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나이키 회장은 차 트렁크에서 오니츠카 타이거를 팔았다
美 경제지 포춘이 추산한 조던 경제적 효과는…
바카로를 마피아 일원으로 의심한 나이키 임원들
바카로가 계약 협의하며 조던에게 건넨 선물은…
재계약 재고한 필 나이트, 극구 만류한 바카로
영화 '에어'는 나이키와 1984년 NBA 데뷔를 앞둔 마이클 조던의 후원 계약을 조명한다. 주인공은 나이키 스카우트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 아디다스와 컨버스를 제치고 조던을 포섭하는 주역이다. 일찍이 비범한 재능을 포착하고 조던의 어머니 델로리스 조던(비올라 데이비스)과 나이키 회장인 필 나이트(벤 애플렉)를 동시에 설득한다. "선수를 찾았어요. 이번엔 느낌이 좋아요." "신인을?" "네!" "NBA 코트에 발도 못 들인 선수를?" "그런 게 바로 신인이잖아요."
'알고 보면' 좋을 정보를 두서없이 전달한다. 영화를 흥미롭게 관람하는 팁이다.
* 영화 리뷰 및 평가는 '[슬레이트]나이키는 다시 날았다…조던과 함께'에서 확인.
* '에어 조던'을 처음 알린 광고는 1985년 '조던의 비행(Jordan Flight)'이다. 마이클 조던이 하늘을 날아 덩크슛을 날리고는 말한다. "누가 인간을 날 수 없는 존재라 했던가." 이 브랜드는 그해 매출 1억3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 미국 경제주간지 포춘은 조던이 전성기를 구가한 1998년 '조던 효과'를 심층 취재했다. 이에 따르면 당시 조던은 연봉 3400만 달러, 광고 수입 4500만 달러를 챙겼다. 나이키는 약 15년 동안 30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포춘은 조던의 경제적 효과를 100억 달러로 추산했다.
* 에어 조던은 2008년 23탄까지 번호가 매겨져 출시됐다. 나이키 사업부인 조던 브랜드는 2009년 연번을 버리고 에어 조던 2009와 에어 조던 2010을 연이어 공개했다. 후자는 코싸개(발가락을 감싸는 부위)와 갑피(신발창과 끈 이외 부위)가 독립된 층상구조를 이루는 혁명적 디자인으로 관심을 끌었다. 발의 유연성과 운동성에 주안점을 두고 제작돼 선수들이 민첩하게 움직이도록 도왔다. 조던은 "조던 브랜드의 미래를 그리는 동시에 창조 능력에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며 기뻐했다.
* '에어'에서 벤 애플렉이 연기한 필 나이트는 오리건대학에서 잘 나가는 중거리 육상선수였다. 1948년부터 이 대학 육상부 감독으로 재직한 빌 바워만과 함께 1964년 나이키의 전신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설립했다. 창업자본은 1000달러였다.
* 바워만은 지도자로 일하면서 육상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복수 신발 회사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했으나 거부당해 직접 개조에 나섰다.
* 나이트는 오리건대학을 졸업하고 스탠퍼드대학에 진학해 경영학 석사 학위를 땄다. 그는 값이 싸면서도 성능이 좋은 일본제 육상화가 미국 시장을 점령한 독일 회사들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가장 주목한 브랜드는 오니츠카 타이거였다. 나이트는 직접 고베 본사를 방문해 미국 내 판매를 맡겨달라고 설득했다. 그는 집 지하실과 자동차 트렁크에 신발을 쌓아두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장사했다.
