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0명 중 1명 "'직폭'에 극단선택 고민"…신고 안 한 이유

나상현 2023. 4. 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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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난 7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 시민단체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상조 기자

직장인 A씨는 상사로부터 매일 같이 “너는 머리가 모자르냐?”, “어디서 말을 그따위로 배워먹고 자랐냐”, “너가 사장하지?” 등의 폭언에 시달렸다. 휴대전화를 집어던지려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A씨는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다”며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고 호소했다.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 4년차를 맞았지만, 여전히 직장인 30%가 A씨처럼 ‘직폭’에 고통받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특히 괴롭힘을 당한 직장인 10명 중 1명은 극단적 선택을 고민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를 신고하는 비중은 10%도 채 되지 않고, 대부분 혼자 참거나 스스로 직장을 그만 두는 방법을 택했다. 관련 법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인 30% “직장괴롭힘 경험”…모욕·명예훼손 최다


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 우분투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을 통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0.1%가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19년 6월(44.5%)보단 14.4%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유형별로 모욕·명예훼손이 18.9%로 가장 많고, 부당지시(16.9%), 폭행·폭언(14.4%), 업무외 강요(11.9%), 따돌림·차별(11.1%) 순으로 이어졌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문제는 괴롭힘을 심각하게 느끼는 정도가 훨씬 커졌다는 점이다.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한 직장인 가운데 48.5%가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는 4년 전 조사(38.2%)보다 10.3%포인트 높아졌다. 심각하다고 느끼는 비중은 비정규직(52.9%), 5인 미만(54.9%), 월 150만원 미만(58.3%) 등 사회적 약자일수록 커졌다. 특히 응답자의 10.6%는 “자해 등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정신적인 피해가 극심했다. 그럼에도 정신적인 진료나 상담을 받아봤다고 응답한 비율은 6.6%에 불과했다.


유명무실한 괴롭힘 금지법…59% “참거나 모른척”


현재 근로기준법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을 규제하고 있지만, 정작 신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우는 드물었다. 괴롭힘에 대한 대응 방법(중복 포함)으로 59.1%는 “참거나 모른 척했다”고 답했고, 뒤이어 “회사를 그만뒀다”(32.2%),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했다”(28.2%) 순으로 이어졌다. 회사나 노동조합, 정부기관 등에 공식으로 신고했다는 대답은 8.3%에 불과했다.

법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것은 ‘신고해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불신이 큰 탓이다. 실제로 ‘신고 이후 바로 객관적 조사, 피해자 보호 등 회사의 조사·조치 의무가 제대로 지켜졌는가’에 대해 묻는 질문에 63.9%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신고 이후 불리한 처우를 당한 적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33.3%가 “있다”고 밝혔다. 용기를 내 신고를 해도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법 자체가 가진 실효성 한계도 꾸준히 지적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괴롭힘 신고자에게 회사가 불이익을 준 경우에만 형사 처벌 대상이고, 사업주에 의한 괴롭힘 행위 자체는 10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피해자가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인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비밀누설 금지’ 등을 위반한 사업장에 대해선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그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약자들이 고발하더라도,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약하기 때문에 법 취지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괴롭힘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선 특별근로감독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실효성 확보를 위해 과태료에 불과한 괴롬힘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결국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특수고용·원청·경비노동자 등에게도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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