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김성한 기밀대화도 엿들었다"...동맹국 무차별 도청 파장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미국 정부의 기밀문건이 온라인에 유출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 정부가 한국 등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감청을 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8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중국 등 민감한 지역과 관련한 정보가 담긴 기밀문건이 온라인에 퍼져 미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며, 이로 인해 미 정부가 러시아뿐 아니라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감청을 했단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관련된 문건을 비중있게 다뤘다.
NYT에 따르면 유출된 문건에는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일 탄약을 미국에 공급할지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 담겼다. 외교당국자들은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 이 문제를 두고 압박할까 봐 우려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최근 사임한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국가안보실 외교비서관 등 외교안보 고위관계자들이 지난 3월 초 나눈 기밀 대화 내용이 미 당국에 흘러들어갔다.
NYT에 따르면 이 전 비서관은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포탄을 제공할 경우, 정부는 미국이 '최종 사용자'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비서관은 또 한국 정부가 분명한 방침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양국 간 정상이 통화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어길 수는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정책 변경을 할 것을 주장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발표와 우크라이나 무기 제공 관련 입장 변경 발표가 같은 시기에 이뤄질 경우 '(무기를 주고 국빈 방문을 얻는) 거래'로 보일 수 있음을 우려했다고 한다. 때문에 폴란드를 통해 155㎜ 포탄 33만발을 '우회 공급'하는 방법을 제안했다는 것이 NYT의 보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26일 미국을 방문하며, 이 사실은 지난 3월 7일 발표됐다.
NYT는 이 대화 내용을 미 정부가 어떻게 알게 됐는지와 관련, '신호정보(SIGINT·시긴트)'를 통해 확보했다는 표현이 쓰인 문건이 있다고 보도했다. 정보기관이 도·감청에 나설 경우 통상 '시긴트'란 용어를 사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3월 초 한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하라는 미국의 요청에 고심했다"며 "한국의 국가안보실장이 서방 무기의 주요 허브인 폴란드에 포탄을 판매하는 방안을 제안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뿐 아니라 영국·이스라엘 등 미국의 주요 우방국과 관련한 내용도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과 같은 주요 동맹과의 외교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신문은 전했다. 특히 안보 관련 기밀 정보를 공유하는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정보공유 채널인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앞서 지난 6일 NYT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비밀리에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지원 계획이 담긴 기밀문건이 트위터와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비롯해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포챈(4chian) 등에서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출된 문건에는 서방의 우크라이나군 증강과 무기 보급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외에도 우크라이나군의 부대·장비·훈련 목록, 다연장로켓인 고속기동포병로켓체계(HIMARSㆍ하이마스)의 탄 소진 속도 등이 담겨 있었다.
미 국방부가 부랴부랴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온라인에 게시된 문건을 모두 삭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음날인 7일, 중국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 기지 정보 등이 담긴 기밀문건 역시 퍼지고 있단 사실이 추가로 알려졌다. 북한 핵 관련 정황이 담긴 문서도 있었다.
유출된 문건은 100쪽가량으로 미 합동참모본부가 국가안보국(NSA), 중앙정보국(CIA), 국무부 정보조사국 등 여러 정보기관에서 수집한 정보를 취합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NYT는 전했다. 이 중에는 '일급 기밀(Top Secret)' 표시가 된 문서들도 있었다. NYT는 "이 문서들은 미국이 러시아 정보기관에 얼마나 깊이 침투했는지 보여준다"며 "러시아가 이를 알게 됐기 때문에 앞으로 우크라이나 측에 실질적인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군사·안보 전문가들은 유출의 배후에 친러시아 세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전직 국방부 고위 관리인 믹 멀로이는 "보안에 심각한 구멍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우크라이나와 미국, 나토에 피해를 주고자 하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것 같다"고 NYT에 말했다. 우크라이나 측에선 러시아가 위조문서를 만들어 퍼뜨렸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확인된 문서들은 '빙산의 일각'이며 더 많은 문서가 이미 유출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러시아군이 개입해 문서를 조작·수정해 퍼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하고 있다. 미 법무부는 국방부와 함께 유출 경로에 대해 수사 중이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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