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보다 재밌다" 아내 김은희 피 끓게한 장항준 신작

나원정 2023. 4. 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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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실화 영화 '리바운드' 장항준 감독
日애니 '스즈메…' 이어 주말 흥행 2위
"믿기 힘든 연승 실화 그대로, 담백 연출
아내 김은희 작가도 피 끓어 각본 참여"
영화 '리바운드'(5일 개봉) 연출을 맡은 장항준 감독. 2012년 부산중앙고 농부구의 만화 같은 연승 행진을 다룬 작품이다. 사진 미디어랩시소

2012년 부산중앙고 오합지졸 농구부의 만화 같은 연승 실화를 그린 영화 ‘리바운드’(5일 개봉)가 개봉 첫 주말 흥행 2위에 올랐다. 8일까지 나흘간 관객 20만명을 동원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밀렸지만, CGV 98%(100% 만점, 이하 9일 기준), 메가박스 8.9점(10점 만점) 등 극장 예매 앱마다 관람 평점이 높다.
“실화라 그런지 슬램덩크보다 재밌다.” “경기 자체에 집중해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관람평에는 코치 강양현 역의 주연 배우 안재홍과 기타 선수 역할을 한 신인배우들을 칭찬하는 내용이 많다. 영화는 해체 위기였던 부산중앙고 농구부가 선수 출신 공익근무요원인 초짜 코치 강양현(안재홍), 사연 많은 여섯 선수와 함께 교체 멤버도 없이 8일간 연승행진을 기록한 과정을 실감 나게 그린다. 그런데 이런 평도 있다. “장항준은 그저 방송인, 김은희 작가의 남편이 아니라 영화감독이었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첫 각본작 ‘박봉곤 가출사건’(1996)으로 대종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어느덧 연출 22년 차인 장항준(53) 감독이 최근 예능방송에 잇달아 출연하며 맛깔난 입담으로 더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장 감독은 올해 고정 출연한 예능 방송만 tvN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 ‘아주 사적인 동남아’, JTBC ‘듣고 보니 그럴싸’까지, 세 편이다. 영화감독 슬럼프 시기, 친구인 가수 윤종신, 흥행 드라마 작가인 아내 덕에 버텼다며 스스로를 “윤종신이 임시 보호하고 김은희가 입양한 눈물자국 없는 말티즈”라고 유쾌하게 표현해온 그가 오랜만에 본업으로 빛났다는 평가다. ‘리바운드’에는 김은희 작가가 공동 각본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아내 김은희 작가도 피 끓게 한 영화"


지난달 말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장 감독은 “어제 윤종신씨가 시사 후기가 좋다며 전화해 ‘항준아, 이게 무슨 일이냐.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았다’고 하더라”며 활짝 웃었다. “5년 전 권성휘 작가의 시나리오 초고를 두고 아내는 ‘오빠 이거 꼭 해’라고, 딸은 ‘아빠가 안 해도 누군가 꼭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했던 작품”이라며 “(김)은희가 ‘이거 내가 고쳐보면 안 돼?’라고 해서 각본까지 참여했다. 당시 드라마로 바쁜 시절이었는데도 영화의 어떤 포인트가 아내의 피를 끓게 한 것 같다”고 소개했다. “나는 전 세대에 위로와 위안이 되는 영화이길 바랐어요. 당신들은 실패한 게 아니다, 잠깐 그럴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죠.”

Q : 최근 ‘더 퍼스트 슬램덩크’(일본) ‘에어’(미국) 등 농구 소재 해외 영화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우리 곁의 실화라 더 공감이 간다는 점과 강양현 코치라는 매력적인 인물이 나온다는 점이 해외 농구 영화와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대개 스포츠 영화에서 코치는 완성된 상태로 등장하는데, 이 영화에선 그가 제일 많이 성장해야 하는 사람이고, 그에게는 스승도 없다. 부족한 25살짜리 청년 코치가 고교 농구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다.”

Q : 실화가 스포일러인 영화다.
“내 직전 작품은 스릴러(‘기억의 밤’)였는데, 장르물은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는 식의 빤한 법칙이 있잖나. 어찌 보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영화라는 점에서 홀가분했다.”

Q : 경기의 승패보다 인물들의 감정, 호흡에 더 초점을 맞췄는데.
“권성휘 작가 초고에도 그런 부분이 살아있었다. 농구의 '합'을 어디까지 보여주고 끊을지가 중요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고등학교 농구부원들의 모습을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점층적으로 몰아붙이고 싶었다. 두세 번째 경기로 갈수록 경기 장면 분량을 늘렸다. 디테일한 경기의 재미를 후반에 배치했다. 그렇게 계단식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경기 승패보다 중요했다.

