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비트]회사의 '공짜 밥'은 복지인가, 아닌가[오피스시프트](18)
'비용 절감' 실리콘밸리에선 감축 움직임도
편집자주 - [찐비트]는 '정현진의 비즈니스트렌드'이자 '진짜 비즈니스트렌드'의 줄임말로, 일(Work)의 변화 트렌드를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찐비트 속 코너인 '오피스시프트(Office Shift)'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시작된 사무실의 변화를 꼼꼼히 살펴보고 그동안 우리가 함께해온 실험을 통해 업무 형태의 답을 모색하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콘텐츠가 될 것입니다. 매주 토·일요일 오전 여러분 곁으로 찾아갑니다. 40회 연재 후에는 책으로도 읽어보실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공짜 식사(Free Meal)'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 복지의 상징이다. 2000년대 후반 기술 기업들이 최고의 인재를 확보하려고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재택근무가 활성화된 시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동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휴식할 수 있는 '사내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곧 구내식당이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24시간 케이터링을 제공했다. 음식이 그야말로 널려 있었다고 한다. 트위터는 매일 아침과 저녁을 무료로 제공했을 뿐 아니라 모든 층에 스낵바를 뒀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미슐랭 스타 셰프를 고용해 최고급 요리를 직원들에게 제공하거나 맥주 기계를 둬서 저녁 시간에 무료 식사와 함께 동료들과 술을 한잔할 수 있도록 했다. 실리콘밸리의 구내식당은 '공짜 맛집'이었다. 직원들은 맛집을 놔두고 굳이 사무실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고, 모든 일을 회사 건물 안에서 해결했다.
요즘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에 있는 기업들의 구내식당은 북적인다. 공짜로 질 좋고 푸짐한 밥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국내 IT 업체들이 '나올 맛 나는' 사무실을 만들기 위해 구내식당을 넓히고, 음식의 질을 높이는 등 직원이 먹는 밥에 신경 쓰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중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직원들이 지난해부터 사무실로 나오면서 점심 식사라는 일상의 즐거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기존에는 점심 식사만 무료로 줬다면 이제는 아침, 저녁 식사까지도 회사에서 책임지는 식으로 혜택을 확대했다. 그렇다 보니 구내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포장해서 퇴근하는 직원들도 꽤 있고, 회사 가까이 이사할까 고민하는 직원도 있다고 한다.
게임회사 네오위즈는 올해부터 삼시세끼 식사를 모두 공짜로 제공하고 있다. 넥슨도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야근할 경우 무료 식사가 가능하다. 엔씨소프트는 코로나19 기간 중 축소했던 구내식당 규모를 확대하고 샐러드 볼, 비건 메뉴 등을 추가해 선택지를 확대했다.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한 일부 IT 업체들은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식사를 하거나 식비를 지원하는 식으로 직원들의 밥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
"구내식당 있는 회사가 그 자체로 최고의 복지네."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 올라온 내용이다. 살인적인 물가에 1만원이 훌쩍 넘는 식비를 감당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매일 메뉴를 고르기도 쉽지 않아 그 자체로 큰 복지로 평가받는다.
