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풍향계] ③ 87년 이후 9번 총선 중 '여대야소' 4번 뿐…역대급 거야구도 바뀔까
'여대야소' 구도 낳은 총선은 17·18·19·21대 때만
국정 운영 위해 합당·의원 꿔주기로 지형 바꾸기도
1년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은 집권 3년차를 맞는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다. 선거 결과가 여대야소(與大野小)냐, 여소야대(與小野大)냐에 따라 집권 후반기 3년의 국정운영 방향은 물론 정국 주도권의 향배가 좌우된다. 이번 총선은 2026년에 치러질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차기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이기도 하다.
여당은 '국정 안정론'을 앞세워 총선 승리를 벼르고 있다. 현 '여소야대' 구도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이 지형을 이번 총선에서 뒤집어야 현 정부의 개혁 과제 추진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정 심판론' 프레임을 부각하며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로 이어지는 전국단위 선거 2연패를 끊어내고, 빼앗긴 정권을 되가져올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다.
오늘날의 구도는 2020년 21대 총선의 결과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이른바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함께 총 180석을 확보한 '역대급' 거대 여당으로 거듭났다.
이후 지난해 대선을 통해 정권이 교체되면서 국회는 여소야대 지형으로 재편됐고, 현재 민주당이 169석, 여당인 국민의힘이 115석이 보유하고 있다. 정의당은 6석, 기본소득당·시대전환·진보당 각 1석, 무소속 7석이다.
여소야대는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을 다수당인 여당이 견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여야 간 대립이 격화될 경우, 거대 의석을 앞세운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운영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역대 정권은 합당 또는 '의원 꿔주기'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바꾸기도 했다.
여당, 주로 인물·구도에서 총선 그르쳐
1992년·1996년, 보수세력 분열로 패배
2000년엔 한나라당 '개혁공천'에 밀려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 이른바 '87년 체제'가 성립된 이후 치러진 9번의 총선을 돌아보면, 대선으로 정권을 잡은 집권 세력이 '중간평가'인 총선에서 쓴잔을 마시는 여소야대가 대세였다. 총선 결과로만 봤을 때 여대야소는 4차례(21대 총선 포함), 여소야대는 5차례였다.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1988년 13대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299석 중 125석을 얻어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구도는 단일 집권여당 민정당에 3개 야당(평화민주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난립한 양상이라 유리했으나 민정당이 공천한 인물이 신군부의 주축이었던 이른바 '육법당(육사+법조)'이라 구태의연했으며, 총선 직전의 바람도 5공 비리의 잇단 폭로로 집권 세력에 불리했던 게 패인으로 분석된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대법원장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가 부결되고 '5공 청문회'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는 등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노 대통령은 7회의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야만 했는데, 이로 인해 '87년 체제' 성립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집권 이듬해 총선에서 참패하며 겪게 된 '여소야대' 구도를 노태우 대통령은 정계개편을 통해 극복했다. 총선 2년 뒤인 1990년 3당 합당(민정당+민주당+공화당)을 통해 집권여당이 219석의 민주자유당으로 재탄생하며, 원내는 압도적 여대야소로 바뀌게 됐다.
하지만 '거대 여당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노태우정부 4년차(1992년)에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은 149석을 얻어 원내 1당의 지위를 유지하기는 했으나, 1석 차이로 과반 의석 획득엔 실패했다.
민자당의 총선 패인으로는 집권 후반기 선거라 바람이 불리했고, 구도 또한 진보 세력은 민주당으로 통합한 반면 보수 세력은 기업인 출신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신당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나서면서 표심이 분열돼 불리했다.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은 차기 대권주자의 자격으로 '얼굴'로 나서 총선을 이끌고자 했으나, 당내 민정계가 견제하고 나서는 등 인물을 둘러싼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다만 민자당은 14대 국회가 열리기 전 무소속 당선인을 대거 영입해 개원 시점에는 159석으로 몸집을 불렸다.
김영삼정부 4년차에 치러진 1996년 15대 총선에서도 여당(신한국당)이 139석을 얻는 데 그쳐 역시 여소야대 결과가 됐다. 신한국당의 과반 달성 실패 요인은 자유민주연합 분당으로 구도가 불리했던 점이 꼽힌다.
당시 총선은 보수와 진보가 각각 분열해 보수는 신한국당과 자민련, 진보는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의 4당 체제로 치러졌는데, 자민련은 김종필 총재를 중심으로 충청권 의석을 석권하며 이 지역에서의 신한국당 의석을 3석(대전 0석·충남 1석·충북 2석)으로 쪼그라들게 한 반면 뚜렷한 지역기반이 없던 민주당은 호남에서 1석도 얻지 못해 국민회의의 독식을 허용했다.
