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직장생활' 10년만에 창업...中 청년의 '남다른 한국살이' [사공관숙의 한국 속 중국]

사공관숙 2023. 4.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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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의 사귐은 국민 간의 친함에 있다(國之交在於民相親)". 한중이 또 다른 30년을 여는 첫해 2023년을 맞아, '이사 갈 수 없는 영원한 이웃'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에 자리잡은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한중 기업을 위한 컨설팅과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브릿지 엑스'의 대표 둥린징(董琳璟·36)이 지난달 6일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를 보고 한국 유학을 결심했던 17살 중국 소년은 어느덧 올해로 한국살이 17년 차에 접어들었다. 한국어학당에서 대학교를 거쳐 대기업에 취직 후 10년간의 파란만장한 'K-직장생활' 끝에 자신만의 회사를 세우기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주인공은 '브릿지 엑스(Bridge X)' 대표 둥린징(董琳璟᛫36)이다. 지난달 6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난 둥린징은 유창한 한국어로 막힘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이날 둥린징은 회사 경영진이 하루아침에 교체된 돌발 사건, 코로나 직격타로 3년 넘게 휴직한 사연, 소개팅으로 만난 한국 아내에게 2달 만에 프러포즈 받은 이야기, 한국 교수님이 중국 부모님 대신 혼주 역할을 맡아주신 감동 사연 등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했다. 한중우호협회에서 11년 넘게 활동 중이라는 둥린징은 자신이 관찰해 온 한국 사회의 모습, 한᛫중 관계에 대한 소신과 포부도 이날 인터뷰에서 밝혔다. 재한 중국인 중에서도 '핵인싸'로 통하는 둥린징의 평범하지만, 또 한편으론 남달랐던 한국 생활기를 들어봤다.

중국 산둥성 출신으로 올해로 한국 생활 17년 차라는 '브릿지 엑스' 대표 둥린징(董琳璟·36).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한류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보고 알게 된 아시아 속 한국의 존재

Q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 이름은 둥린징(동임경)이고 고향은 중국 산둥(山東)성 타이안(泰安)시다. '태산이 높다'할 때 말하는 그 '타이산(泰山)'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한국은 2006년에 처음 왔고, 올해로 한국 생활 17년 차다. 성균관대학교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한국 대기업에서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얼마 전 '브릿지 엑스'라는 마케팅 회사를 차려서 운영하고 있다.

Q :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A : 17살 때, 해외 유학을 고민하다가 호주, 일본, 한국 세 가지 선택지 중에서 한국으로 정했다. 호주는 영어에 흥미가 없어서 가고 싶지 않았다. 일본은 당시 어린 마음에 중국과 사이가 안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서 가기가 망설여졌다. 우리 동네는 대도시가 아니라 한류가 비교적 늦게 들어온 편인데, 2000년대 초반에 NRG와 H.O.T가 큰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내가 한국 유학을 결심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다. 어릴 때 한국이 한반도에 위치한 나라라고 배우긴 했지만, 사실 한국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었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야 아시아에 이렇게 화려한 나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에 오면 드라마 주인공 '강민(안재욱 분)'처럼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둥린징은 이날 인터뷰에서 대학 시절 다양한 교내 활동에 참가해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고 밝혔다. [사진 본인제공]

Q : 한국어는 어떻게 배웠나?
A :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 했다. 당시는 중국에서 한국어학당을 바로 신청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베이징 소재의 한 유학사를 통해 24명의 중국 유학생들과 함께 한국에 왔다. 내가 다녔던 경희대 어학당에는 한국 대학생들로 구성된 '어학 도우미'들이 유학생을 일대일로 도와주곤 했다. 그 친구들은 어학 도우미를 하면서 봉사활동 점수를 받고 유학생들은 학업이나 생활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제도였다.

Q : 한국어가 한국인보다 유창한데, 처음 배울 때는 어땠나?
A : 겹받침 발음이 가장 어려웠다. 예를 들어 '밟다'의 발음이 '발다'인지 '밥다'인지 너무 헷갈렸다. 주변 중국 친구들은 존칭 사용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학교 다닐 때 교내 행사나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직장에선 대외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많이 만나다 보니 한국어 실력이 자연스럽게 늘었던 것 같다. 한중우호협회에서도 11년째 활동 중이다.

성균관대 졸업 후, 한국 졸업생들과 함께 여러 구직 활동 참여했다는 둥린징. 사진은 한국 모 기업에서 교육받는 모습. [사진 본인제공]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이 파란만장한 'K-직장생활'

Q : 한국에서 직장생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A :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엔 한국 기업들이 중국 진출이나 글로벌화를 활발하게 추진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한국에 중국 유학생도 상당히 많았다. 나도 여느 대학 예비 졸업생처럼 4학년 때 인턴도 하고, 여러 대기업 공채에도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금호 타이어에 합격했는데 곧 금호아시아나로 발탁됐고 지난해까지 이곳에서 일했다. 알다시피 지난 10년간 금호그룹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나도 그 안에서 좋은 곳에 배치되기도 하고 때론 좌천되기도 하는 등 여러 풍파를 겪었다. 힘들긴 했지만, 한국에선 가장 오래 일한 직장이고 또 많은 걸 배운 곳이기도 하다.

