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주고 입대하기도"…러 전폭기 격추한 우크라 영웅 정체 [이철재의 밀담]

이철재 2023. 4. 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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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이 된 시점이었다.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상공에서 러시아의 Su-34가 휴대용 지대공미사일(MANPAD)인 이글라-1에 맞아 격추됐다.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TDF) 장병이 훈련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우크라이나 영토방위권(TDF)에 자원한 발데마(19)가 참호 속에서 DP27 기관총을 조준하고 있다. 그는 전쟁 전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다고 한다. AFP=연합


러시아의 최신 전폭기 Su-34를 떨어뜨린 용사는 우크라이나의 영토방위군(TDF)의 세르히 치지코브다. 우크라이나 언론에 따르는 예비역 대위인 그는 지난해 2월 24일 전쟁 전까지 우크라이나 우정국에서 은행 업무 책임자로 일했다.

알리사 볼로츠카야는 전쟁 전 간호사였다. 현재 그는 113 TDF 여단의 의무병이다. 그는 프랑스24와의 인터뷰에서 “전투 사상자를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개전 후) 나는 주저함이 없었다. 내 의료기술이 필요로 한 곳에 바로 내가 있었다”고 말했다.

조국이 위험에 처하자 우크라이나의 예비군인 TDF에 자원입대한 이는 치지코브와 볼로츠카야뿐만이 아니다. TDF 소속 수많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지금도 최전선에서 러시아 침략군에 맞서 싸우고 있다.

지난해 3월 이글라-1으로 러시아 Su-34를 격추한 세르히 치지코브다. 그는 전쟁 전 우크라이나 우정국에서 근무했다. Face of Ukraine


그리고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가 강대국 러시아와 1년 넘게 전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엔 서방의 지원도 있었지만, TDF와 우크라이나 국민의 항전 의지가 크게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외국인도 지원 가능한 우크라 예비군

우크라이나군에서 TDF는 독립 병과(branch)로 돼 있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 아래 독립적인 사령부를 꾸려져 있다. 사령관은 이호르 탄츄라 소장이다.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TDF) 장병이 훈련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

TDF는 18~60세의 우크라이나 국민이라면 성별과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다. 외국인도 지원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근씨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TDF 예하 국제군단(International Legion)에서 전투를 치렀다.

TDF의 기원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크림반도와 돈바스의 일부를 러시아에게 뺏긴 우크라이나는 군사력 재건에 들어간다. 1991년 핵무기를 내주고, 대규모 군축을 벌인 대가를 영토 상실로 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사정이 안 좋은 우크라이나는 상비병력을 크게 늘리기 힘들었다. 그래서 예비군에 눈을 돌렸다.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TDF)의 올렉산드르 샴슈르(41)는 전쟁 전 헤어 디자이너였다. 비번 중 잠시 고객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


이후 돈바스에서 러시아와의 무력충돌이 이어졌다. 이른바 ‘돈바스 전쟁’이었다. 애국심 넘치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민병으로 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들을 영토방위대대(TDB)로 조직했다.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도심에서의 전투에서 소규모 부대도 우세한 적을 오랫동안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도시를 '콘크리트 정글'로 만들어진 요새로 쓰는 개념이다. 이 같은 방어의 핵심은 TDB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이 점점 커지자 2022년 1월 1일 TDB를 TDF로 확대했다. 제대 군인 중심으로 꾸린 TDF 부대원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주말에 군사 훈련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TDF)의 올렉산드르 샴슈르(41)가 러시아 드론 방공 작전에 나서기 전 헬멧을 고쳐쓰고 있다. 로이터=연합


그렇다고 설렁설렁한 훈련은 아니었다. 미국과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는 TDF의 훈련을 도왔다. 중앙집권적 대규모 훈련이 아닌 임무형 지휘가 가능한 소규모 훈련이 도입됐다. 나중에 맹활약하는 재블린이나 NLAW와 같은 대전차 무기도 이때 TDF에게 나눠줬다.


뇌물 찔러주고 입대한 우크라 국민들

지난해 2월 24일 오전 5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개전 명령인 ‘특수군사작전’을 선포했다. 볼로미르 젤렌스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0분 후 대통령령 제64호로 계엄을, 제69호로 총동원령을 각각 내렸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의 기동장비를 화염병으로 공격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


그리고 전쟁 개시 후 지난해 3월 6일 모두 10만명이 TDF에 지원했다. 어떤 부대는 상한선이 차 지원자를 더 받을 수 없었다. TDF에 입대하려고 뇌물까지 줬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우크라이나에서도 병역 기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모두 31개의 TDF 여단이 참전하고 있다. 3500명 규모의 TDF 여단엔 7개의 TDB, 박격포중대, 통신중대, 공병중대, 군수지원중대가 편성됐다. 일부 TDF 여단엔 러시아의 특수작전이나 친러 전복활동을 진압하는 대반란중대가 마련됐다.

TDF는 민간 드론을 이용해 적 부대를 정찰하며 표적을 획득하고 화력을 유도한다. 주로 자신들의 동네서 싸우기 때문에 TDF는 지리에 익숙하다. 그래서 이들은 도로 표지판을 바꿔놔 러시아의 진격을 늦추기도 했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대대전술단(BTG)은 우크라이나 TDF가 도심에 쳐놓은 대전차 매복에 걸려 피해를 봤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TDF를 도와 폐차량ㆍ모래주머니ㆍ타이어 등으로 장애물을 쳤다. 맥주 회사는 수백 상자의 맥주병으로 화염병을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소셜미디어(SNS)에 화염병으로 러시아 기동장비를 공격하는 방법을 알렸다.