* 나이키라는 이름은 블루 리본 스포츠의 첫 번째 직원인 제프 존슨이 명명했다. 스탠퍼드대학 육상선수 출신이다. 1971년 어느 날 꿈에서 승리를 이끄는 그리스 여신 니케를 만났는데 주주들이 몽상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처음 제작한 축구화의 이름을 '더 나이키'로 명명하고 신발에 스우시 로고를 붙였다. 스우시는 존슨의 꿈에 등장한 니케 날개의 상징이다. 로고는 포틀랜드주립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캐롤린 데이비드슨이 만들었다. 나이키에 대가로 35달러를 청구했다. 나이트는 데이비드슨이 퇴사할 때 스우시 로고가 새겨진 다이아몬드 반지와 회사 주식을 선물했다.
* 블루 리본 스포츠는 1978년 나이키로 이름을 변경했다.
* 맷 데이먼은 '에어'에서 나이키 스카우트 소니 바카로를 연기했다. 나이키 임원들은 바카로를 처음 대면하고 범죄 조직의 일원이 아닌지 의심했다. 외모부터 이름, 말투, 행동거지까지 마피아 같았기 때문이다. 조던 역시 그와의 첫 만남에 대해 "'어두운 세계 쪽 사람하고 손을 잡아도 되는 걸까' 생각했었다"고 회고했다. 바카로는 오해하는 상황을 즐겼다. 눈에 띄는 개성이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 바카로는 해마다 반년 정도 알라딘이나 바르바리 코스트 같은 카지노를 들락거리며 스포츠 베팅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의뢰인들을 대신해 미식축구 경기에 판돈을 걸고, 거기서 받은 수수료를 생활에 보탰다. 직접 작은 도박장을 운영했다는 설도 있다.
* 바카로는 1972년 나이키에 입사했다. 임원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회사의 주요 임원인 롭 스트라서는 그가 대학 농구 감독들과 잘 알고 지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FBI에 신원 조사를 요청해야 하지 않느냐는 임원들의 요구를 만류하고 고용을 주도했다. '에어'에서 스트라서를 연기한 배우는 제이슨 베이트먼이다.
* 바카로는 나이트 회장을 직접 만나 조던과 계약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나이트 회장은 처음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저런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바카로는 그러거나 말거나 조던이 왜 마케팅 면에서 큰 가치가 있는지 계속 떠들어댔다.
* 바카로는 조던 측이 협상에서 운동화 로열티 비율을 50%로 높였어도 받아들였을 거라고 회고했다. "선불로 현찰을 더 많이 받길 원했어요. 1984년에는 그런 신발이 잘 팔릴 거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요."
* 조던은 에어 조던 제품군 설명회에서 빨강과 검정으로 칠해진 신발을 확인하고는 "붉은색이 '악마의 색깔'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대학생이라면 신발을 하늘색으로 꾸밀 수 있을 텐데"라며 노스캐롤라이나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설명회 내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던 그는 바카로에게 약속했던 자동차는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바카로는 작은 장난감 자동차 두 대를 주머니에서 꺼내 조던 쪽으로 굴렸다. "이게 자네 차일세." 나이트 회장은 "계약에 합의하기도 전에 회사가 차를 사줬다"고 농담을 던진 뒤 회의장을 나갔다.
* 조던은 1984년 10월 26일 낡은 시카고 구장에서 NBA에 데뷔했다. 상대는 워싱턴 불리츠.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선율과 함께 코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상대 센터 제프 룰랜드와 부딪혀 바닥에 쓰러지는 등 고전하면서도 16득점 6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 나이키는 1985년 초 에어 조던 1탄을 출시했다. 빨강과 검정으로 장식된 모델은 NBA에서 착용 금지 품목이 됐다. 당시 리그 지침상 선수들은 흰색 운동화만 착용해야 했다. NBA는 에어 조던 1탄을 신을 때마다 벌금 5000달러를 물리겠다고 경고했다. 스트라서는 바카로에게 어떻게든 조던에게 신제품을 착용시킬 예정이고 나이키가 매 경기 벌금을 대신 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광고를 통해 리그에서 사용 금지된 제품임을 팬들에게 알리겠다고 했다. 바카로는 훗날 그 일을 웃으며 이야기했다. "대중한테 뭔가가 금지됐다고 얘기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그러면 다들 그걸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납니다." 그의 말대로 나이키는 이 제품을 출시한 뒤 3년간 1억5000만 달러의 매상을 올렸다.
