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책 읽는 할아버지 모습이 넘 멋있어요"

박도 2023. 4. 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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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그 집에서 자주 드는 단골 메뉴인 칼만둣국을 맛있게 먹은 뒤 산책길로 구룡사 계곡, 부론 남한강둑, 금대리 계곡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공원 한쪽 등나무 의자 밑에는 장기 및 바둑판을 앞에 둔 노인들이 많았고, 오솔길에는 주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동네 사람들로 붐볐다.

봄 가뭄의 계절, 단비 후 유난히 화창한 토요일 오후 나는 공원에서 책을 읽는 멋있는 할아버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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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의 치악산 일기] 제109화 하늘에 있는 친구를 생각하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도 기자]

 단관공원에서 책 읽는 필자
ⓒ 이윤나(원주, 단구중)
 
공원에서 책 읽는 할아버지

지난해 가을부터 이웃의 소개로 매주 토요일 낮 두세 시간 청소도우미로부터 가내 청소 혜택을 받고 있다. 그 시간 늙은이가 집안에서 어정거리면 피차 불편할 것 같아, 외식을 겸하여 가까운 공원을 한바퀴 돌아오는 게 상례화 됐다.

이번 주 토요일 도우미가 도착하자 마침 요즘 한창 개작할 작업용 책을 가방에 넣은 뒤 평소 자주 가던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개성 만두집으로 갔다. 그 집에서 자주 드는 단골 메뉴인 칼만둣국을 맛있게 먹은 뒤 산책길로 구룡사 계곡, 부론 남한강둑, 금대리 계곡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주말인 탓인지 평일보다 도착하는 시내버스가 뜸했다.

마침 16번 시내버스가 곧 온다고 정류장 표지판에 뜨기에 정류장 안내판의 경유지를 보니까 박경리문학공원, 단관공원이 있다. 그 두 곳 중 어느 한 곳에 내려 봄볕을 즐기면서 하던 작업을 계속키로 작정했다.

막 도착한 버스를 타고 박경리문학공원에 이르자, 그곳은 이미 서너 차례 들른 곳이라 지나친 뒤 다음 정류장인 단관근린공원에 내렸다. 그 공원은 버스를 타고 여러 차례 지나쳤던, 언젠가 한 번 꼭 들러보고 싶었던 공원이었다.

공원 시설이 매우 훌륭했다. 축구장, 농구장 등 각종 체육시설이 잘 갖춰졌다. 토요일 오후 탓인지 청소년들이 많았다. 지난날 운동장에는 남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즈음은 남녀가 거의 반반씩이었다. 스타 선수도 남녀 구별이 없는 이즈음이다. 공원 한쪽 등나무 의자 밑에는 장기 및 바둑판을 앞에 둔 노인들이 많았고, 오솔길에는 주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동네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조금 한갓진 농구장 옆 벤치에 앉아 개작할 작품을 펴들고 붉은색 볼펜으로 원고를 열심히 가다듬었다. 한참 뒤 농구 링에 공 넣기에 열중하던 한 여학생이 나를 향해 말했다.

"공원에서 책 읽는 할아버지 모습이 넘 멋있어요."

조금 전, 그가 던진 공이 링에 꽂힐 때 박수를 쳤는데, 바로 그 학생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셀카로 내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다가와 할아버지 무슨 책이냐고 묻기에 말했다.

"이 책은 할아버지가 고1 때 짝이었던 친구를 모델로 쓴 소설인데 다시 펴내려고 고쳐 쓰고 있는 중이야."
"할아버지, 그 친구 아직도 살아 계세요?"
"아니, 오래 전 미국 뉴욕에서 하늘나라로 갔단다."

그는 그 책을 보자고 하더니 날개에서 저자의 이름을 확인한 뒤 돌려주면서 말했다.

"책이 나오면 꼭 사서 보겠어요."
"고맙습니다."
 
 공원 농구코트의 청소녀들
ⓒ 박도
 
친구가 그리워지는 요즘

봄 가뭄의 계절, 단비 후 유난히 화창한 토요일 오후 나는 공원에서 책을 읽는 멋있는 할아버지가 됐다.

내 작품(가제 '워커') 속 주인공은 중동고교 57회로 1968년도에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한 '양철웅' 친구다.

아마 그는 하늘나라에서 꼬박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요즘 따라 죽음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기다려진다.

"친구, 최선을 다해 그려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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