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소름 돋는다"...마약음료 만든 곳, 초등교 100m 옆이었다
서울 강남 학원가에 뿌린 마약음료를 제조한 장소로 지목된 곳은 강원도 원주의 한 평범한 가정집인 것으로 밝혀졌다. 9일 중앙일보가 찾아간 마약음료 제조 장소는 원주의 한 다세대주택 3층에 있었다. 아파트단지와 공원 등을 끼고 있는 평범한 이웃집에서 필로폰을 섞은 마약음료가 제조된 것이다. 100여m 가량 떨어진 곳에는 초등학교도 위치하고 있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자택에서 필로폰을 탄 마약음료 100병을 제조한 혐의로 지난 7일 길모 씨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마약음료가 제조된 곳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A씨(31)는 “7일 오후 5시쯤 경찰관이 가게로 와 공무집행을 한다며 비닐봉투 2개를 빌려가 의아했는데, 그게 체포 과정이었다니 깜짝 놀랐다“며 “뉴스에서 보던 사건인데 이 동네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길씨는 강원 원주시에서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마약음료를 제조한 뒤 서울의 아르바이트생 4명에게 전달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를 받는다. 경찰은 길씨가 중국에 체류하는 총책의 지시를 받고, 중국에서 공수한 빈 병에 담은 마약음료를 고속버스와 퀵서비스를 통해 서울로 보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퀵서비스 발신지를 추적해 길씨의 자택을 알아낸 경찰은 현장에서 범행에 사용된 빈 플라스틱 병과 포장 박스, 학생들에게 나눠준 사은품과 우유를 구매한 흔적 등을 압수했다. 길씨는 자택에서 약 3.5㎞ 떨어진 곳에서 성인전용 PC방을 운영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길씨를 상대로 범행을 지시한 윗선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자녀가 마약음료를 마셨다”며 학부모들에게 협박 전화를 거는데 가담한 김모 씨도 같은날 인천에서 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일당이 피해 학부모에게 협박 전화를 거는 과정에서 중계기를 이용해 휴대전화 번호를 변조한 혐의(전기통신사업법 위반)를 받고 있다. 김씨의 자택에선 전화번호를 변조하는데 쓰이는 USB 97개가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사용하는 번호 중 14개 번호가 경찰에 사기 사건 등과 관련해 신고된 적이 있다”며 “피해액도 1억759만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벌인 게 중국에 근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우회 IP(인터넷주소)를 사용해 학원가에서 마약음료를 실제 뿌린 사람을 모집한 데다, ADHD가 쓰인 빈 병도 중국에서 공급됐기 때문이다. 또 협박전화의 발신지 역시 중국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중국 당국에도 수사 공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길씨와 김씨는 모두 한국 국적이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경찰에 진술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점조직으로 움직이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특징이다.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은 지난 3일 벌어졌다. 서울 강남구청역과 대치역 인근에서 2명씩 짝을 이룬 일당 4명이 학생들에게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를 한다며 학생들에게 필로폰 성분이 첨가된 음료를 건네 마시게 했다. 이후 피해 학부모들은 조선족 말투를 쓰는 일당으로부터 “자녀가 마약을 복용했다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학교에 알리겠다”는 내용의 협박전화를 받았고, 이를 경찰에 신고하며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현장에서 마약음료를 나눠준 4명은 범행 2~3일 내로 모두 검거되거나 자수했다. 이들은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음료인줄 몰랐다. 인터넷에서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에 따라 배후 추적에 나선 경찰은 지난 7일 길씨와 김씨를 각각 검거한 뒤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길씨와 김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10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한편, 경찰은 유포된 마약음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1명을 추가로 확인했다. 이에 따라 마약음료를 마신 피해자는 학부모 1명을 포함해 8명으로 늘었다.
신혜연·김정민·김민정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승기·이다인 호화 결혼식...이다인 입은 드레스 3벌 가격보니 | 중앙일보
- "아이씨" 미국인 찰진 욕에 깜짝…'K-드라마'가 띄운 韓비속어 | 중앙일보
- "손님은 신이 아닙니다"…일본 버스회사의 통쾌한 반격 | 중앙일보
- 손녀 친구 성착취한 할아버지, 징역 18년→무죄 뒤집은 카톡 | 중앙일보
- 새벽 길거리서 바지 아래로 '툭'…대변 흘리고 떠난 남성 | 중앙일보
- '서울→부산 히치하이킹' 안해줬다고…"한국 인종차별" 주장한 외국인 | 중앙일보
- 누가 그녀를 끌어내렸나…‘코로나 암흑’ 갇힌 박성현 | 중앙일보
- '유퀴즈 1호' 소년범죄 전담 검사…동화책 쓰는 변호사 됐다 | 중앙일보
- "연예인도 아니고"…노무현 사진사가 비판한 김건희 여사 사진 보니 | 중앙일보
- 5일간 물 120톤 펑펑 쓰고 출국…중국 커플 묵은 숙소 CCTV보니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