도 했다. 아들 임세권 교수는 이를 "일상적 기록사진"으로 평가하면서 "예술사진가의 작품만이 아니라 이처럼 시대상황을 증언하는 일반인의 일상적 기록사진의 가치를 말하고자 이번 기획전을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 교복이 세라복으로 바뀌는 과정을 증언하는 1948년 경북여중 사진 |
ⓒ 임창순 |
▲ 속리산 |
ⓒ 임창순 |
▲ "정수란 양이 찍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는 불국사 역전 사진 |
ⓒ 임창순 |
▲ 사진을 찍을 때의 소감을 곳곳에 밝혀 두었다. 아버지의 사진전을 마련한 아들 임세권 명예교수는 "한 시대를 증언하는 일반인의 '일상의 기록'으로서의 사진의 가치를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 임세권 |
▲ 1948년 10월 11일 은해사에 간 경북여중 4학년 학생들 |
ⓒ 임창순 |
▲ "경북중 문예부원들과 교정에서" |
ⓒ 임창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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