TDF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지금까지 전투에서 단련된 정예병력이다. 그래서 방어전투에서뿐만 아니라 지난해 9월 하르키우 반격 작전에도 나서 러시아 국경선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와 달리 러시아는 지난해 9월 부분동원령으로 30만 명을 강제징집했다. 동원하는 데 5주 정도 걸렸다고 한다. 질 낮고 전의가 낮은 예비군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고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9월 하르키우 반격 작전에서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TDF) 장병이 세프첸코브 관문 상징을 러시아 국기색에서 우크라이나 국기색으로 바꾼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TDF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은 늘 속전속결전으로 치러지지 않고 장기소모전으로도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92년 LA 폭동서 코리아타운을 지킨 원동력

7일은 제55주년 예비군의 날이었다. 건국 이후 최초의 예비군은 1948년 8월 만들어진 호국군이었다. 50년 국민방위군이 호국군의 뒤를 이었으나, 수많은 아사자와 동사자가 나온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해체됐다. 그러나 68년 1ㆍ21 사태와 1월 23일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을 계기로 그해 4월 1일 예비군이 창설됐다.

제55주년 예비군의 날 포스터. 국방부


예비군은 지금까지 91차례 연 457만명이 대간첩 작전에 투입됐다. 모두 14명을 생포하고 86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뒀다. 44회의 태풍ㆍ수해 복구나 산불 진화에도 동원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켰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7일 예비군의 날에 예비전력 정예화를 강조했다. 인구절벽에 따라 병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방부와 군 당국은 장교와 부사관, 군무원의 숫자를 늘리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서 예비전력 정예화는 필수다.

그러나 인구절벽은 예비군전력 자원의 감소도 부른다. 육군의 ‘예비전력 비전 2030’에 따르면 86년 483만명에 이르던 예비군은 2000년 295만명, 2022년 246만명 점점 작아지는 추세다. 2030년 206만명, 2040년 163만명으로 감할 예상이다.

하지만 예비군의 기본기는 탄탄하다. 2021년 12월 30일 미 공군 출신의 미국인이 길 가던 한국 남자 3명에게 모형 총기를 내밀면서 사격 시연을 부탁한 동영상이 한때 화제가 됐다. 이들 3명은 모두 총기 사용법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앞서 K-예비군의 위력을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92년 4~5월 미국 LA 인종 폭동 당시 현지 한인들이 총리고 무장한 자경단을 조직한 뒤 코리아타운을 사수했다. ‘지붕 위 한국인(Rooftop Korean)’으로 유명해진 한인 자경단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군 복무를 치른 예비군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1992년 LA 폭동 당시 코리아타운 한인 상가 위에서 무장한 채 경계를 서고 있는 한인 자경단원들. 중앙포토


군 당국은 예비군 훈련장과 동원 훈련장을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한 과학화 훈련장으로 바꾸며, 2025년까지 육군동원전력사령부 예하 모든 동원사단의 핵심 무기체계를 상비사단 수준으로 보강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비군을 국군의 한 조직으로 인정해야

무엇보다 예비군의 정체성을 바로 잡아야 한다. 현재 예비군은 국군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국군조직법의 조직이 아니다. 그래서 예비군의 신분은 민병이다. 예비군을 국군조직법에 넣어 육ㆍ해ㆍ공군, 해병대와 함께 국군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게 예비전력 정예화의 출발점이다.

6일 전북 정읍시 국민체육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여성 예비군 소대 창설식. 여성 예비군은 유사시 상황 전파, 기동 홍보, 각종 피해복구 지원활동 등 지역방위의 일익을 담당한다. 육군 35사단


동원령을 선포하는 절차가 복잡하다. 총동원이나 부분동원은 모두 전시 대시(戰時)를 대비한 법에 따른다. 그래서 과정이 5~6일 정도 걸린다. 장태동 국방대 예비전력센터 센터장은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 예비군을 소집하려고 검토만 하다 끝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개전 30분 만에 동원령을 내렸던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동원 관련 법을 전시대기법이 아니라 평시법으로 바꾸려면 국민적 공감대와 정치권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꼭 거쳐서라도 선포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행정안전부 1개국으로 축소ㆍ약화한 국가 비상대비 전담조직을 예전의 국가 비상기획위원회 수준으로 확대 개편해야한다는 게 장태동 센터장의 제언이다.

국방예산에서 예비전력 분야는 늘 후순위였다. 올해 국방예산 57조 143억원에서 예비전력 예산은 0.41%인 2363억원에 불과하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군 당국은 예비군으로 전시 머릿수 채우는데 급급한 인상”이라며 “실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편제와 병력, 장비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비전력 예산을 대폭 늘려야하지만, 200만명 예비군 모두에게 투자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장태동 센터장은 “동원예비군ㆍ지역예비군 30만명 정도를 상비군 수준으로 정예화하는 게 방법”이라고 말했다.

비상근 예비군의 확대도 방법이다. 비상근 예비군 제도는 현역 복무를 마친 병ㆍ부사관ㆍ준사관ㆍ장교 중 지원자가 30~180일 부대에서 근무하는 형태의 예비군 제도다. 파트타임 예비군이라 할 수 있다.

예비군이 대한민국의 국토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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