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남자 등친 베트남 여성? '신성한, 이혼'의 무례함
[고은 기자]
JTBC 주말 드라마 <신성한, 이혼>은 매주 낯설고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외도한 유책배우자이자 불법촬영물 유포 피해자인 여성이 왜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지 되묻고 시어머니를 폭행한 며느리가 완전무결하지 않아도 되찾을 명예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 증인석에 앉은 원고인 딘티화와 심문하는 신성한 변호사. 유튜브 캡처 |
ⓒ JTBC |
7~9화를 걸쳐 전개된 '이주여성의 이혼 소송기' 또한 익히 알던 서사를 한 번 뒤집는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국제결혼을 한 '딘티화'는 남편의 폭행을 신고한 후 이혼 소송을 진행한다. 재판이 여론전으로 번지자 사람들은 타국에서 어린 여성을 사와 폭행한 남편 '마춘석'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 떠들썩한 판에 낀 신성한은 '마춘석' 변호를 맡게 되고 그가 이혼을 요구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러 나선다.
'농촌총각 장가 보내기'가 지자체 정책으로 시행될 만큼 국제결혼은 국가가 공공연히 승인한 인종화, 계급화된 착취다. 이주여성을 도구 취급하는 '매매혼'이라고 비판받은 이후 제도가 점차 폐지되고 있으나 사람들의 머릿속 약자의 자리에는 여전히 이주여성이 놓인다. 낯선 문화와 서툰 언어, 남편과의 나이차, 임신/출산/육아를 모두 떠안은 이주여성의 권위는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기울어 있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 언론에 일침 가하는 신성한 변호사와 기사 헤드라인. 유튜브 캡처 |
ⓒ JTBC |
소송이 취하된 후 언론은 이같은 헤드라인을 적었다.
"여론의 마녀사냥"
"여론의 폐단"
"여성은 약자라며 접어주고 시작하는 우리의 무서운 편견"
"신성한 변호사의 묵직한 질문, B씨만 명예훼손했을까"
한 사람을 순식간에 매장하는 여론몰이는 마춘석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이 맞다. 화제를 좇고 사건을 키우는 언론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다.
과연 여성은 약자라며 접어주고 시작한 편견 때문에 마녀사냥이 벌어졌나. 무섭다고 얘기할 정도로 어떤 실질적인 공포가 일어났나. 앞선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면 바로 다음에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뻔하다. 약자라고 무조건 편들지 말아야지, 이주여성이 피해를 고발해도 한 번은 의심해 봐야지. 진짜 피해자로 검증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해야지.
위 같은 인식 틀이 굳어진다면 이주여성은 남자에게 폭행당하거나 순진한 농촌 남자를 등쳐먹거나 둘 중 하나로 상상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드라마가 취해온 가해와 피해의 난맥을 가로지르는 사고의 확장이 이번에는 단단히 실패했다. 다른 집단과 달리 이주여성들은 한국 사회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집단으로 부상한 적 없고 가부장제, 제국주의와 공모한 국제결혼 속에서 발생하는 피해의 맥락은 드라마가 재현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편견의 전복을 말하려면 이주여성들이 최소한의 권위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어떠한 처벌 없이 용서받은 딘티화가 가족의 일원으로 통합되는 장면에서 이주여성의 현실을 봤다. 마춘석이 사랑이라 말했어도 불륜과 혼외자식을 눈감을 정도로 노모에게 안겨줄 자식과 정상가족 봉합이 중요했는데, 그런 이유로 죄를 사면 받은 딘티화가 귀속되는 유일한 곳이 다시 가정인 셈이다.
한국일보 제3회 기획취재공모전 우수상작 <구멍 난 결혼이민비자>에 따르면 출입국·외국인청은 F-6-1(결혼이민비자) 연장에 앞서 '혼인의 진정성'을 심사한다고 한다.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위장결혼이 아닌지 살핀다는 것인데, 이를 남편에게 확인한다. 따라서 체류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가정폭력, 타지 적응, 언어의 문제 등은 개인이 감내해야 한다.
이혼을 원할 경우 남편에게 귀책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이혼 이후 체류자격을 얻지 못한다. 기획취재기사 인터뷰이인 정혜실 이주민방송 대표는 "한국인의 이혼 사유 대부분에 해당하는 성격 차이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주여성에게는 이혼할 권리마저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이주여성이 누구인지, 어떤 현실에서 살고 있는지 미디어가 노출하는 몇 가지 이미지로 알 수 없다. 2020년 기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결혼이민비자를 가진 여성이 13만 7천 여명이다. 그런데 사회는, 우리는 그들의 집단적 목소리를 들으려 한 적 있던가.
▲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한인정). 책 표지 양면 |
ⓒ 포도밭출판사 |
충북 옥천군 이주여성들은 2020년 초 당사자들이 직접 비영리 민간단체 '결혼이주여성협의회'를 꾸렸다. 시혜와 동정의 대상에서 벗어나 존엄을 세우기 위해, 대신 싸워주는 사람이 없으니 두 팔 걷고 생존 투쟁에 뛰어든 것이다.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이주여성 정책이 전무한 선거판을 비판하며 가족에 얽매이지 않는 이주여성의 고유한 삶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족 중심인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또한 자체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당사자들의 집단적 움직임을 통해 처음으로 자리 없는 자들의 자리 찾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주여성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이제 막 존재를 드러낸 자들에 대한 섣부른 재현을 멈칫거려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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