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들이 계속 듣고 싶은 말은 "함께 하겠습니다" [10.29진실버스]
10월 29일 토요일. 이태원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선 자녀, 연인, 친구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애도할 새도 없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 지 150일. 하룻밤 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이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상규명의 과제를 알리기 위해 버스를 타고 전국 일주에 나섰습니다. 그 현장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10.29 진실버스]
9박 10일간의 10.29 진실버스 일정이 끝나고 참사 160일 째 아침을 맞았습니다.
희생자 오지민씨 아버지 오일석씨는 "눈 뜨자마자 큰일 났네. 아침 선전전(피케팅)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라며 "축제가 끝나고 밀려오는 공허함이랄까, 기분이 묘한 아침입니다"라고 아침 인사를 남겼습니다.
희생자 송채림씨 아버지 송진영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오늘도 분향소에 나갔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짐들을 챙기고 분향소 옆 유가족들이 머무는 텐트를 정리합니다.
송 부대표는 단톡방에 분향소에 사과 먹으러 오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지난 9박 10일간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함께 했던 이들이 갑자기 없어지니 잔칫집에 손님 빠지고 난 후의 모습이라며 허전한 마음을 살짝 내비칩니다.
희생자 박가영씨 어머니 최선미씨는 진실버스 순회 일정을 기획해주신 각 지역 대책회의 분들에게 인사를 전했습니다. "너무×5 고맙습니다"라며 하트를 보내셨습니다. 희생자 최유진씨 아버지 최정주씨를 포함해 양한웅 단장, 박민주 국장 등 진실버스의 9박10일 전 일정을 함께한 이들 모두 서로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진실버스가 진짜로 끝났습니다.
▲ 추모대회에 참석한 시민이 가방에 10.29 이태원 참사의 상징 별자리 배지를 달고 있다. 배지는 한정판으로 4월 21일까지 텀블벅 사이트에서만 구매 가능하다. |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
옛날에 재난은 별들이 길을 잃어 생긴 것으로 여겼습니다. 국가 시스템의 부재로 참사를 당한 159명의 희생자가 '길 잃은 별들의 길'이 되어 다시금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안내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10.29 이태원 참사의 상징을 '별'로 만들었습니다.
핼러윈 축제의 호박 가면을 상징하는 주황색과 애도와 독특함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보라색을 섞어 노을빛의 큰 별과 4개의 작은 별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별자리 속 4개의 별은 네 그룹의 피해자들, 다시 말해 희생자, 생존자, 지역주민(상인), 그리고 공적 구조자와 우리(목격자)를 의미합니다.
▲ 국회 생명안전포럼 우원식 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5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 열린 '159개의 우주가 사라진 159번의 밤과 낮 -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159일 시민추모대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
ⓒ 권우성 |
참사 159일 저녁 7시에 진행된 시민추모제에서 국회 생명안전포럼 소속 국회의원 14명이 10.29 이태원 참사 상징인 주황색과 보라색이 섞인 별이 그려진 연보라색 단체 티셔츠를 입고 나왔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생명안전포럼 대표 우원식 국회의원은 '작심하고 나선다는 의미'로 단체티셔츠를 맞춰 입었다고 말하며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습니다.
▲ 10.29 진실버스 해단식 단체사진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시청광장 합동분향소 앞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를 포함한 특별법 제정을 외치고 있다. |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
"이제 이게 살아가는 일상이 돼버렸어요"
참사 161일, 162일, 200일, 500일, 1,000일, 10,000일…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유가족들도 일상을 살아야 합니다. 유진이 아빠 최정주씨는 진실버스 해단식에서 이런 소감을 말했습니다.
"저희가 유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희는 항상 슬프고 무겁고 어둡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때도 많습니다. 근데 저희도 불과 159일 전까지는 여러분들하고 똑같이 일상을 가지고 있었던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열흘 동안 같은 유가족으로서 세 분과 같이 버스 안에서 숙소에서 거리에서 함께 웃었습니다. 159일 동안 저희가 웃지 못했던 웃음을 같이 옆에 도와주시는 활동가분과 시민들과 이야기하면서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습니다."
송진영 부대표는 9일 차 대전지역 간담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희가 이제, 이게 살아가는 일상이 돼버렸어요. 일단은 저희가 웃으면 '유가족이 웃고 떠든다' 막 이러는데... 저희가 웃고 떠드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나마 우리끼리 있으면서 웃고 떠들 수 있기 때문에 저희는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은 오해가 없으시면 좋겠습니다."
진실버스 일정이 끝나도 아침에 눈을 떠서 분향소에 나가는 삶. 그 어떤 방법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그리움을 안고 사는 삶. 다시는 나와 같은 슬픔을 겪는 이들이 없도록 이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삶. 그렇게 참사 이후 달라진 삶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웃음이 빠질 수 없습니다. 진실버스 일정 중 유가족들에게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진주에서 유가족과 피케팅을 함께한 경상대학교 학생들이 유가족에게 편지와 비타민 음료, 그리고 목에 좋은 사탕을 전달했다. |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
▲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정읍의 한 돌솥밥 식당에서 식사 후 사장님과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
▲ 광주 오월어머니집 관계자는 방문을 마치고 떠나는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에게 떡과 식혜, 계란을 싸주었다. |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
▲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과 창원 시민대책회의 관계자가 저녁 피케팅 이후 벚꽃길에서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
▲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수원에서 서울 이태원으로 향하는 진실버스 마지막 일정 중 휴게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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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0.29 진실버스'는 참사 150일인 3월 27일에 서울을 출발해 인천, 청주, 전주, 정읍, 광주, 창원, 부산, 진주, 제주, 대구, 대전, 수원을 거쳐 참사 159일인 4월 5일에 참사현장인 이태원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열흘간의 전국을 순회하며 10.29 이태원참사를 알리고 독립적인 진상규명 기구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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