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와 황해도의 지명 '조강리'가 말해주는 것

녹색연합 2023. 4. 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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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70주년, 분단의 한강 하구길을 걷다 ①

녹색연합은 1998년부터 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도보순례를 떠납니다. ‘녹색순례’라는 이름으로 활동가들은 그해에 가장 치열했던 환경현장을 찾아 걷습니다. 녹색순례 22년, 그 발걸음은 아파하는 이 땅의 신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2023년 23번째 녹색순례단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남북의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는 한강하구를 따라 걷습니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그곳을 따라 걸으며 드넓은 갯벌, 생명, 그리고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접해봅니다. 순례는 7박 8일(4월 5일~4월 12일) 동안 진행되며, 3편의 기사를 연재합니다. <기자말>

[녹색연합]

 제23회 녹색순례 발대식. 녹색연합 활동가와 회원 30여명이 참가했다. 장소_김포 애기봉 평화전망대
ⓒ 녹색연합
 
긴 가뭄과 대형 산불로 몸살을 앓던 전국에 봄비가 내린다. 단비 같은 고마운 비를 맞으며, 녹색순례단은 첫 발걸음을 내디딘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녹색연합 활동가와 회원 30여 명이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입구에서 만나, 애기봉 평화전망대로 향하는 언덕을 오른다. 전망대에 올라 녹색순례단은 지척에 있는 한강하구와 북한 땅을 바라보며 23회 녹색순례 발대식을 연다. 이번 순례는 정전 70주년을 맞아 한강하구를 따라 걷는다.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한강이 서해에 이르러 임진강과 예성강을 만나는 곳을 우리는 한강하구라 부른다. 한강하구라는 말이 쓰인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막바지 정전협정 당시 미국은 이곳을 'Han River Estuary'로 표기했고, 이를 우리 식으로 직역해 '한강하구'라 부른 것이 그 시작이다.
 
 강화도 성덕산(양사면 철산리 소재)에서 바라본 한강하구
ⓒ 녹색연합
 
한강하구의 원래 이름은 '조강'이다. '할아버지 강'이라는 뜻을 담고 있고 할아버지 조(祖) 자와 강 강(江) 자가 합쳐진 말이다. 또한 이 안에는 바다처럼 거대한 '큰 강', 한강과 북측의 임진강과 예성강을 넉넉히 품어 여러 강의 지류를 아우른다는 '으뜸 강'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녹색순례단이 오른 애기봉 평화 전망대가 자리한 곳의 행정구역 상 주소도 조강의 이름을 따라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이다. 그리고 우리가 강 너머로 바라본 북한 땅도 동일한 지명을 쓴다. 황해도 개풍군 조강리. 이 일대가 조강을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권이 이었다는 걸 분단 70년이 지났음에도 남아있는 지명이 말해준다.

큰 강이 가로지르고 있지만 양쪽 지역 주민의 생활상이 다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이다. 아쉽게도 오랜만에 내린 봄비와 안개 때문에 북한의 조강리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척거리라는 것은 확실하게 느껴진다.

조강 일대는 한국전쟁 전까지 한강하구의 수운과 물류 중심지의 역할을 해왔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1953년 7월 27일 체결한 정전협정 제5항에 따라 '한강하구 중립수역'으로 지정되면서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게 된다. 협정 조항에 따라 민간선박의 항행이 가능한 중립수역이지만 철책 등으로 가로막힌 냉전의 강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들어서는 녹색순례단
ⓒ 녹색연합
 
순례 2일차, 녹색순례단은 한강하구로 이어지는 '염하(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좁은 해협)를 건너 강화도에 들어선다. 강화대교를 걷는 내내 한강하구 일대 남북한의 삼엄한 경계 태세의 긴장감이 더욱 고조된다. 철책과 초소는 염하를 따라 강화도 북부 해안선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서 여전히 전쟁 중인 분단국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비무장지대(DMZ), 한강하구 중립수역 등의 경계 태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삼엄해지고 있다. 느슨한 철책으로 시작되었던 경계선은 여러 겹의 철책과 철조망이 이중삼중으로 강화되다가 현재는 국방과학화 사업의 결과로 경계병을 대신해 CCTV가 북한을 감시하고 있다.

냉전체제가 종식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한반도의 시계는 여전히 거꾸로 흐른다. 겹겹이 둘러싸인 철책과 여전히 냉전의 강으로 흐르는 한강하구를 바라보며 녹색순례단은 평화란 무엇인지, 70년을 맞이한 정전협정은 남과 북을 위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강화도 해안 철책길을 따라 걷다 만난 '한강하구 습지 보호 지역' 표지판
ⓒ 녹색연합
 
한편, 순례단이 따라 걷는 길은 '한강 하구 습지 보호 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 2006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고 멸종위기종과 철새 도래지로 생물다양성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이 지역은 한강 하구 습지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김포와 강화 사이에 있는 유도를 중심으로 해안 갯벌 일부가 포함되는 이 지역은 멸종위기종 2급인 큰 기러기의 주요 도래지이다.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을 사이에 두고 큰 기러기는 겨울을 나기 위해 이 곳을 찾은 뒤 봄이 오면 북으로 향한다. 

한강하구는 비무장지대(DMZ)와 서해안연안습지축이 만나는 곳으로 다양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서식하는 한반도 자연생태계의 핵심 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을 70여 년간 출입했던 사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하구 생태계가 인간의 이용, 개발 압력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수도권 1500만 명이 사용하는 생활하수가 쏟아져 나오고, 각종 육상 쓰레기들이 바다로 유입되는 곳이기도 하다. 

김포에서 강화로 넘어오는 이틀간의 일정을 소화한 녹색순례단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접한다. 너무도 익숙한 한강이라는 공간을 걸으며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 역사 문화에서 해양 쓰레기 문제까지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꺼내며 정전 70주년을 맞이한다. 
 
 강화해협 철책길을 따라 도보순례 중인 녹색연합 활동가와 회원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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