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정치인과 주술

고세욱 2023. 4. 8.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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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대통령 선거에 앞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대선 후보인 박정희, 김대중의 운세를 알아봤다.

그 결과 박 대통령이 톱클래스였고 김대중 후보는 강운이지만 톱이 될 수 없다고 나왔다.

박정희에게는 길일이고 김대중에게는 절명(絶命)일이라는 설명 때문이었다(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김당 '시크릿파일').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조순형 민주당 대표는 "올해 내 괘가 적장의 목을 벨 운세"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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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욱 논설위원


1971년 대통령 선거에 앞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대선 후보인 박정희, 김대중의 운세를 알아봤다. 그 결과 박 대통령이 톱클래스였고 김대중 후보는 강운이지만 톱이 될 수 없다고 나왔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DJ를 누를 운세라는 점에 만족해했다. 중정은 복술가에게 물어 4월 27일을 대선일로 정했다. 박정희에게는 길일이고 김대중에게는 절명(絶命)일이라는 설명 때문이었다(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김당 ‘시크릿파일’).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조순형 민주당 대표는 “올해 내 괘가 적장의 목을 벨 운세”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인들이 개인 점괘를 넘어 조상 묘지에까지 관심을 기울인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이 컸다. 김 전 대통령은 유명 풍수지리가의 말을 듣고 1995년 전남 신안의 아버지 묘와 경기도 포천의 어머니 묘를 용인으로 옮겨 합장했으며 2년 뒤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한화갑, 이인제 등 대선후보나 잠룡들의 조상 묘 이장이 줄을 이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1년 대선 경선에서 패한 것은 부모 묘소를 흉지로 이장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주술이 상대 공격에 이용되기도 했다. 1999년 충남 예산의 이 전 총재 조상 묘에 철심 7개가 박혀 있었다. 2021년 5월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세종시 조상묘가 훼손됐고 식칼과 부적 등이 묻혀 있었다. 기운과 혈을 막기 위함이라는 해석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2일 페이스북에 부모 묘소가 훼손된 사진을 공개했다. “후손의 절멸과 패가망신을 저주하는 일종의 흑주술”이라며 비분강개했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대표 문중 인사들이 이 대표에게 기를 보충하는 뜻에서 행한 것으로 6일 밝혀졌다. 윤 대통령의 주술 관심을 염두에 두고 여권 지지층의 소행으로 여겼다가 결과적으로 머쓱해진 격이 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코앞인데 유력 정치인들이 무속이나 풍수에 휘둘리는 것을 언제까지 봐야 하나.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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