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노동 강도와 속도를 같이 고민해야"
[조건희]
▲ 대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3명의 활동가. 왼쪽부터 최민(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이상현(414 기후정의파업 서울조직팀), 이재민(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 |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 각 단위에서 조직화를 하며 주로 누구를 만나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고 있나요?
이상현 : "조직된 조직도 다시 보자는 생각이 있어요. 어떻게 나의 문제로 여기고 활동할 수 있느냐에 대해 어려운 부분도 여전히 많은 것 같아요. 저희가 찾아가는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같이할 수 있는 활동을 모색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와 만났는데, 기후정의파업이 의료공공성 강화와 어떻게 연결될지, 현장의 고민은 무엇인지 등을 함께 얘기했어요."
이재민 : "장애인 당사자들이 스스로 외칠 수 있는 스피커가 되었죠. 지하철 타기 투쟁과 동시에 178명의 중증 장애인이 매일 삭발 투쟁을 진행했어요. 이 투쟁의 가장 큰 성과라면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지하철이라는 공간에서 이 투쟁의 필요와 의미를 밝히며 운동 주체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시민들도 조직하고 있어요. 긴 시간 지하철 선전전을 하며 온갖 혐오에 부딪히고 있는데, 이런 행위가 시민들이 장애인에 대한 권리를 깨닫게 하는 지점들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이 이동하지 못하고 감옥 같은 시설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들을 폭로하면서, 그 차별의 구조를 공고히 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들도, 엄연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다는 것들을 얘기하며 함께 행동하자 활동하고 있습니다."
- 각 단위에서 공공성 강화를 주장할 때 어떤 점을 강조하고 있나요?
이상현 : "기후정의 운동에서 사회 공공성을 요구하는 건 시장주의를 넘어서자는 의미가 강해요. 삶에 필수적인 것들, 의식주나 교육권, 이동권 등은 돈이 있건 없건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에너지에 대해서도 저소득층에 바우처를 주는 게 아니라 필수 권리로서 사회가 보장하고, 이를 위해 민영화된 산업을 공영화하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교통에 대해서도, 요금을 올려 적자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지자체가 당연히 책임지고 운영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고요. 결국 많은 영역에서 공적 통제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이재민 :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광역버스 중 저상버스가 한 대도 없어서 놀랐어요. 충전소가 없어서 그렇다고 얘기하던데,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 장애 운동에서 교육, 이동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진입조차 배제당했던 사람들에게 공공성은 사실 익숙한 단어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럼에도 공공성은 서비스가 아닌 권리의 영역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이야기해야 해요. 가령 정부가 말하는 개인 예산제는 개인에게 투입되는 예산을 정해 그 안에서 서비스를 선택하라는 건데요, 자유롭게 활동 지원을 받을 권리를 포기하면서 이동할 권리를 선택하는 건 권리가 아니에요. 그렇게 서비스란 이름으로 포장하며 권리의 공공성을 침해하는 것을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최민 : "자본은 개인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엄청 활용하는 것 같아요. 그들이 노동시간을 개악하려 하면서 쓰는 말도 '선택권 확충'인데, 내 몸이 상하도록 일하는 걸 선택이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그런 점에서 사회적 구성원들이 합의하는 공적 규제가 더 필요하다는 점도 공공성의 중요한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유연성이 아니라, 하루에 몇 시간 이상 일하면 안 된다는 식의 규제가 더 필요하죠."
- 어떻게 정의로운 전환을 할지 잘 모르거나 엄두가 안 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전면적 전환을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요?
이상현 : "노동과 기후가 맞닿는 지점이 깨끗하고 안전한 녹색 일자리 제공이라고 생각해요. 기후정의 운동에서 요구하는 재생에너지 전환에 지역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자는 것도 있어요. 그러면 필수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에너지 전환 사업도 이루어져야 하죠. 그 과정에서 일자리가 갖춰야 할 적정 노동 강도와 속도를 같이 고민하는 것도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대안인 것 같습니다."
최민 : "버스를 전기차로 만들어 어떻게 상용화할지는 논의하지 않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전기로만 되면 전환인 것처럼 광고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해준 노동자가 있어요. 이처럼 모두가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버스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만드는 노동자도 밤새워 일하지 않는 것이, 같이 만들어야 할 정의로운 전환의 모습이 아닐까 해요.
