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에 이별노래 작사 부탁했더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
[손화신 기자]
▲ 가수 박재정 SNS에 게재된 챗GPT와의 대화 |
ⓒ 박재정 인스타그램 캡처 |
지난 2월 24일, 가수 박재정이 자신의 SNS에 "1집을 제일 먼저 읽은 인공지능"이란 글과 함께 챗GPT로부터 받은 답변을 게재했다. 챗GPT 입력창에 자신의 신곡 가사를 입력한 다음 노랫말이 어떤지 봐달라고 요청해서 받은 글인 것.
챗GPT는 "헤어짐의 아픔과 그리움, 그리고 그 이별에 대한 아픈 결심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마음이 잘 담겨있다"라는 분석과 함께 "이 가사를 기반으로 좋은 멜로디를 붙이면 분명 좋은 곡이 될 것 같다, 수고하라"는 응원과 조언을 내놓았다. 챗GPT는 이렇듯 사람이 쓴 가사를 해석하는 것뿐 아니라 직접 작사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직접 실험해봤다. 챗GPT 입력창에 "이별의 슬픔을 간직한 사람이 화자인 노래 작사해줘"라고 쓰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출력됐다.
▲ 챗GPT의 답변 |
ⓒ 챗GPT 화면 캡처 |
같은 질문을 입력해도 매번 다른 가사를 출력해 준다는 점, '하지만 이젠 그대 없이도 살아갈게'처럼 이별의 슬픔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현했다는 점 등에서 놀라웠다. 다만, 비유 등의 문학적 표현방식까지 동원해 이별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지만 하나같이 전형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한마디로 독창성의 부재다. 독특하고 구체적 소재 혹은 콘셉트를 설정한다든지, 특이한 비유를 쓴다든지, 파격의 미학을 선보이는 일은 없었던 것. 인간이 만든 노래와 한번 비교해보자.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란 곡의 가사다. 이 노래는 블랙홀의 경계인 사건의 지평선이란 과학적 이론을 소재로 하여, 예측되지 않는 이별 그 너머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챗GPT에 '블랙홀을 소재로 삼은 사랑 노래 작사해줘'라고 질문을 구체화하여 요청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어둠 속 끝없이 빠져드는 내 마음은 블랙홀 같아 너만의 중력에/ (중략)/ 우주를 넘어서는 우리의 사랑은 계속해서 번져가겠지 너 없는 세상은 블랙홀 같아"
질문을 구체적으로 했을 때 좀 더 독창적인 가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 하나 더 살펴보자. 태연의 '11:11'는 시계에 빗대어 가사를 쓴 사랑 노래다.
"It's 11:11/ 오늘이 한 칸이 채 안 남은 그런 시간/ 우리 소원을 빌며 웃던 그 시간/ 별 게 다 널 떠오르게 하지/ (중략)/ 내 맘은 시계 속의 두 바늘처럼/ 같은 곳을 두고 맴돌기만 해"
가사를 보면 시계 속 두 바늘에 화자의 상태를 빗댄 비유가 구체적이고 참신하다. 이별 노래를 만들어달란 요청에 마치 동의어를 반복하듯 '너가 떠나 슬퍼' 투의 식상한 변주만 했던 챗GPT와 대조적이다.
▲ 챗GPT의 답변 |
ⓒ 챗GPT 화면 캡처 |
이번엔 노래의 '내용'이 아닌 노래의 '음악적 분류'를 세부 질문으로 잡고 질문을 던졌더니 더욱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됐다. "신나는 K팝 스타일의 이별노래 작사해줘"라고 입력하자 답변창에는 "Goodbye, goodbye, 내게 끝인 이별이야"와 같이 영어를 섞은 가사가 출력된 것.
무조건 구체적으로 질문한다고 질 높은 결과물이 도출되는 게 아니라 챗GPT가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는 질문을 해야 유용한 답변이 돌아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후렴구와 코러스 부분 등을 나눠서 구조적으로 작사를 한 점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사 내용이 교과서처럼 빤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AI는 분명 똑똑하지만, 이러한 창작 분야에 있어서는 개성 없는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만일, AI가 인간의 작품처럼 개성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그땐 사람들이 감동받을 수 있을까?
AI의 창작물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왜일까? 지난 2019년 6월 15일 방송한 KBS2 <대화의 희열 2>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날 방송에선 소설가 김영하가 출연해 'AI시대와 소설'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로봇이 사람 소설가를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그게 인공지능이란 걸 아는 순간 마음이 차게 식기 때문이다. '넌 안 죽잖아', '네가 어떻게 알아' 이렇게 되는 거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상실감을 기계가 알 리가 없잖나.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낼 뿐이다.
우리가 인간의 예술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이 기계보다 잘 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늙어가고, 나와 같이 가까운 사람의 상실을 겪는 그런 것. 그걸 기계가 하면 인간은 '어디서 아는 척이야?' 이런 반응을 하게 된다. 로봇이 진짜로 그걸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다." (소설가 김영하)
▲ 소설가 김영하 KBS2 <대화의 희열 2> 한 장면. |
ⓒ KBS2 |
결국 챗GPT가 강점을 보이는 건 인간의 감정에 관련한 영역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다시 챗GPT에 질문을 던져봤다. 이번엔 작사를 해달라는 요청이 아닌 비즈니스 관점의 질문을 준비했다. "K팝 시장에서 어떤 노랫말이 성공할까"라고 입력했고, 이에 챗GPT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K팝은 대부분 국제적인 시장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영어와 한국어를 혼용한 가사, 그리고 다국어 버전의 노래도 성공적일 수 있습니다."
핵심을 잘 파악하고 내놓은 유용한 답변이었다. 창작 영역인 작사보다는, 비즈니스 영역인 작사 잘하는 방법론에 대한 질문에 더 강점을 보인 셈이다. 챗GPT가 작사라는 창작의 결과물을 내놓으면 우리 인간은 '어디서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냐'라며 불신하지만, 엄청난 데이터베이스에 기반 하여 K팝 시장에서 성공하는 노랫말을 분석해 내놓으면 우린 이것을 보다 거부감 없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챗GPT는 '정답'이 있는 것에 강점을 보이고, 반면 인간의 마음 같은 정답이 없는 문제에는 약점을 보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전문가의 의견은 어떨까. 지난 달 29일 숭실대학교 AI·SW융합학과 최형광 교수에게 창작 도구로서의 챗GPT의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이 질문에 최 교수는 "저작권 이슈가 가장 문제인데 그것도 학습하면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고 피해가는 게 가능하다"라며 "챗GPT는 인간이 만든 하나의 도구인데, (창작 영역에서의 문제나 한계 때문에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이 도구를 활용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일자리 침해에 대한 고민은 하고 있고, 이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더 고민해야 할 포인트다. 그럼에도 (이를 극복해) 새롭게 태어난 이 도구가 우리 사회에 '나눔과 상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이롭게 사용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선진국은 이걸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보다 인문학적 입장에서 챗GPT를 바라보고 이것이 인간을 위한 '진화'로 나아가도록 우리가 잘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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