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아깝다고 빗물도 받아두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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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주 기자]
재난 문자가 오기 시작한 것은 작년 말부터였다. '광주광역시 식수원인 동복댐의 저수율이 20%대가 되었으니 물절약을 생활화 하자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보고 겨울 가뭄이 심각한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거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문자가 온 이후로도 가뭄은 계속되었고, 우리 지역 상수원의 저수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상태가 이대로 지속되다가는 3월부터는 격일제 급수가 시행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가 바뀌었다. 봄이 되었지만 뾰족한 수는 생기지 않았다. 문자는 계속되었고, 말라가는 댐을 바라보는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샤워 시간을 줄이라는 말에 샤워기의 수압을 낮췄고, 매일 하던 빨래도 하루씩 건너뛰어 세탁을 했다.
하루를 건너뛰다 보니 쌓인 빨래 양이 많아져 하루에 두 번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루에 한 번씩 빨래를 했다. 늘 하던 일을 하는데도 마음은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격일 급수의 마지노선, 3월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시간이 흘러 3월이 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3월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격일제 급수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여전히 저수량은 불안한 상태이고, 기상 변화는 예측이 힘들다. 우리는 그저 자연에 의지해 상황이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라야 할 뿐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조해진 날씨로 산불까지 잦아지고 있다. 지난 4월 첫째 주말만 해도 하룻 동안 서른 곳이 넘는 곳에서 산불이 났다. 써야 할 물도 부족한 판에 엉뚱한 곳에 물을 쓰게 생겼다. 산불의 규모가 커지니 인간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강도도 커졌다. 거대한 불기둥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은 나약하기만 했다. 바람이 거세질 때는 제발 비 좀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었다.
산불을 본 며칠 뒤, 봄비가 내렸다. 말 그대로 단비였다. 때를 맞춰 내려준 고마운 비를 우리네 조상들은 신령스럽다 하여 영우(靈雨)라고 불렀다 한다. 맞는 말이다. 참으로 신령스럽고 고마운 비다. 우리 지역에서는 봄비가 3일 동안 계속 내렸다. 비는 대지를 적셔주었고, 건조해진 대기를 촉촉하게 안아주었다. 당분간 산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지만.
▲ 3일 동안 내린 비 덕분에 화분과 텃밭에 줄 물이 마련되었다. |
ⓒ 노은주 |
어머니께선 한 방울의 빗방울도 아까우셨는지 김장할 때 쓴 배추절임통을 끌고 와 물을 받으셨다. 지붕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3일 동안 배추절임통에 가득 찼다. 그 물은 화분과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들의 일용한 양식이 될 것이다.
비가 왔을 뿐인데 산불은 잠잠해지고, 물 걱정은 줄어들었다(이번 비로 동복댐 저수율은 20%를 회복했다는 문자가 왔다). 우리가 안달복달한다 하여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가끔 자신들이 자연의 지배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마음대로 땅을 파고, 물의 흐름을 바꾼다. 그러다 자연이 조금이라도 몸을 뒤틀면 화들짝 놀란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비가 조금만 많이 내려도 전전긍긍 몸 둘 바를 몰라한다.
자연은 약해 보이나 강하다. 가만히 두면 한없이 너그럽지만, 건드리면 불 같이 화를 낸다. 두려운 존재다. 이것을 아는 인간은 자연 앞에 늘 겸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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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글은 다음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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