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 “내 영광의 시대는 ‘리바운드’” [쿠키인터뷰]
2013년, 배우 안재홍은 종종 악몽을 꿨다. 도통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매일 속이 바짝바짝 타서다. 당시 그가 맡은 인물은 군대에서 인정받은 족구 실력자. 하지만 연습을 거듭해도 실력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노력해도 늘지 않는, 감각의 영역이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은 지 약 10년. 영화 ‘리바운드’(감독 장항준)로 만난 후배 배우 이신영을 보고 그는 오랜만에 영화 ‘족구왕’(감독 우문기) 시절을 돌아봤다. 이신영 역시 ‘족구왕’ 당시 자신처럼 농구 실력이 형편없었으나, 노력 끝에 에이스 역할을 실감 나게 소화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안재홍은 “‘리바운드’는 포기 않는 리바운드 정신으로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리바운드’에서 안재홍이 연기한 강양현은 폐부 위기였던 부산 중앙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를 맡아 전국대회 준우승이라는 기적을 일군 인물이다. 2012년 중앙고 농구부의 실화를 영화화했다. 실제 강양현은 현재 3x3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 중이다. 시나리오와 실화를 접한 안재홍의 마음속엔 뜨거운 열정이 넘실댔다. 선수가 여섯 명뿐이던 작은 농구부의 코치가 명문 팀들을 하나씩 굴복시키며 ‘도장 깨기’를 해나가는 영화. 안재홍은 이 이야기에 생명력을 더하고 싶었다. “실화가 굉장히 극적이잖아요. 관객이 몰입하려면 실제 인물과 배우가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게 중요했어요. 강양현 감독님께 자주 전화 드리며 조언을 구했죠. 실존인물을 연기한 덕에 누린 특권이에요.”
일체감을 살리려고 노력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겪었다. 예고편 공개 후 온라인상에는 안재홍의 부산 사투리가 어색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장항준 감독이 간담회에서 “안재홍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며 직접 해명했을 정도다. 안재홍이 강양현의 평소 말투와 억양을 재현하며 생긴 해프닝이다. 안재홍은 말투부터 체격, 소품까지 철저한 준비를 거쳤다. 10㎏를 증량해 풍채를 재현하고, 강 감독에게 당시 옷차림에 대해 물어가며 디테일을 살렸다. 당시 영상을 보며 강 감독이 작전을 지시할 때 쓰는 몸짓과 목소리 톤을 생생히 묘사했다. 영화를 미리 본 강 감독이 걸쭉한 사투리로 “진짜 내랑 똑같다”고 말하자, 비로소 뿌듯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안재홍은 강 감독 조언을 토대로 캐릭터를 준비하며 동시에 극 중 강양현의 심리상태를 분석했다. 그는 몰수패 전 강양현을 “즐기지 못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승패 압박에 시달려 오판을 이어가서다. 하지만 강양현은 농구를 너무나도 사랑하던 과거 모습을 돌아본 뒤 농구를 즐기기 시작한다. 극 후반 팀원들을 독려하며 “우리가 좋아 미치겠는 걸 하자”는 강 코치 말은 안재홍에게도 진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이 메시지를 ‘리바운드’에 출연한 모든 후배 배우와 나누고 싶다고 했다.
“강양현은 농구를 생각하며 말했지만, 저는 연기를 떠올리며 대사를 내뱉었어요. 후배 배우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이번 현장에는 ‘리바운드’가 첫 영화인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그런 만큼 더욱더 위축되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길 바랐어요. 극 중 ‘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대사가 있어요. ‘리바운드’를 잘 보여주는 말이죠. 여타 스포츠 영화처럼 무조건 이기자는 메시지가 아니라, 승패 압박을 떠나 다신 없을 이 순간을 오롯이 즐겨보자는 이야기여서 더 좋았어요. 덕분에 저희도 어느 순간부터 작품에 ‘진짜 감정’을 쏟고 있더라고요.”
안재홍에게 ‘리바운드’는 여러 갈래로 기억된다. 꼭 잡고 싶던 소중한 기회, 잘 해내야 했던 프로젝트, 애드리브를 정교하게 연구해 본 경험, 선배로서 경험을 쌓은 시간, 기적 같은 돌풍을 바라게 한 작품… 그는 이 모든 걸 축약해 농구 만화 ‘슬램덩크’ 명대사를 빌려 표현했다. “리바운드를 제압하는 자가 시합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 말이 맞더라고요. ‘리바운드’를 찍고 확실해졌어요. 제 영광의 시대는 바로 지금입니다. 진심으로요.” 그는 씩 웃으며 ‘리바운드’로 삶을 새로이 배웠다고 덧붙였다. “겁먹지 말고 다시 달려들어 리바운드를 잡아내야 하는 게 인생 아닐까요? 지난해 부단히 리바운드를 잡던 저희의 뜨거운 여름이 ‘리바운드’에 있습니다. 분명 괜찮은 울림을 느끼실 거예요. 제가, 저희가, ‘우리’가 그랬듯.”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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