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같은 건 없었다' 고백하는 10년차 기자 이야기

김성호 2023. 4. 9. 1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 187] 손정빈의 <손정빈의 환영>

[김성호 기자]

나는 나를 위해 썼다. 저널리즘 같은 것은 없었다. 기자 생활 초기에는 경력이 조금 더 쌓이고 나면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나름의 저널리즘이 생기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사를 쓰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꿈꿨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저널리즘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기자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이 말에는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나에게는 공익을 위한 마음이 거의 없었다. 나는 그저 기사를 잘 쓰고 싶었다. -69p

제겐 저널리즘이 없었다고 고백하는 기자가 있다. 통신사 <뉴시스>에서 영화담당 기자로 오래 일한 손정빈이 바로 그다. 사회부와 정치부 또한 거쳤으나 늘 문화부 영화담당 자리를 지망했고, 마침내 다시 영화기자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가 제 지난 10여 년의 언론 생활을 돌아보는 책을 냈다.

출판계와 언론계의 부당한 관행에 맞서 새로움을 전하겠다는 출판공동체 편않의 '우리의 자리' 시리즈가 기자 손정빈을 택했다. <손정빈의 환영>이란 이름으로 출간된 이 책은 영화기자란 정체성을 갖고 일해온 그의 지난 시간을 독자 앞에 펼쳐 전한다.
 
▲ 손정빈의 환영 책 표지
ⓒ 편않
 
10년차 기자가 돌아본 지난 시간들

책엔 언론인이 되기 전부터 10여 년의 경력을 가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생각이 진솔하게 담겼다.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던 취업준비생의 불안과 어찌 기자가 되었으나 제 역량에 확신이 없던 수습기자 시절의 마음, 영화기자로 일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 뒤 맞이한 여러 순간들을 거쳐, 한 발씩 나아가며 오늘에 이르는 과정까지가 소소하지만 담박하게 들어찼다.

제 기자생활을 이야기하며 손정빈은 특별한 감정 하나를 전면에 꺼내놓는다. 공천에서 탈락한 어느 정치인이 제 자리를 대신 꿰찬 유명 정치인에 대하여 느꼈으리라고 주장하는 열패감 혹은 열등감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제 안에도 꼭 그와 같은 감정이 있다며 '나는 늘 나보다 무엇인가를 더 잘하는 것 같은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질투했고, 그런 재능이 없는 나를 가끔 혐오했다'고, 또 '나도 꽤 괜찮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보다 나은 것 같은 누군가를 보면 그 자신감이 금세 쪼그라들었다'고 실토한다.

'기자 생활도 그런 열패감과 열등감 속에서 시작했다'고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선배로부터 "회사를 나가라"는 말을 들었던 수습기자 시절의 어느 순간을 되새긴다. 선배는 그에게 온갖 육두문자를 섞어 "야, 이 정도 들었으면 나 같으면 나가겠다"며 "그러니까 넌 이렇게 욕을 먹고도 나갈 능력도, 용기도 없는 새끼인 거야"하고 막말을 퍼붓는다. 가뜩이나 동기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에 움츠려 있던 그는 이 같은 모욕에 마음이 부서진다. 그만두고도 싶었으나 그럴 용기도 없었다는 그는 수습을 마치고 도망치듯 문화부를 지망해 발령을 받는다.

열패감과 모욕감으로부터 벗어나기까지

열패감과 모욕감으로부터 그를 일으킨 건 의외로 기자의 일이었다. 문화부에 배치된 그에게 부장이 말한다. "손정빈씨, 마음대로 써." 정말로 어떤 지시도 내려오지 않았고, 그는 스스로 기사를 쓰는 법을 익혀갔다고 했다. 어떤 기사는 제법 파급을 일으키기도 하고, 스스로 마음을 다하여 조금씩 나아지기도 한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나아져갔다고 술회한다.

영화담당 기자로서 최동훈 감독과 기억에 남는 인터뷰를 하고, 또 박찬욱 감독과는 하나마나한 실망스런 인터뷰도 했다고 했다. 한 번씩 정치부와 사회부로 발령을 받아 다른 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제가 있을 곳은 영화가 있는 곳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결국 거듭하여 영화기자로 돌아왔던 그는 어느덧 10년 차 기자, 또 영화전문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그것도 전보다는 더 나아진 기자 말이다.

<손정빈의 환영>은 손정빈이라는 기자의 성장기이며 영화예술과 주고받은 상호작용의 기록이고, 동시에 언론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중 어느 하나를 선명히 택하고 있지는 않으나 부분적으로 이 모두를 에둘러 훑어가는 글 모음집이라 할 수도 있겠다. 또한 이 같은 주제들과 동떨어진 글, 이를테면 배우와 영화에 대한 간단한 소회 또한 함께 실렸다.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공감의 지점들

말하자면 손정빈이라는 기자가 써낸 온갖 주제의 글이 한 데 모여서 '환영'이라는 이름을 붙인 책으로 화했다. 통신사에서 영화담당 기자를 오래 한 이의 다양한 생각들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라면 한번쯤 집어봄직 하다고 하겠다.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은 기자라는 특정 직역을 넘어 유효할 수도 있겠다. 동기들보다 못한 기자란 평가와 저 스스로 느끼는 열패감으로부터 거듭 괴로워했던 이가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겪어낸 업의 기록이란 점에서, 그와 유사한 경험과 고민을 가진 독자가 위안이며 공감을 만날 수도 있을 듯하다.

꼭 그와 같은 기질이며 성품을 갖지 않았다 할지라도 한 자리에서 금세 읽을 수 있는 이 작은 책은 독자의 모든 관심을 기꺼이 환영하려 한다. 그렇다면 왜 읽지 않겠는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