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 9년 만의 '골맛'... 한국 여자축구, 잠비아 대파
[윤현 기자]
▲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이 7일 잠비아와의 평가전에서 득점을 기뻐하고 있다 |
ⓒ KFA |
월드컵에 나설 한국 여자 축구 대표팀이 아프리카 잠비아를 대파했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여자 대표팀(세계랭킹 17위)은 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잠비아(세계랭킹 77위)와의 A매치 평가전에서 5-2로 이겼다.
오는 7월 호주·뉴질랜드에서 개막하는 2023 여자 월드컵을 준비하는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격돌할 모로코를 대비해 같은 아프리카 대륙에 속한 잠비아와의 평가전을 마련했다. 한국은 전반을 1-2로 끌려갔으나, 후반에만 4골을 터뜨리는 화끈한 공격력 과시하며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1차 평가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한국은 오는 11일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잠비아와 2차 평가전을 치른다.
전반 부진은 잊어라... 한국, 후반에만 4골 폭발
한국은 손화연(현대제철)을 원톱 스트라이커로 앞세우고 이금민(브라이턴), 조소현(토트넘), 장슬기(현대제철), 김윤지(수원FC)를 중원에 배치했다. 좌우 윙백은 추효주(수원FC)와 정설빈(현대제철)이 맡았고 김혜리, 임선주, 홍혜지(이상 현대제철)로 수비를 구성했다.
경기 시작부터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기선을 제압한 한국은 전반 24분 김혜리의 크로스를 받은 조소현이 오른발 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전반 32분 임선주가 상대 공격수를 막다가 부상을 당해 쓰러지면서 잠시 10명이 뛰는 상황이 벌어졌고, 잠비아는 잠깐의 수적 우위를 놓치지 않고 쿤다난지 레이첼가 동점골을 터뜨렸다. 단숨에 주도권을 빼앗은 잠비아는 전반 추가 시간에 바브라 반다가 역전골까지 터뜨리며 1-2로 역전했다.
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박은선을 투입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후반 13분 후방에서 길게 올라온 볼을 박은선이 헤더로 떨어뜨리자 이금민이 골키퍼의 키를 살짝 넘기는 재치 있는 슛으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이금민은 후반 17분에도 잠비아 수비를 돌파한 뒤 낮게 깔리는 정확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면서 역전골까지 터뜨렸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후반 39분 '선제골의 주인공' 조소현이 쐐기골을 터뜨렸고, 후반 추가 시간에도 박은선이 상대 골키퍼와 수비진이 놓친 공을 재빨리 밀어 넣으면서 5-2 대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 박은선이 7일 잠비아와의 평가전에서 슛을 시도하고 있다 |
ⓒ KFA |
한국은 '유럽파' 조소현과 이금민이 나란히 멀티골을 터뜨리며 승리를 이끌었으나,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박은선이었다.
박은선은 압도적인 제공권으로 잠비아 수비진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잠비아는 박은선을 막기 위해 2~3명의 수비수가 달라붙으면서 틈이 벌어졌고, 이 덕분에 조소현과 이금민이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골을 터뜨릴 수 있었다.
벨 감독은 경기 후 "박은선의 활약이 기쁘다"라며 "박은선이 이날 경기를 바꿨다"라고 칭찬했다. '적장' 잠비아의 브루스 음와페 감독도 "후반에 투입된 박은선의 활약이 좋았다. 특히 제공권 싸움이 인상적이었다"라고 강조했다.
박은선은 신장이 180cm로 남자 선수 못지않은 체격과 골 결정력으로 데뷔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불과 17세였던 2003년 미국 여자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7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사상 첫 본선행을 이끌면서 한국 여자 축구를 책임질 공격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서울시청에 입단했다가 대학에서 무조건 2년간 뛰어야 한다는 한국여자축구연맹의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3개 대회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국제 대회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박은선의 남다른 체격과 힘을 문제 삼으며 성별 검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WK리그 구단 감독들까지 박은선의 성별 검사를 요구하며 '인권 모독' 논란이 일었고, 마음의 상처를 받은 박은선은 부상까지 겹치면서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며 축구계에서 점차 잊혀져 갔다.
하지만 벨 감독의 부름을 받아 다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박은선은 이날 골까지 터뜨리며 기대에 보답했다. 박은선의 A매치 득점은 2014년 5월 호주와의 아시안컵 경기 이후 무려 9년 만이다. 박은선은 경기 후 "오랜만에 득점을 해서 기분이 좋다"라며 "조금 쑥스러웠는데 (선수들이) 뛰어와서 함께 좋아해주니 나도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올해 36세가 된 박은선은 이번 월드컵이 사실상 마지막 무대다. 오랜 방황을 끝내고 불꽃을 태우고 있는 박은선이 월드컵 무대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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