하지만 신한국당은 역시 무소속 의원들과 15석으로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한 통합민주당 의원들을 끌어들여 15대 임기 시작 때는 151석으로 다수당으로 거듭났다.
의원 정수를 273명으로 줄여 실시한 2000년 16대 총선도 여소야대였다. 민주당계 정당이 여당으로 치른 최초의 총선이었지만, 야당이 된 한나라당(133석)이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113석)을 앞섰다.
1997년의 정권교체는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과 김종필 총리의 자민련이 'DJP 연대'로 손을 맞잡아 이뤄낸 성과였지만, 집권 3년차 총선을 치를 때에는 이 연대가 이완돼 있었다. 특히 'DJP 연대'의 고리였던 내각제 개헌을 총선 직전해였던 1999년 7월 포기하기로 선언하면서 집권 세력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이처럼 구도가 불리했던데다 인물 또한 이회창 총재가 '개혁 공천'을 단행하며 오세훈(현 서울특별시장)·원희룡(현 국토교통부 장관) 등 새 인물을 발탁해 한나라당에 밀렸다. 민주당은 총선 사흘전 6·15 남북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하며 '바람'으로 선거를 치르려 했으나, 기대했던 '바람'이 일지 않으면서 실패했다.
여대야소된 2004년, '탄핵 역풍' 때문
MB 취임해 치른 총선도 '바람'이 승인
2012년엔 '미래권력' 전면 나서 승리
직선제 개헌 이후 총선 결과로만 놓고 봤을 때 여대야소가 된 건 2004년 17대 총선이 최초다. 총선을 앞두고 여권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 탈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진영 분열이 일어났고, 야권은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이 터지면서 어느 정당이랄 것 없이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이 아니었다.
총선의 승패를 가른 것은 노 대통령 탄핵 역풍이었다. 선거 한달 전에 민주당과 한나라당·자민련이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하자, 역풍으로 '동정표'가 확산하면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어 과반을 차지하게 됐다. 한나라당은 121석, 민주당은 9석, 자민련은 4석에 그치는 여대야소 구도가 형성됐다.
이후 2차례 이뤄진 총선에서도 여대야소가 이어졌다. 한나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08년에 18대 총선이 실시됐고, 한나라당은 153석을 차지했다.
4년 뒤인 19대 총선은 집권 마지막해에 치러져 불리한 여건이었으나, 인기가 떨어진 이 전 대통령 대신 '미래권력'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전면에 나서 당의 '얼굴'로 총선을 치르면서 새누리당은 152석을 획득해 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여소야대는 박근혜정권 임기 도중 치러진 2016년 20대 총선에서 재연됐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123석)에도 1석 밀려 제2당이 됐다. 원내 1당이었던 여당이 선거 후 제2당으로 내려앉은 건 이 때가 처음이었다. 20대 총선 참패는 결국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구도로만 보면 총선 직전 민주당에서 국민의당이 분당돼 '1여다야'로 유리한 지형이었으나, 새누리당은 공천을 둘러싼 내홍으로 총선을 이끌어야할 김무성 대표가 만신창이가 됐으며,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직접 선거를 이끌 수도 없었다.
반면 민주당은 문재인 대표가 적기에 당대표를 내려놓고 물러났고, 대신 김종인 대표가 전면에 나서 이해찬·정청래 의원을 공천 탈락시키는 등 당의 이미지를 개선해 원내 1당으로 올라서는 성과를 이뤄냈다는 분석이다.
결국 '87년 체제' 성립 이후 9번의 총선 결과를 종합해보면, 집권여당이 승리한 '여대야소'의 경우 △'인물(미래권력이 전면에 등장)'로 승리한 경우가 2012년 한 차례 △'바람(노무현 탄핵 역풍, 이명박정부 출범 직후, 코로나19 대란으로 인한 국정안정론)'으로 승리한 경우가 2004년·2008년·2020년 세 차례로 진단할 수 있다.
반면 집권여당이 패배한 '여소야대'의 경우 △'인물(구태의연한 신군부 인사·야당의 개혁공천에 밀림·여당 당청 갈등)'로 패배한 경우가 1988년·2000년·2016년 세 차례 △'구도(통일국민당 창당·자민련 분당)'로 패배한 경우가 1992년·1996년 두 차례로 분석할 수 있다. 1년 뒤 총선에서는 집권여당과 제1야당에 인물·구도·바람이 각각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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