* 조던은 그해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처음 에어 조던 제품군을 착용했다. 벌금과 무관한 무대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조던은 슬램덩크 콘테스트에 에어 조던 운동복과 금목걸이를 착용하고 등장했다. 선배 선수들은 화려한 복장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매직 존슨과 아이제이아 토머스, 조지 거빈의 심리 상담자 찰스 터커 박사는 올스타전이 끝나고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베테랑들이 보기엔 마이클 조던의 태도가 영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조금 혼을 내주기로 했다더군요. 수비에서는 서부 팀의 매직과 조지가 숨통을 조이고 공격 시에는 동부 팀 동료들이 공을 주지 않기로 했어요. 여기 선수들은 지금 그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는 겁니다. 조지가 아이제이아한테 그 정도면 충분히 곯려준 것 아니냐고 물어봤죠." 당시 조던의 출전 시간은 22분에 그쳤고, 던진 슛은 아홉 개에 그쳤다. 바카로는 상대적으로 적은 보수를 받던 컨버스사 소속 선수들이 나이키에 반발해 그런 사건을 일으켰다고 봤다. 그리고 많은 사람 앞에서 당한 수모와 자길 따돌린 선수들에 대한 원망이 조던의 뜨거운 경쟁심에 기름을 부었다고 평가했다.
* 조던은 늘 품위 있게 언론을 대하는 줄리어스 어빙을 우러러보며 그 모습을 모방했다. 물론 어머니 델로리스 조던이 곁에서 아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고 주의를 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 바카로는 델로리스 조던에 대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많이 배우고 몸가짐도 완벽했다"고 극찬했다. 반면 아버지 제임스 조던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허술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카로는 제임스를 만나길 꺼렸다. 술을 좋아하고 사업적으로 신용하기 어려운 인물이라고 봤다. 마이클 조던의 누나는 '우리 가족의 그림자'에서 "마이클이 갑자기 인기를 얻으면서 엄청난 성공이 뒤따랐지만, 동시에 부모님 사이에선 다툼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 나이트 회장은 조던과의 재계약을 재고했다. 판매량이 약간 주춤한 시기에 에어 조던 생산을 그만두려고도 생각했다. 그는 계약 관계를 정리하고 대학팀과 공식 후원 계약을 맺으려 했다. 스트라서는 나이키를 떠난 상태였다. 그는 조던을 위한 독자적인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조던에게 나이키에 그런 요청을 계속하라고 조언했다. 나이트 회장이 제안을 뿌리치자 바카로는 대학 시장에선 현재 에어 조던으로 얻는 수익을 절대로 기대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나이키는 조던과 고액의 계약을 체결했고, 이는 몇 년 뒤 조던 브랜드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조던은 첫 계약 때와 달리 자기 이름을 달고 나오는 신발들을 일일이 신어보고 만족스러워했다.
* 당시 조던은 나이키뿐만 아니라 맥도날드, 코카콜라, 쉐보레, 윌슨 스포팅 굿즈 등을 광고했다.