◆ 작년엔 비슷했는데…1년 만에 실리콘밸리가 달라졌다공짜 식사로 사무실에 돌아온 직원들의 만족감을 높이는 전략, 국내 IT 기업에 앞서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이 지난해 먼저 써먹었다. 공짜 식사뿐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상징적인 복지 서비스를 다시 시작하고, 가수를 초청해 사무실로 출근한 직원들을 반기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2022년 4월 16일 자 '[찐비트]"당신의 출근을 환영합니다" 사무실이 살아있다') 사무실로 복귀한 직원들이 즐겁고 재미있게 회사 생활을 하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1년 새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공짜 음식을 제공하던 실리콘밸리 기업의 수난 시대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수익성이 악화하자 대대적인 비용 절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직원 수천 명을 대량해고하는 상황에서 예전만큼 복지 혜택을 줄 수 없다.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만큼 공짜로 제공하던 음식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구글은 이러한 변화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4월 사무실 복귀를 시작할 당시 재택근무를 줄이는 대신 코로나19 기간 중 중단했던 복지 혜택을 사무실 복귀와 함께 다시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침과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마사지 서비스, 피트니스 센터 등 각종 편의시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재택근무를 원했던 직원들에게 사무실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환경을 마련해 주겠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구글은 1년 만인 최근 복지 축소를 선언했다. 비용 절감을 위한 조치였다. CNBC방송 등에 따르면 구글의 루스 포라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말 기존 복지 방식이 주 5일 근무제에 맞춰져 있었다면서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카페를 폐쇄하고 그 외에 활용도가 낮은 일부 시설도 폐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대부분 주 3일 출근하기 때문에 공급과 수요 비율이 맞지 않게 됐다. 우리는 월요일에 너무 많은 머핀을 구웠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주 3일 출근 근무로 활용도가 낮은 일부 시설은 폐쇄할 수 있다고 했다.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근무를 활용해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최대한 줄여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업들이 이처럼 복지를 대폭 줄이는 현상을 두고 '복지·특전(perk)'이라는 단어와 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리세션(recession)'을 합쳐 '복지세션(Perkcession)'이라고 최근 보도하기도 했다.
◆ 물론 좋지만…사무실 불러내는 효과 있나공짜 식사가 직원들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것을 넘어서서 사무실로 불러내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을까. 국내외 여러 기업이 재택근무에서 하이브리드 근무로 전환하면서 직원과 마찰을 빚었는데, 한마디로 '밥 먹으러 회사 나오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명확한 답은 없다. 물론 직원 입장에서는 질 좋고 양 많은 공짜 음식이 제공된다면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다. 하지만 공짜로 밥을 먹기 위해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난해 11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트위터를 인수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올린 트위터 글을 보자. 그는 "트위터는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식사 서비스에만 연간 1300만달러(약 170억5000만원)를 사용한다. 사무실 출근율은 사상 최대일 때가 25%였고 평균적으로 10%를 밑돈다"며 이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머스크 CEO는 "아침을 먹는 사람보다 준비하는 사람이 더 많다"면서 "공짜 식사 때문에 점심 한 끼에 400달러 이상의 손실을 봤다고 강조했다.
직후 트위터 부동산 및 업무 혁신 책임자로 공짜 식사를 담당했던 트레이시 호킨스 전 부사장이 '거짓말'이라며 식사 비용이 1인당 20~25달러, 사무실 출근율은 20~50% 수준이었다고 반박했지만, 트위터 직원의 사무실 출근율이 최대로 봐도 절반 수준에 그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판교의 한 게임사에 다니는 한 30대 직장인은 "솔직히 회사에 출근하라고 하니까 나오는 거고 어쩔 수 없이 나왔는데 구내식당 밥이 맛있으면 좋을 뿐"이라면서 "밥을 먹으려고 출근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IT 업체에 재직 중인 또 다른 직장인도 "집이랑 회사가 거리가 딱히 멀지 않고 사람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어서 회사에 가서 일하다가 밥 먹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미 직장 내 구내식당 관리 플랫폼 스타트업 쉐어바이트가 지난해 9월 미국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3명 중 1명은 공짜 식사 혜택을 누리기 위해 사무실에 더 자주 오게 됐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1%는 최소 공짜 음식을 제공하지 않으면 오히려 다른 직장으로 옮기게 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공짜 식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2017년 2월 미 마케팅 업체 프랙틀의 설문조사(18~81세 미국 직장인 2000명)를 인용한 내용을 보면 무료 스낵이나 무료 커피 등 공짜 음식을 중요한 복지로 보고 있진 않았다. 공짜 음식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30% 정도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오히려 복지 혜택의 일환으로 설문 대상에 들어간 '재택근무 옵션'에 대해 응답자의 80%가 중요한 고려 대상이라고 답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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