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국가 중대사가 된 ‘1000원 학식’
여야가 한뜻인 사안을 찾기 어려운 요즘 모처럼 의견 일치가 이뤄진 게 있다. ‘1000원 학식’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8일 아침 당 지도부와 경희대 학생식당을 찾아가서 확대 의지를 밝혔다. 그러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환영한다”고 했다. 이 당의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전국의 모든 대학으로 확산시키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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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밥’ 해결에 정치권 경쟁화
1000원 식사는 보편 해결책 못 돼
대학교육 질 제고부터 고민해야
」
서울의 대학교 주변 식당 밥 한 끼가 8000∼9000원이다. 서너 해 전까지만 해도 5000∼6000원 수준이었는데 지난해부터 부쩍 올랐다. 지난 정부에서의 가파른 인건비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수입 식재료·가스요금 폭등, 자영업자들이 부담하는 대출금 이자 상승 등으로 인한 식당 운영비 증가가 대학생 식사 문제까지 야기했다. 학식(학생식당 밥)도 최소 6000∼7000원은 있어야 먹게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4000원 정도면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으나 이젠 그 돈으로는 편의점 음식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부모가 용돈을 넉넉히 대주기 어려운 가정의 학생, 스스로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생활하려는 학생들의 고단함이 커졌다.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많은 때에 밥 걱정까지 한다. 이 시대 대학생은 생활비를 벌기 어렵다. 과외교사 자리가 드물어졌다. 학원과 일타 강사 인터넷 강의가 사교육을 장악하면서 대학생 과외 시장이 위축됐다. 패스트푸드점·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쉽지 않다. 패스트푸드점엔 자동 주문 장치가 들어섰다. 편의점은 인건비 압박 때문에 주인과 그의 가족이 계산대를 지키는 곳이 많아졌다. 설사 자리가 있어도 장시간 노동은 부담스럽다. 학점·스펙 경쟁에서 밀릴 위험이 커진다. “나는 내가 벌어서 대학 다녔어”는 이제 전설이다.
이런 변화 때문에 저소득 가정의 학생, 자립 생활을 꿈꾸는 학생의 밥 문제 해소가 절박한 사회적 과제가 됐다. 그런데 1000원 학식은 보편적 해결 방안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 제도를 도입했거나 추진 의사를 가진 대학이 41개다. 전체 대학의 10%가 조금 넘는 수다. 1000원 학식은 정부가 1인분당 1000원을 주면 대학이 700∼2000원을 투입해 학생이 1000원을 내고 먹는 밥이다. 정부가 예산을 대폭 늘린다고 해도 대학이 자기부담금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를 운영 중인 학교에서도 제한된 인원수만큼만 1000원짜리 음식을 제공한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좀 나은 경제력을 가진 나라는 대학생 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수업료만이 아니라 생활비도 대출해 주고 돈벌이를 시작하면 갚게 하는 것이다. 영국이 그렇게 한다. 다른 하나는 모든 대학의 식당 운영에 정부(중앙 또는 지방) 돈을 투입해 값을 낮추는 것이다. 독일이 이 방법을 쓰는 대표적인 나라다. 그렇다고 1000원 수준은 아니다. 질 좋은 식사를 5000∼6000원 정도에 제공한다. 독일은 생활비 조달이 어려운 학생에게 보조금을 준다.
대학 등록금 동결 15년째. 살림에 허덕이는 학교가 부지기수다. 기부금과 동문 후원금 덕에 형편이 조금 나은 대학도 1000원 학식을 점심·저녁으로 확대하기가 어렵다. 이 제도가 보편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1000원 학식은 낡은 교육자재 교체나 우수 교원 확충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서로 눈치 보며 동참을 고민한다.
대학생들의 밥을 포함한 자립적 생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대학 교육의 질과 상충한다면 결코 궁극적 해법이 될 수 없다. 본말전도다. 국제적 대학 평가에서 한국 대학의 국제경쟁력이 계속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주요 대학이 아시아권에서도 중국·홍콩·싱가포르·일본 대학에 한참 밀린다.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에게서 이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여당 지도부가 대학에 가서 보고 온 것이 식당뿐이다. 씁쓸하다.
글=이상언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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