* 1988년 나이키 내부에선 제임스 조던이 아들한테 빌붙지 않고 직접 돈을 벌게 해주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부모님 체면을 살려주자는 취지에서 제기된 안건이었다. 나이키는 제임스에게 플라이트 23으로 명명된 체인 운영을 맡기고 샬럿부터 시작해 매장을 늘려가려고 했다. 아울러 조던의 형제들에게도 체인의 소유주로서 일부 지분을 나눠줬다. 그들은 취업도 못 하고 평범한 삶조차 영위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장남인 로니는 군인으로서 가정을 꾸리고 나름대로 훌륭한 경력을 쌓았지만, 나머지 형제들은 번번이 실패를 겪었다. 안타깝게도 플라이트 23의 운영은 가족 간 갈등을 더 악화시켰다. 언론과 군중 앞에서 성대한 개업식을 열었을 때 조던의 부모는 매장 한구석에서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제임스는 여전히 술을 좋아했고 영업장에 무슨 문제가 생겨도 못 본 체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나이트 회장은 납품업자들의 청구서까지 무시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바카로에게 중재를 주문했다. 마이클은 나이키 일에 관해서는 아버지 편을 들지 않았다. 플라이트 23 매장의 운영 권한과 지분을 빨리 거둬들이자는 나이키의 결정에 동의했다. 제임스는 나이키의 간섭을 받지 않는 별도 매장을 원했다. 나중에 플라이트 23의 모든 권한을 반환하고 그 매각 대금으로 직접 의류업체를 차렸다. 그 사건 뒤 마이클은 절대 가족과 같이 사업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NBA 스타들은 휴식기에 농구화 판촉을 위해 세계 곳곳을 오간다. 시초는 1990년 8월 조던의 유럽 방문이다. 한데 당시 그는 미국을 떠나야 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해 여름 나이키는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설립한 유색인종연합과의 분쟁에 휘말렸다. 흑인 사회 기여도가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유색인종연합이 기업 장부 조회를 요구하고 나이키가 단체의 재정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교섭은 결렬됐다. 이에 타이론 크라이더 유색인종연합 사무총장은 나이키 불매운동으로 대응했다. 나이키는 기업 간부진에 흑인을 더 많이 충원해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이 일 때문에 회사 내에서 조던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고 훗날 조던 브랜드도 탄생할 수 있었다. 조던은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성명서를 통해 "미국의 모든 기업이 흑인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마땅하나 나이키를 업계 선두라는 이유로 지목하고 비난한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바카로는 서둘러 그를 유럽으로 데리고 떠나 잡음을 최소화했다.
* 바카로는 1991년 나이키에서 해고돼 다른 운동화 회사로 이직했다. "필 나이트가 날 회사에서 쫓아냈을 때 마이클 조던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손꼽을 만큼 빨리 연락이 왔던 것 같아요. 마이클은 도와줄 일이 없냐고 물었죠. 자기가 필한테 전화해보면 어떻겠느냐고요. 하지만 난 이제 나이키하고 완전히 끝난 관계라고 그렇게 대답했어요." 그는 일찍이 나이키를 떠난 스트라서와 마찬가지로 조던에게 조언했다. 에어 조던 시리즈의 대성공을 발판 삼아 독자적인 브랜드의 설립을 요구하라고. "마이클이 나이키에 그런 요청을 하는 데 내가 상당히 많이 관여했죠. 그게 내 입장에선 마이클한테 남기는 유서 같은 거였어요. 난 이렇게 물었습니다. '마이클, 자네가 이 회사에서 뭐라도 지분을 얻어야 하지 않겠어?' 그게 바로 그 브랜드였던 거예요."
* 바카로가 나이키와 조던을 위해 한 마지막 임무는 제임스 조던이 운영했던 플라이트 23 매장의 마지막 뒷정리였다.
* 조던은 농구 코트에서 시작해서 미국 대중문화의 중심부로 누구보다 깊이 침투한 인물이다. 바카로는 큰 성공 앞에서 무너지지 않은 비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이키가 창출한 거대한 상업주의가 마이클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버렸어요. 우리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그 어린 나이부터 마이클의 삶을 장악해버린 거예요. 거기서 과연 어떻게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지, 난 통 모르겠어요."
참고 자료 : 롤랜드 레이즌비 지음·서종기 옮김·발행처 1984 '마이클 조던(2020)', 트레이시 카바쇼 지음·서종기 옮김·발행처 라이온북스 '나이키 이야기(2011)', 허원무 지음·발행처 살림출판사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를 살렸다', 필 나이트 지음·안세민 옮김·발행처 사회평론 '슈독' 등.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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