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 제1회 김대중학술상
[김삼웅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27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한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오마이뉴스 단독인터뷰가 17일 오후 광주광역시 신양파크호텔에서 진행됐다. |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한국현대사 특히 6.25 한국전쟁에 관해 알고자 하는 학도들에게 <한국전쟁의 기원>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동안 영문본을 통해 알고 있던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알려졌을 뿐이다. 유신과 5공을 거치면서 형성되고 민주화를 주도한 운동권에서도 이 책에 폭넓은 관심을 보였다. 책이 팔리면서 예의 권력의 촉수가 나타났다.
1986년 10월에 출간된 이 책은 곧바로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다. 그러나 당국이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면서 공개적으로 구입할 수가 없었다. 당시는 이른바 '불온서적'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올 때였다.
전두환 정권은 언론 통제를 위한 '보도지침'에 이어 출판물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검열과 탄압에 나섰다.
당시 일월서각에서 펴낸 책들은 대부분 금서에 속했다. 초판으로 천 권을 찍을 경우 팔백 권은 책방에 뿌리고 나머지 이백 권은 출판사 사무실에 쌓아두었다. 그러면 며칠 뒤에 경찰서에서 나와 그 이백 권을 압수해갔다. 경찰에게 '압수조치'를 취했다는 명분을 주기 위해 일부러 놔둔 먹잇감이었다. 당시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대개 그랬다.
▲ 대표적인 지한파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뿐 아니라 아예 한국현대사를 책으로 썼다. 《한국현대사》는 고대 삼국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한국인의 감정과 인식의 큰 맥락을 따라가려고 애썼다. 냉전문제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역사학자인 베른트 슈퇴버 역시 한국전쟁을 세계사적으로 조망한 《한국전쟁》을 썼다. |
ⓒ 오승주 |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사회는 해외의 학술서적도 관이 허용하는 것만 유통되었다. 그러다 보니 반쪽짜리 지식이 활개치고, 미국의 서각만이 진리인양 행세하였다. 특히 북한과 중·러 등 공산권에 대해서는 문맹상태를 면키 어려웠다. 오직 반공 프리즘으로 생산된 작품만이 허용된 것이다. 한국전쟁 관련해서는 특히 심했다. 김자동이 번역한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들의 지식의 지평을 크게 넓혔다는 의미도 따른다.
책을 번역하면서 적잖이 공부가 되었다. 기존의 한국전쟁 연구는 남침설과 북침설이 맞섰다. 말하자면 기존 주류 사학계는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해 외인론(外因論)을 강조했다. 커밍스 역시 한국전쟁의 원인을 강대국의 이념 대립 가운데 미국과 소련의 책임이 크다고 봤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 민족 내부의 사회적·역사적 모순을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방대한 미공개 자료를 토대로 이같이 주장해 1980년대 국내 소장학자들의 한국현대사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 뒤 새로운 자료들이 공개되면서 일부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 책은 한국전쟁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뒤흔들어 놓았다. 내가 봐도 전혀 새로운 시각이었다. (주석 6)
역자가 535쪽에 달하는 방대한 <한국전쟁의 기원>을 번역 간행하여 학계의 지평을 넓히고, 브루스 커밍스는 2007년 제1회 후광 김대중학술상이 수여됨으로써 친한파가 되었다. 역자 후기 중 후반부이다.
필자는 이 격동기의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자신의 견해보다는 객관적 자료를 충분히 인용하였다. 특히 한국에 대한 미군정의 통치와 전쟁에 관한 자료를 가장 많이 저장하고 있는 미국 국립기록보관소의 자료를 마음껏 조사하고 인용할 수 없었던들 이런 귀중한 연구를 진행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는 이러한 자료를 증거로 뒷받침했다는 데서 그 신빙성을 의심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은 해방직후의 정세를 기억하는 중년이 넘는 세대에게는 당시의 정세를 재평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젊은 세대에게는 당시의 정세를 인식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 바이다. 당시 신탁통치는 미국의 반대를 무릅쓴 소련의 억지로 인하여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이 대부분 일 것이다.
▲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대가 브루스 커밍스(68) 미국 시카고대 교수 |
ⓒ 최경준 |
이제 독자들은 이 책에 제시된 자료를 통하여 미 점령군 사령관 하지 중장이 공언한 이와 상반되는 주장이 전혀 거짓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반탁을 했으며 동시에 탁치를 '강요한' 소련을 배척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감회를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이어 저자는 제2권을 계속 내놓기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1947년 말에서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때까지를 다루기로 되어 있는데, 아직 출판되어 있는지를 모르겠다. 여기에 번역된 제1권과 더불어 6.25 전쟁이 일어난 직접적 경위보다 그 원인을 연구하는데 크게 참고 될 줄로 믿는다. (주석 7)
주석
5> <회고록>, 429~430쪽.
6> 앞과 같음.
7> 앞의 책, 5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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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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