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끈한 핏줄' 만들면 돌연사…'심장 시한폭탄' 잡아낼 혈전성향 [건강한 가족]
인터뷰 정영훈 중앙대광명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심혈관 질환(관상동맥 질환)의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돌연사의 주범인 급성 심근경색증은 초기 사망률이 30%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급성 심근경색증 발생과 예후에 ‘혈전 성향’이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받았다. 중앙대광명병원 순환기내과 정영훈 교수의 연구결과가 심장병 관련 국제학술지인 ‘유러피안 하트 저널’에 발표되면서다. 혈전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정 교수에게 그 의미를 들었다.
Q : 급성 심근경색증이 왜 위험한가.
A : “급성 심근경색증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갑자기 꽉 막혀서 심장 일부가 괴사하는 질환을 말한다. 주된 원인은 동맥경화증 때문이다. 동맥경화증으로 좁아진 혈관에 혈전(피떡)이 생기면서 관상동맥이 막히는 것이다. 급성 심근경색증은 급사로 이어질 수 있는 위중한 질환이다. 발견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한다. 평소 건강해 보이던 사람에게도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질환이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Q : 최근 주요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A : “심혈관 질환을 가진 국내 환자 2705명을 대상으로 급성 심근경색증과 혈전 성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혈액의 끈적함을 나타내는 혈전 성향이 높을수록 급성 심근경색증이 잘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스텐트 시술 후 환자의 장기 예후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혈전 탄성 묘사도(TEG) 검사를 통해 환자의 혈전 탄성도 수치를 분석한 결과, 혈액 응고 활성도를 반영하는 ‘혈소판-피브린 응집력(MA)’이 1㎜ 증가할 때마다 급성 심근경색증 발생 위험도는 2%씩 높아졌다. 반면에 ‘혈전 용해력(LY30)’이 1% 증가하는 데 따라 급성 심근경색증 발생률은 7%씩 낮아졌다. 결과적으로 끈적끈적한 피가 심근경색증 발생과 예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Q : 이번 연구결과가 갖는 의미는 뭔가.
A : “신뢰할 만한 검사 방법을 통해 혈전 성향이 심근경색증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세계 최초의 사례다. 그동안 이를 규명하기 위해 혈관 상태에 대한 이미지 검사와 혈류 역학 측정에 기반을 둔 수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하지만 이전 연구에선 심근경색증과 혈전 성향 사이의 연관성을 규명하진 못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환자의 혈전 성향에 따른 맞춤형 치료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국 사이나이혈전센터의 책임자인 폴 거벨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산을 옮겼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도출했다고 생각한다.”
Q : 왜 혈전을 주 연구 대상으로 삼았나.
A : “혈전 성향은 콜레스테롤·혈소판·염증 인자·응고 인자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동물실험을 통해 동맥경화증 진행과 혈전 발생에 주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따라서 환자에게도 혈전 성향이 심혈관 질환의 장기 임상 예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검사 장비와 대규모 임상 자료가 전무한 상태였다. 이에 심근경색연구회의 후원을 받아 국내 유수 대학병원의 연구자들과 협업해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Q : 인종에 따라 혈전 성향의 차이가 있다고 들었다.
A : “그렇다. 일명 ‘동아시아인 패러독스’다. 대체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은 다른 인종에 비해 피가 맑은 편이다. 이에 따라 심혈관 질환의 발생 가능성과 사망률도 서구인보다 현저히 낮다. 실제 다양한 연구에서 동아시아권 환자와 서구권 환자의 혈전 성향 차이가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동아시아인 패러독스 개념을 2012년부터 만들고, 지난 10년간 한국인의 심혈관 질환 특성과 맞춤형 치료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Q : 혈관 관리를 위한 방법이 따로 있나.
A : “혈관 관리를 위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심혈관계 위험 요소를 관리하는 것이다.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 등 심혈관 질환의 유발 인자를 적절히 관리해야 이로 인한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 둘째는 식단 관리다. 포화지방과 염분이 많은 음식은 음주만큼 해롭다. 가급적이면 과일과 채소, 등푸른 생선, 견과류 등을 자주 섭취하는 것이 좋다. 셋째는 유산소 운동이다. 적당히 숨이 차는 강도로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병행하면 심장과 혈관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 마지막은 물리적으로 혈관을 위협하는 요소를 피하는 것이다. 담배나 대기오염, 코로나 감염은 혈관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다. 피가 끈적끈적하고 잘 녹지 않게 될 경우 염증 수치와 혈전 성향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신영경 기자 shin.young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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