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기업 사냥꾼
미국 공매도 헤지펀드는 부실하게 운영되거나 부정행위를 감춘 기업의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코로나19 대유행 전까지 가파르게 성장하던 중국 루이싱커피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사냥꾼’은 미국 공매도 헤지펀드 머디워터스 리서치였다.
루이싱커피는 2017년 중국 베이징에 개장한 매장을 2년 만에 4507곳으로 늘렸다. 당시 미국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는 중국에서 4123곳의 매장을 운영했다. 루이싱커피는 중국에서나마 매장 수로 스타벅스를 앞지르자 자신감을 얻었다. 2019년 5월 미국 나스닥거래소에 상장하고 본격적인 세계 확장을 준비했다.
이런 루이싱커피의 성공은 회계 부정 위에 쌓인 사상누각에 불과했다. 머디워터스는 루이싱커피의 회계 장부에서 2019년 3분기 실적이 69%, 같은 해 4분기에는 88%나 부풀려진 사실을 찾아냈다. 2020년 2월 공매도 보고서를 89쪽 분량으로 작성했는데, 그 빼곡한 내용만큼 충격적인 것은 집요한 추적 과정이었다.
머디워터스는 임시 고용한 1500명을 손님으로 위장하고 루이싱커피 매장 981곳에 투입했다. 이들은 소형카메라로 1만1260시간 분량의 매장 내부 영상을 촬영했고, 영수증 2만5843장을 수집했다. 그 결과 무상 증정품을 판매 실적으로 포함하고, 손실을 숨겨 고수익을 낸 것처럼 속인 루이싱커피의 가짜 성공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루이싱커피의 미국 예탁증권은 2020년 6월 나스닥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됐다.
머디워터스는 결과적으로 기업의 부정행위를 밝혀낸 ‘고발자’ 역할을 했지만, ‘정의의 사도’처럼 굴지 않았다. 그들은 공매도 수익만을 좇는 사업 목표를 회사 이름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흙탕물(Muddy waters)’을 뜻하는 회사 이름은 중국 병법 삼십육계 중 20계의 혼수모어(渾水摸魚)에서 발췌된 것이다. ‘탁한 물에서 고기를 잡는다’는 뜻으로, 혼란을 통해 이익을 얻는 공매도 헤지펀드를 설명하기에 적합했다.
머디워터스는 기업을 수개월간, 많게는 수년간 추적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완성된 보고서는 공매도를 건 뒤에 공개된다. 헤지펀드의 일종인 행동주의 펀드는 특정 기업의 주주로 참여해 경영 방식을 개선하고 지분·배당률로 이익을 나누지만, 공매도 헤지펀드는 목표물의 주가 하락을 통한 시세차익에서 수익을 낸다.
흙탕물처럼 혼탁한 최근 자산시장에서 공매도로 대어(大魚)를 낚은 건 머디워터스만이 아니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사냥꾼은 미국 공매도 헤지펀드 힌덴버그 리서치다. 힌덴버그는 2020년 9월 친환경 투자 열풍에 편승해 기술과 회계 장부를 조작한 미국 전기·수소차 스타트업 니콜라를 쓰러뜨리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니콜라 창업자 트레버 밀턴은 사기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오는 6월 선고를 앞두고 있다.
지난 1월 인도 대기업 아다니그룹의 회계 부정, 주가 조작, 내부자 거래를 밝혀낸 주인공도 힌덴버그였다. 아다니그룹의 시가총액에서 70%가 증발했고, 그룹 총수 가우탐 아다니의 자산 순위는 세계 2위에서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힌덴버그는 미국·유럽 은행권 위기가 고조됐던 지난달 새로운 공매도 표적을 지목했다.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앱)을 서비스하는 미국 핀테크 기업 블록의 실사용자에서 허수와 불법 의혹을 2년 동안 추적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번에는 성장주 투자자들의 선봉장과 같은 미국 투자자문사 아크 인베스트먼트의 캐시 우드 최고경영자(CEO)가 블록 주식을 대량 매수해 힌덴버그의 공매도에 맞섰다. 뉴욕증시에서 모처럼 큰 싸움이 벌어졌다.
공매도 헤지펀드의 사냥감은 언제나 같았다. 눈앞의 성공에 심취해 위험을 방치하거나 약점을 노출하며 허둥대는 기업을 목표물로 삼았다. 국내총생산 세계 10위의 타이틀이 무색하게 13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냈는데 인구는 확실한 추세로 감소하고, 탈세계화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나라라면 그들의 사냥터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금융 당국에서 슬쩍 나왔다 잦아든 ‘공매도 전면 재개’ 발언에 시장이 펄쩍 뛴 건 당연한 일이다. 공매도의 여러 선작용도 개인투자자에게 불리한 제도에선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의 경제 체력은 과거보다 약해졌고, 당분간은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김철오 온라인뉴스부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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