또 석탄 채굴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정말 많은 노동자가 죽었잖아요. 석탄을 캐다가 갱도가 무너져서 죽고, 화력발전소에서 죽고, 심지어 발전소 폐쇄 과정에서도 죽기도 했고요. 노동자도, 지구도 죽여왔던 산업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넘어갈 때는 적어도 노동자를 갈아 넣는 방식은 아니어야 해요."
- 일률적 속도의 강요에 맞서 배제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를 함께하기 위해 더 필요한 과제는 무엇일까요?
이상현 : "상품을 지금처럼 그렇게 빨리, 많이 안 만들어도 된다면 노동자들이 그런 속도로 움직일 필요가 없고, 오히려 여러 속도나 과정을 존중하거나 인식하면서 갈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표준에서 배제된 주체를 중심으로 그들의 관점에서 이 사회의 속도와 생산, 소비를 다시 편성하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폄하, 배제, 소외되어왔던 영역에 주목하고, 이 사회에서 다시금 자신의 자리를 갖게 하는 게 핵심일 것 같아요."
이재민 : "개인의 손상에 기인해서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요소와 속도 자체가 장애를 만든다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저희는 강조하고 있어요. 개인을 차별하고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게 무엇의 부족함에서 기인하냐고 물었을 때, 모두를 위한 해방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아요.
또 각자의 위치에서 조직적인 권한 발휘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서울교통공사가 우리를 억지로 내몰아 노동 강도가 너무 심해졌기에 작업을 거부하겠다는 등 권한 발휘의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에 대해 조직적 연대를 만들어 공통의 과제로 가져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최민 : "실제로 같이 일하는 경험, 진지하게 교육받는 경험을 우리 일로 여기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우리 사업장에도 장애인 특례로 들어온 노동자들이 있을 텐데 지금 노조원으로서 그분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등을 자세히 이야기할 때 운동이 더 넓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모두의 해방을 위해 옆을 항상 같이 봐야 할 거 같네요."
- 투쟁을 조직할 때 다양한 몸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하는 게 중요하고 또 어렵기도 합니다.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이나 방법이 있나요?
이상현 :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다만 대원칙에 장애인, 이주민, 빈곤층을 포함한 소수자가 참여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게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독일에 '엔더 겔랜더'라는 시민 불복종 기후운동이 있는데 단체의 얼굴은 여성과 퀴어야 하고 백인 남성 리더를 재현해서는 안 된다거나, 여러 개의 점조직이 각자 자기의 특성을 가지고 참여하며 합의제로 행동 방식을 결정하는 체계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 거를 적용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재민 : "전장연은 그런 고민이 많이 드는 조직이에요.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서 저녁까지 일하는 활동가도 많고 언론 반응이나 정치인들의 공격, 정책발표의 순간들도 굉장히 빠르고요. 발언 요청할 때나 안건지 만들 때 더 일찍 공유해야 한다거나, 쉬운 단어를 써야 하는 예도 있죠. 그럴 때 각자의 속도나 어려운 점을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르잖아요. 최대한 많이 얘기하고 확인하며 해결책을 조직적으로 모색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제일인 것 같아요."
- 같이 하고 싶은 활동을 제안한다면?
이상현 : "모두를 위한 녹색 일자리를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만들어갈지 논의하고 싶습니다. 거기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어떻게 보장할 것이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끔 적정 속도는 어떻게 산출할 것인지 등을 같이 구상하고 싶어요. 직장에서 작업 속도를 늦추는 운동도 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시달려 가며 일하지 말고 우리 천천히, 쉬면서 일하자는 운동을 생산과 소비의 영역 모두에서 해나가고 싶습니다."
이재민 : "3월 26일이 최옥란 열사의 기일인데, 이날을 기점으로 420 공동투쟁을 선포하고 한 달간 다양한 투쟁을 집중적으로 진행합니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는 행진도 크게 할 예정입니다. 1997년 영국에서 장애인 차별금지 투쟁을 할 때 10만 명 정도가 모였대요. 우리도 모두의 해방을 위해 다 같이 모였으면 해요.
작년 폭우 사태 때 발달장애인이 돌아가셨던 것처럼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평등하지 않잖아요. 그런 거에 더 긴밀히 연대하고 싶어요. 또 저희 삭발 결의문 중, 장애인 공공일자리에 처음 출근한 날 '한글은 쓰실 줄 아세요?'라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런 차별의 영역까지 노동안전의 중요한 문제로 여기며 함께 연대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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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건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4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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