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63개 국립공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를 보고 있는데,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이름도 생소한 '콩가리(Congaree) 국립공원'이란 글씨가 환하게 눈으로 들어왔다. 줄기차게 오는 겨울비로 캘리포니아주 인근의 국립공원 여행이 무산된 뒤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여행을 앞둔 내게는 뜻밖의 선물로 여겨졌다.
대서양을 동쪽으로 면하면서 노스캐롤라이나주와 조지아주 사이에 끼어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널리 알려진 특징이 별로 없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곳도 아니고 인구 20만 이상의 도시도 없다. 주 전체의 인구가 고작 5백만 정도다. 그런 곳에 국립공원이 숨어있었다. 숨어있었다기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었고, 일부러 찾아갈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콩가리 국립공원은 미국 전체 국립공원 중 크기가 일곱 번째로 작은 규모나 울릉도의 1.5 배이니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2003년, 미국 환경청은 남동부 지역의 가장 오래된 저지대 활엽수림을 보호하기 위하여 콩가리강 지역의 숲 지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미국에서의 국립공원 지정은 관광 목적보다는 자연환경 보호가 목적이므로 개발이 제한된다.
▲ 보드웤 트레일 보드웤 트레일은 물위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거대한 투펠로(tupelo) 나무와 볼드 사이프레스(bald cypress) 나무 사이를 뚫고 범람원 위에 조성되어 있다
ⓒ CHUNG JONGIN
콩가리 국립공원을 방문하기 좋다고 하는 3월의 마지막 주말에 콩가리 국립공원을 찾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주의 계속되는 비로 날씨에 민감해진 나는 한 달 전부터 일기예보를 살피고 있는데, "아뿔싸" 방문 날짜가 다가올수록 비가 예보되어 있지 않은가.
사실 콩가리 국립공원에 비가 내리면 방문 자체가 무산되기 일쑤다. 공원이 콩가리강 범람원 내에 위치하여 비가 오면 쉽게 강이 범람하면서 원시림을 걷는 트레일이 폐쇄되곤 한다.
방문 며칠을 앞두고 일기예보는 금요일부터 온다던 비가 토요일 오전으로 바뀌었다. 일정이 금요일 오후부터 일박이일로 잡혔기에 금요일에 희망을 걸고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하루 일정으로 콩가리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경우, 공원 안내소(Harry Hampton Visitor Center)에서 시작하는 4.2km의 보드웤 루프 트레일(Boardwalk Loop Trail) 탐사를 기본으로 하고 카약이나 카누를 빌려 잔잔한 세다 계곡(Cedar Creek)에서 자연의 소리를 듣는 뱃놀이와 7.2km의 웨스턴 레이크 루프 트레일(Weston Lake Loop Trail)을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름에는 낮의의 무더위를 이겨낸 후 밤에 펼쳐지는 반딧불 축제를 보는 것도 별미라고 한다.
▲ 콩가리 숲의 키다리 나무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어야 나무 끝이 보일 정도로 키가 큰 볼드 사이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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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착한 금요일 오후는 다음 날 비가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청명한 하늘이 숲을 비추고 있었다. 안내소에 비치된 지도를 보며 콩가리 공원 탐사의 서론이라 할 수 있는 보드웤 루프 트레일로 들어섰다. 보드웤 트레일은 물 위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거대한 투펠로(tupelo) 나무와 볼드 사이프레스(bald cypress) 나무 사이를 뚫고 범람원 위에 조성되어 있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어야 나무 끝이 보일 정도로 키가 큰 볼드 사이프레스의 아랫부분은 듬직한 코끼리 발이 연상될 만큼 굵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게다가, 둥치 부근에는 어른 주먹 굵기의 송곳, 아니 소 무릎뼈를 박아 놓은 듯한 나무토막이 수도 없이 꽂혀 있었다.
이름도 우리말로 무릎이라는 단어인 'Knee'는 땅속뿌리에서 튀어나온 혹의 일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같은 복잡한 뿌리 구조는 키다리 볼드 사이이프레스의 안정적인 버팀목이 되어 오랜 세월 범람원 속에서 나무가 꿋꿋하게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단다.
▲ 볼드 사이프레스 둥치 듬직한 코끼리 발이 연상될 만큼 굵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 볼드 사이프레스의 아랫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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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가리 숲을 지탱해 주는 Knee 어른 주먹 굵기의 송곳, 아니 소 무릎뼈를 박아 놓은 듯한 나무 토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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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웤 트레일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진한 숲 향기를 들이마시며 신비한 숲속을 편안하게 걸었다. 높은 키가 힘에 부쳤는지 쓰러진 나무도 여기저기 보였다. 웨스턴 레이크 루프 트레일과 갈라지는 길목에 웨스턴 레이크가 나타났다. 호수와 나무가 서있는 지면과의 불분명한 경계로 호수 물은 흙과 뒤섞여 있었다.
웨스턴 레이크 트레일을 걸어도 될까? 오후 네 시를 지나고 있었다. 웨스턴 레이크 트레일은 보드웤이 아닌 흙길이어서 비가 내리면 걷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어 망설임 없이 웨스턴 레이크 트레일로 들어섰다.
▲ 웨스턴 레이크 호수와 나무가 서있는 지면과의 불분명한 경계로 호수 물은 흙과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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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펠로와 볼드 사이프레스를 가까이 관찰할 수 있는 웨스턴 레이크 트레일은 우리의 발 소리와 자연의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숲이었다. 어디선가 딱따구리의 나무 쪼아대는 소리가 들렸다.
25도가 넘는 날씨로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트레일의 2km 정도는 세다 크릭을 옆에 끼고 있었으나 카누나 카약을 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웨스턴 트레일은 와이즈 레이크 (Wise Lake)를 만나는 지점에서 심즈 트레일(Sims Trail)과 합류하며 공원 안내소로 향했다.
▲ 웨스턴 레이크 트레일 고요한 숲길에서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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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내소에 도착하니 6시가 다 되었다. 이제 하루 일정을 마칠 시간이었다. 비가 오는 내일은 어떡하지? 일단 숙소로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콩가리 국립공원 인근에는 숙소나 식당 등 그 어떤 편의 시설이 없다. 가장 가까운 곳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인 컬럼비아(Columbia)다. 말이 주도지 그냥 미국의 소도시, 우리 눈에는 시골이었다.
일기예보대로 다음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무리해서 다시 콩가리 공원을 갈 것인가, 느긋하게 컬럼비아에서 브런치를 먹고 떠날 것인가를 고심하다 후자를 택했다. 우산을 쓰고 질퍽한 트레일을 걷는 것도 썩 맘에 내키지 않았지만, 트레일마다의 큰 특징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
원래 계획은 오전에 아침의 와이즈 레이크를 다시 감상한 후 공원의 동쪽 끝으로 이동하여 옛길인 콩가리강을 마주하는 베이츠 트레일(Bates Trail)을 걷고, 오후에는 카누를 타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많은 것을 놓친 여행이 된 셈이다.
▲ 콩가리강 범람원 내에 위치한 원시림 웨스턴 레이크 트레일에서 볼 수 있는 범람원 내의 원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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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tterweed 트레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Butterweed라는 이름의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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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리 국립공원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나무들, 홍수와 불의 땅, 그리고 일만 년 이상 사람들이 오고 간 숲길과 물길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지정된 곳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과 인공의 소리보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숲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기회가 있다면 가을에 다시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