부산중앙고 농구부는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에서 꼴지의 반란을 일으켰다. 사진 바른손이앤에이

Q : 공동 각본 작업은 어떻게 이뤄졌나.
“지분을 나눈다면 실화 부분이 전체 시나리오의 50%, 권 작가가 25%, 김은희 작가가 20%, 내가 5% 정도다. 초고는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았는데 실화와 똑같이 되돌렸다.”


"믿기 힘든 실화,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연출"

Q : 실화가 워낙 극적이다.
“작가가 썼다면 말도 안 된다고 했을 거다. 그런 실화를 담백하게 보여주려고 궁리했다. 배우들한테도 ‘너희들은 지쳤을 뿐이지 슬퍼할 시간이 없다. 눈물은 관객이 흘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선수 역할에, 되도록 안 알려진 젊은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설경구 형이 와도 안 시켰을 거다. 농구를 잘하고, 신장이 맞는 배우를 찾느라 500명 가까이 오디션을 봤다.”

영화 '리바운드'에는 2012년 당시 고교 농구 대회에서 뛰었던 허훈, 강상재 등 유명 선수들도 실명 그대로 나온다. 사진 바른손이앤에이

Q : 실존 인물들의 실명을 그대로 썼다.
“관객이 알든 모르든 진정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였다. 실제 상대 팀이었던 허훈‧강상재 선수까지 흔쾌히 허락해줘서 실명을 썼다. 실제 부산중앙고에서 그간 바뀐 모습을 10년 전과 똑같이 되돌려 찍었고, 당시 복장도 살렸다. 강 코치는 당시 너무 어려서 무시당할까 봐 ‘짝퉁’ 명품까지 사서 노티 나게 입었다더라. 배규혁 선수 신발은 단종됐는데, (배 선수 역의 2AM 출신 배우) 정진운이 밑창이 떨어진 신발을 겨우 찾아 본드로 붙여 사용하며 촬영했다. 실제 고등학교 농구는 관중이 별로 없는 점도 그대로 살렸다.”


"매 경기 20~30번씩 봐…관중이 찍은 사진까지 뒤졌죠"

Q : 실제 경기 장면과 영화 속 장면을 겹쳐 보여주는 결말 장면이 화제다.
“당시 모든 경기를 20~30번씩 돌려봤다. 연출부 스태프들한테 헷갈리면 그때랑 똑같이 만들라고 했다. 2011~2012년 당시 부산 거리풍경까지 말이다. 엔딩은 지금과 달랐는데 찍다 보니 지금처럼 가야겠더라. 보도사진이든, 개인 사진이든 당시 찍은 선수들 사진을 최대한 모았다. 10년 전 고교 경기라 자료가 별로 없었다. 선수들의 특징과 투지가 잘 살아난 마지막 사진은 익명의 관중이 찍은 걸 가까스로 찾아낸 거다. 당시 사진과 구도‧색감과 표정이 똑같이 나오도록 엔딩 장면만 하루종일 찍었다. 실화의 주인공인 강양현 조선대 농구팀 코치, 선수진 등이 자문을 맡았다. ”

Q : 동명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농구선수 천기범은 지난해 이 영화 촬영(4월 2일 크랭크인) 전에 음주운전으로 은퇴 선언했다가 일본 팀으로 이적해 논란이 됐는데.
“생각지 못한 일이었고 (영화에도) 영향이 클뻔했다. 스태프들도 동요했다. 이 영화는 농구의 꿈을 잃어버린 공익 청년과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여섯 소년의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사에 초점 두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만들었다.”

영화 '리바운드' 촬영 장면. .선수들 뒤로, 골대 아래 왼팔을 치켜든 이가 장항준 감독. 사진 바른손이앤에이

요즘 스포츠 영화 개봉은 낯설지 않은 추세다. 26일 박서준‧아이유 주연 축구 영화 ‘드림’도 개봉한다. 하지만 ‘리바운드’ 제작을 결정할 때만 해도 스포츠 영화는 투자받기 힘들었다. 장 감독은 "한국에서 스포츠 영화는 ‘국가대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인기가 없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지 않나. 아직도 실제 경기를 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번 영화는 게임 회사 넥슨의 투자 덕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장 감독은 김승우‧차승우 주연 코미디 ‘라이터를 켜라’(2002)로 연출 데뷔한 이래 코미디 영화 ‘불어라 봄바람’(2003), 스릴러 영화 ‘기억의 밤’(2017), 드라마 작가인 아내 김은희(‘킹덤’ ‘시그널’)와 공동 집필한 의학 드라마 ‘싸인’(2011)을 연출했다. 50대에 접어들어 뭔가 탈출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이번 영화에 대한 호평에 힘입어 조심스럽게 다음 행보를 기약했다.
“세상의 수천수만가지 직업 가운데, 돈은 안 되도 제일 재미있는 게 영화감독이죠. 60대에도 영화하길 꿈꿉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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