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人사이드]"1분 더 살면 새 곡 쓸텐데"…열정 태우고 떠난 사카모토 류이치

전진영 2023. 4.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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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암 투병 끝에 별세
음악가·사회 운동가로 활약

지난달 28일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별세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 '마지막 황제' 등 영화음악에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고,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의 작곡가기도 합니다. 오늘은 향년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의 생애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유치원생 때 작곡 시작…YMO에서 뮤지션으로 거듭나

사카모토는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습니다. 편집자인 아버지와 모자 디자이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유치원 시절부터 작곡을 시작해 교수 지도도 받았다고 합니다. 바흐와 드뷔시를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로 뽑기도 했는데요. 이후에는 도쿄예술대로 진학해 작곡가의 꿈을 한층 더 키웁니다. 당시에는 오키나와나 아프리카 민족음악이나 전자음악에도 관심을 가지며 음악 경계를 대폭 확장하게 됩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예술가 활동을 하게 된 것은 1978년 호소노 하루오미 권유로 3인조 밴드 YMO(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면서 부터입니다. 전자음악, 일레트로 힙합에 낯선 인공적 소리 등을 접목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습니다.

YMO가 인기를 끌면서 그는 뮤지션이 되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실제로 "음악을 하게 된 이유가 있는가"라는 한 인터뷰 질문에 그는 오히려 "나는 그간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되고 싶은 직업을 물으면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YMO가 갑자기 뜨는 바람에 뮤지션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대답을 한 적도 있습니다.

영화 ‘전장의 메리크리스마스’에 들어가는 음악 작업을 계기로 그는 세계적인 영화 음악 작곡가로 발을 내딛게 됩니다. YMO에서 실험적인 사운드만 만들어낼 줄 알았는데,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슬프고 아름다운 멜로디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죠.

1987년에는 ‘마지막 황제’ 영화음악으로 아시아인 최초 미국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이후에도 지브리 애니메이션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음악 등 다양한 영화음악 작업에 참여합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데, 2017년에 '남한산성'의 음악을 작곡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사카모토는 "원래 영화음악에는 서툴렀는데, 감독의 의도에 부응하면서 미지의 능력이 개발된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사회 참여도...포용의 선율 보여줘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뮤지션이지만 사회 문제에 가감없이 목소리를 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는 본토와 차별을 받고 있는 오키나와 문제, 원전 폭발사고로 이어진 탈원전 문제 등에 꾸준히 목소리를 냈습니다. 한일관계에도 관심이 많았는데요. 부산국제영화제에 방문한 자리에서도 일제 강점기 역사를 그린 한국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재밌게 봤다고 꼽기도 했었습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는 피해 지역 아이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꾸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지진 당시 쓰나미로 수몰된 학교의 피아노를 가져와, 세계의 지진 데이터를 변환해 피아노가 연주할 수 있도록 입력시키는 작업도 진행합니다. 환경 문제와 피해를 일깨우는 작업이었는데요.

2021년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나를 두고 음악가는 음악만 하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알고 있다"며 "그런데 음악만 하면 될 것 같지도 않다. 보통 사람이 참견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직업에 상관없이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음악을 '포용의 선율'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분이라도 더 살면 새로운 곡 쓴다...작곡 집념 불태워

사카모토는 2021년 직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발표합니다. 이후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에는 야윈 몸으로 온라인 콘서트를 열기도 했고, 앨범 '12'를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문예지와의 인터뷰에서 사카모토는 암이 전이됐음을 밝히며 "의사가 아무 치료도 안 받으면 앞으로 반 년 남았다고 했다"며 "지난 2년 사이 크고 작은 수술을 6번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을 밝히면서도 "만약 1분이든 2분이든 더 살게되면, 그만큼 새로운 곡이 나올 가능성도 커지지 않겠느냐"고 덧붙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열정을 태우고 떠난 그의 별세 소식에 전세계적에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일본 언론에서도 연일 지인 인터뷰나 관련 기사들이 그의 별세 소식 이후에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연예인들의 그와 관련된 미담을 소개하며 애도했습니다.

그의 직업을 말하는 데 있어 음악가, 사회운동가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결국 음악으로 말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불사르고 떠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는 하늘을 무대로 연주할 그의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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