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개척 준비 했을 뿐인데···도둑이 됐다[개척자 비긴즈]
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아홉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공간 그 자체보다 ‘공동체의 교회됨’을 가슴에 새기고 난 뒤 내 시야는 180도 바뀌었다. ‘그래. 제대로 예배 처소를 찾아보자!’ 공간을 무료로 빌릴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심방하려고 종종 찾아뵀던 한 집사님의 사무실이었다. 넓은 주차공간, 합격! 오피스 건물이니 퇴근 후 사용 가능, 합격! 주일에도 주변 피해 없이 사용할 수 있고 인근에 공원까지 활용 가능, 할렐루야! 가슴이 쿵쾅댔다.
하지만 마음 속 설렘은 왜 그리 행동으로 직결되지 않는지. 공간을 빌려 달라는 말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절하면 어쩌지?’ 수만 번 망설여졌다. 열흘 만에 용기를 내어 결단했다. 약속을 한 뒤 집사님을 찾아갔다. 하필 제조업체 사무실은 가장 바쁠 시기였고 일이 많아서 새로운 장비가 사무실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을 때였다. 누가 봐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사무실은 복잡했고 내 마음은 더 복잡했다. 굳게 마음을 먹고 집사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집사님. 제가 개척 준비하고 있는 거 아시죠? 혹시 이곳에서 예배를 드려도 괜찮을까요?” 집사님의 표정, 그날의 날씨, ‘괜히 말을 꺼냈나?’싶은 마음으로 흔들리는 동공, 커피가 뜨거운지 차가운지 모르고 마셨던 시간 등이 기억에 또렷하다.
어질어질한 내 상태완 달리 집사님은 여유롭게 말씀하셨다. “들어오시자마자 목사님 표정으로 다 알았어요.” 합격이었다. 장비가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좁은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개척을 준비해도 괜찮다는 하나님의 사인 같았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쌀가마니를 내려놓은 듯했다. 걸음은 한껏 가벼워졌다. 그런데 얼마 후 그 걸음이 멈춰지고 말았다. “Y목사! 개척을 준비한다고요? 이 지역에서요? 안 됩니다!”
과거 내가 섬겼던 교회 담임목사님의 말이 화살 같이 가슴에 박혔다. 같은 시 권역이어서 안 된단다. 이 지역에만 600개 넘는 교회가 이미 사역 중인데도 말이다. 그 집사님이 주일에 이 개척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아닌데 집사님께서 흔쾌히 내어주신 공간이 예배 처소가 되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 집사님이 아직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교회는 나의 사역지이기 이전에 나의 신앙터였다. 모교회였고 30년 넘는 세월 함께 했던 내 신앙의 모판이었다. 그 귀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오며 얻은 복음의 밀알을 작게 나마 밭에 뿌려 나가려는 소작농에게 참으로 모진 말이었다.
여기서 마음을 접을 수 없었다. 목사님을 네 번이나 찾아갔다. 간절한 마음, 교회 개척에 대한 진심, 모교회를 향한 변함 없는 응원을 진솔하게 전했다. 돌아온 반응은 나를 ‘양도둑’으로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결코 좁혀지지 않는 마음의 거리만 확인했다. 오히려 사모님께서 아내에게 따로 연락을 해오셨다. 담임목사님만큼 단호했다. “W사모. 이 지역은 아니죠. 개척을 하더라도 다른 지역으로 가보는 게 어때요.”
두려웠다. 되려 우리 가정 때문에, 우리의 개척 여정 때문에, 우리를 응원해주셨던 그 교회 성도님들이 상처를 입을까 무서웠다. 그 공간은 빌릴 수 없는, 빌려서도 안되는 공간이었다. 불합격이었다. 작고 미약하지만 어떻게든 신앙의 울타리를 만들어 가보려는 공동체를 애통한 마음으로 바라봐 줄 순 없었을까. 끌어주고 밀어주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느린 걸음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공동체를 기도하는 맘으로 응원해줄 순 없었던 것일까.
아프고 쓰렸다. 뿌릴 씨앗도, 씨앗을 뿌릴 논과 밭도, 변변한 농기구도 없는 소작농에게 한순간 덧씌워진 도둑 누명은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을까. 내 생각이 짧았던 것일까.’ 목회자인 남편의 부족함 때문에 괜스레 아내까지 가슴에 멍이 들지 않았을까. 억울함 자괴감 미안함 서운함이 뒤섞인 대혼돈의 유니버스가 일상을 에워쌌다.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시간이었다. 마음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한 카페를 지나다 걸음을 멈췄다. ‘주일은 쉽니다.’ 카페교회를 통해 예배를 드릴 생각을 했던 내가 카페를 잊고 있었다. 주변 카페를 둘러보니 주일에 빌려 볼 수 있는 곳이 두세 군데 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았다.
주일에 무료로 공간을 빌려달라는 이야기를 꺼낼 요량으로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아는 집사님께 얘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 카페는 주차가 불합격이네’ ‘이 카페는 예배 드리기엔 공간이 좀 애매하네’ 예배 공간으로서의 부족한 점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핑계였다. 속을 태우며 카페에서 마신 커피값만 쌓여간다. 개척을 한다는 목사의 자신감이 불합격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상남자’가 아닌 ‘하남자’였다. 사람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용기가 나지 않는 현실에서의 대안은 집이었다. ‘매주 수요일 가정예배를 드리는 이곳을 개척 장소로?’ 그렇게 물음표만 던지다가 SNS를 통해 한 집사님의 갤러리 오픈 소식을 듣게 됐다.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찾아뵈었다. 그림, 작가, 판화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설명하시던 집사님의 한마디가 한 방울의 성수처럼 정수리에 톡하고 떨어졌다. “목사님 여기서 찬양하면 어때요? 목사님 찬양 좋아하시잖아요. 매주는 아니어도 목요일 저녁에는 이따금씩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 달 한 번으로 시작해볼까요?” 하남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 같았다. 주일은 아니었지만 한 달에 한 번 갤러리에서 찬양하며 예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나님은 자신감 없이 풀 죽어 있는 내게 용기 한 줌을 보너스 포인트처럼 주셨다.
가정예배 중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를 주님은 기억하고 계셨다. 아내, 딸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던 날이었다. “우리는 찬양으로 개척을 시작하면 좋겠다. OO이는 바이올린, 엄마는 피아노, 아빠는 기타.”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했던 걸 주님은 기억하고 계셨다.
내가 아무것도 아닐 때 일하시는 주님을 만났다. 위축되고 용기조차 없는 내게 기회를 주셨고 찬양예배라는 만나를 보내주셨다. 이렇게 시작된 예배를 통해 힘을 얻었고 주님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갤러리에 더 아름다운 찬양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한 달 한 번 마지막 주 목요일은 그렇게 매달 가장 기다려지는 하루가 되었다. 하남자가 중남자 정도는 된 것 같았다.(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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