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건강보험 재정 파탄론, 근거가 없다?
2022년 건강보험 역대급 흑자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이달 4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건강보험 재정파탄론은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밝혀졌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재정파탄론은 근거가 없는 것일까.
김 수석부의장이 재정파탄론을 부정한 근거로 제시한 지난해 건강보험 당기수지 흑자는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라는 요인과 건강보험 재정 관련 다양한 쟁점 등을 고려할 때 '재정파탄론'이나 '재정파탄론이 근거 없다는 주장'도 모두 단언할 수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 수석부의장은 국회에서 "건강보험 재정은 2021년 2조 8000억원, 2022년 3조000억 원의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적립금 또한 문재인 정부 출범 다음 해인 2018년 20조6000억원에서 2022년 23조9000억 원으로 늘어났다"면서 "문재인 케어가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초래했다는 것은 거짓 주장이고 전형적인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다.
김 수석부의장이 반박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해 건강보험 관련 발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3일 국무회의에서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후 보루인 건강보험에 대한 정상화가 시급하다.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며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켜 건강 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 수석부의장은 건강보험 당기수지를 들어 실제 건강보험 운용 과정에서 흑자를 기록했고 누적 적립금도 늘어났다며 재정파탄론은 가짜뉴스라고 반박한 것이다. 그는 2018년과 2020년 건강보험의 재정적자는 계획된 적자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 측이 공개한 추가 설명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2018년 1778억원, 2019년 2조8243억원, 2020년 3531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2021년에는 2조8229억원, 2022년에는 3조6291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이후 적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최근 들어 재정상황이 급격히 안정됐다는 것이다.
실제 건강보험공단에 확인한 결과 이번에 기록한 3조6291억원의 흑자는 2014년도와 2015년도에 이어 역대 3번째로 큰 규모다. 건보 관계자는 "23조8701억원의 누적 적립금은 역대 최대 규모"라고도 설명했다. 최소한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의 재정 흐름만 고려하면 건강보험 재정파탄론은 현재로서는 당면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건강보험 재정을 낙관할 수 있을까.
현재룡 국민건강보험공단 기획상임이사는 4일 기자 간담회에서 "2년 연속 당기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기침체,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지속적인 생산인구 감소, 부과체계 2단계 개편 영향으로 보험료 수입 기반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며 “코로나19 상황 안정화에 따라 의료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돼 안정적인 재정환경을 낙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2021년, 2022년 흑자가 났지만 향후 재정 상황은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는 상황이 다를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건강보험공단은 지난달 역대급 당기수지 실적을 공개하면서 "지출증가 폭보다 수입증가 폭이 커 재정수지가 개선됐다"면서 "건강보험은 2년 연속 당기수지 흑자 상황이나, 글로벌 경기침체,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감소, 초고령사회 도달(’25년), 의료이용 회복 등으로 향후 재정 불확실성은 점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건강보험은 재정 특성상 단기로 운영되는 방식으로 1년 단위로 재정의 수입과 지출을 판단하는 방식"이라며 "국민연금처럼 몇십년 동안 안 올리고 이런 구조가 아니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이런 곳에서 보험료를 약간이라도 올릴 필요가 있으면 조정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은 “건강보험이 쉽게 재정이 파탄 나거나 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면서 "노인 의료비 수요나 이런 것들이 증가되는 것도 있고 저출생 고령화 등의 영향도 있지만 지출 구조 등으로 관리를 할 수 있다. 가령 행위별 수가제를 포괄 수가제로 바꾼다든지 의료 이용을 현실화한다고 할지, 의료 수요를 과수요가 일어나지 않게 하거나 관리 효율화 등을 모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은 매년 보험료율을 결정하기 때문에 국민연금과 달리 재정상황에 따라 보험료나 관리 방식 등에 따라 재정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건겅보험은 가입자의 보험료만이 아니라 고용상황과 경제상황, 체납 보험료 징수율 등으로 결정된다. 상용일자리가 늘어나 직장 가입자가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임금 등이 오르면 보험료가 늘어나기 때문에 수입이 늘어는 구조다.
지난해 지출이 크게 늘었는데도 수입이 더 많이 증가하며 흑자가 발생했다. 단순히 지출이 얼마나 늘어나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라 수입 측면에서 재정상황이 검토돼야 하는 것이다. 경제가 좋다면 건강보험 재정 역시 개선되고, 반대로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건강보험 재정부담도 가중된다.
지출 측면에서도 코로나19에 따른 지출비용과 코로나19로 인한 의료 서비스 이용 감소 효과 등이 맞물려 작용한다. 보장성 확대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위기에 몰리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건강보험 재정의 또 다른 축이 있다.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정부는 건강보험 예상 보험료 수입의 20%(국고 14% 상당, 건강증진기금 6%)를 지원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다만 지난해 관련 법 개정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해당 규정이 일몰됐지만, 국회에서 개정안을 소관 상임위원회인 복지위원회에서 의결해둔 상황이다.
정부의 지원금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동안 건강보험 정부지원금은 법적 기준보다 적게 지원됐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14.4%(10조5000억원). 2021년에 13.8%(9조6000억원) 가량만 지급됐다. 정부 지원금이 과소 지급되는 것은 그동안 계속된 현상이다. 이는 정부가 법적 기준인 20% 모두 지원하지 않아도 건강보험이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또 법적 기준만 충족시켜도 어느 정도 지출 부담을 건강보험을 감당할 수 있는 재정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는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이뤄져있다. 최근 국회 복지위는 5년 일몰 형태로 지난해 폐기된 법안을 복구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했는데 이 법 부대의견에는 "정부는 국고지원 확대 등 건강보험재정의 국가책임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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