Q : 코로나 시기 항공사가 무척 어려웠다고 하던데.
A : 회사는 지난해 8월 결혼하면서 그만뒀다. 코로나 때문에 거의 3년 넘게 휴직 상태였다. 1년 반은 완전 휴직이었고, 1년 반은 주 1~2일 출근하는 식이었다. 결혼하고 가장이 되니 그 정도 소득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퇴사하고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치열한 경쟁 끝에 한국 대기업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입사하게 된 둥린징. [사진 본인제공]

Q :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A : 중국 사람으로서 한국에 오래 거주하다 보니 한국의 문화를 어느 정도 잘 아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대기업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중국 대기업들의 한국 진출을 돕고 있다. 중국 회사의 한국 법인 설립과 관련된 컨설팅, 상품 판매를 위한 마케팅 등을 맡고 있다. 회사명인 '브릿지 엑스'에서 '브릿지(Bridge)'는 다리처럼 한᛫중을 연결해준다는 뜻이고, '엑스(X)'는 무한한 미래와 가능성을 뜻한다.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 못 오신 부모님, 혼주 돼주신 한국 교수님에 깊은 감동

Q : 한국에서 오래 살면서 느낀 바가 있다면?
A : 한국은 뭐든지 질서 있고 빠르다. 한국 사회는 정말 효율적이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다. 인간관계도 좀 비슷한데, 소개팅을 예로 들 수 있다. 외모᛫배경᛫관심사 등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의 연락처를 소개받아 빠르게 교환하고, 만남도 시간과 장소만 확정되면 신속하게 이뤄진다. 쓰레기 배출도 비슷하다. 정해진 요일만 버릴 수 있다. 매일 쓰레기를 버리면 인건비도 많이 발생하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다. 이렇듯 한국에서는 생활이나 업무 등 모든 면에서 효율성을 강조한다.

지난해 8월 둥린징은 한국인 아내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 본인제공]

Q : 아내도 소개팅으로 만났나?
A : 그렇다. 회사 동기들과 만나 '브릿지 엑스'라는 회사명을 짓던 날 한국인 아내를 소개받았다. 2021년 4월에 만나기 시작해 2달 만에 아내의 프러포즈를 받았다. 비싼 시계와 직접 만든 PPT까지 준비했더라. 그렇게 1년 뒤인 2022년 8월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Q : 결혼식은 어땠나?
A :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한국에서 살면서 가장 감동했던 일을 꼽자면 결혼식인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부모님이 못 오셨는데, 대학교 때 은사이신 교수님 내외분이 혼주 역할을 대신 해주셨다. 주례도 아니고 혼주 자리를 흔쾌히 맡아 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했다. 이날 친구, 직장동료는 물론 한중우호협회 임원분들까지 다 와 주셨다. 부모님과 친척들이 못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님이 아내 쪽보다 많을 정도였다. 우리 부모님은 라이브 영상을 통해 중국에서 결혼식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셨다. 아들이 한국에서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시곤 크게 감동하신 것 같았다. 나는 한국과 한국 사람들이 좋기 때문에 여기서 계속 살 예정이다.

대학 시절 처음으로 해외로 봉사활동을 나가 태극기가 달린 조끼를 입고 자세를 취하고 있는 둥린징. [사진 본인제공]

17년간 늘 한᛫중 관계 기복 있었지만 요즘 가장 심각, 한류 매력 느낄 기회 없어져

Q : 한국에서 힘든 때도 있었나?
A : 팬데믹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교류가 완전히 중단돼 중국에 있는 친구᛫가족들과 오랫동안 만날 수 없어 너무 외로웠다. 원래 항공사 업무상으로도 그렇고 직원 혜택도 있어서 1년에 70~80번 비행기를 탈 정도로 해외를 자주 갔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해외여행은커녕 2주에 한 번 근무, 그리고 나중에는 '반강제' 휴직으로 이어졌다.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창업을 하면서 위기를 이겨냈던 것 같다.

Q : 한᛫중 관계도 이 시기에 많이 악화했는데.
A : 나는 한국에 오래 산 중국인으로서 한᛫중 관계의 기복을 여러 차례 실감했는데, 요즘만큼 힘든 상황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라 간의 관계가 좋아야 국민도 혜택을 받는데, 안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한중 기업을 위한 컨설팅과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브릿지 엑스'의 대표 둥린징(董琳璟, 36)이 지난달 6일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Q : 중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매력도가 떨어졌단 말도 나온다.
A : 사실 이 말에 100% 공감할 순 없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 제품 자체의 매력도가 떨어진 게 아니라, 중국 사람들이 그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거다.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 등 한류 콘텐트를 자주 접해야 화장품이나 다른 여러 한국 제품에 관심이 생길 텐데, 사드 사태 이후 한류의 매력을 느낄 기회가 아예 사라져버렸다. 그 사이 중국은 자체 시장의 수요를 소화하느라 제품의 품질을 크게 개선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제는 딱히 한국 제품을 찾을 이유가 없어졌다. 게다가 코로나나 비자 이슈 때문에 한국에 와서 성형이나 쇼핑, 여행하고 싶은 중국 사람도 마음대로 올 수 없게 됐다.

Q : 평소 한᛫중 관계에 대한 생각과 기대는
A : 정부 차원의 소통도 좋지만 민간 교류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술 교류나, 지방 단체 간 소통, 상업적인 교류 등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양국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내가 한중우호협회의 여러 활동에 시간을 할애해서 참여하는 것도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본다. 비즈니스적으로도 한᛫중 간 다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회사를 열심히 키워보려고 한다.

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sakong.kwans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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