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 죽은 푸들 품은 시바견 모습… 그 후의 이야기 [개st하우스]

이성훈,최민석 2023. 4. 8.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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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노원 수락산 유기사건’
발길 끊긴 산중에 버려진 19마리
한데 모여 잔뜩 웅크린 채 발견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지난해 말 한파주의보가 내린 서울 노원구 수락산 정상 부근에서 시바견이 얼어 죽은 푸들을 품고 있다. 아래 사진은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품종견 십수마리가 잔뜩 웅크린 채 숲속을 배회하고 있는 모습. 최민석 기자, 박희준씨 제공

“수락산 등산로 끝자락에 품종견 10여 마리가 버려져있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현장에 급히 가보니 유기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더라고요. 그때가 영하 17도쯤이었든가. 얼마나 추웠겠어요? 푸들 한 마리는 이미 얼어 죽었더군요. 그 광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4년차 동물보호명예감시원(명예감시원) 박희준(아래 사진)씨-


살아남은 개들은 추위에 떠느라 제보자가 부어준 사료를 입에도 대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푸들, 포메라니안, 스피츠 같은 인기 견종인데다 생식기를 다친 암컷들인 점으로 미루어 번식견으로 이용하고 버려진 강아지들인 듯했죠. 며칠째 혹한주의보가 이어져 발길이 끊긴 산중에 버려진 숫자는 자그마치 19마리나 됐습니다.

10여 마리의 개들이 얼어 죽어가는 현장 사진이 SNS 등에 퍼지며 공분을 샀던 그 사건, 특히 얼어 죽은 토이 푸들을 지키듯 웅크린 시바견의 모습이 모두를 마음 아프게 했던 바로 그 ‘노원 수락산 유기사건’입니다. 이후 살아남은 개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개들을 버린 범인은 잡혀서 죗값을 치렀을까요? 당시 현장에 첫 출동했던 명예감시원 박씨를 통해 이후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혹한의 산속 버려진 십수마리 번식견

제보자 박씨는 서울 노원구청 소속의 4년차 동물보호명예감시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명예감시원은 관련 법률지식 등 자격을 갖춘 이들이지만 하는 일은 공무원의 보조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박씨는 개인 전화번호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해 직접 주민제보를 받고, 매년 30여건의 학대현장에 출동하고, 구조한 동물의 보호처까지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례적인 명예감시원입니다.

수락산 유기사건을 처음 제보 받은 것도 박씨였습니다. 지난해 12월17일, 박씨는 노원구 주민으로부터 인근 수락산 정상 부근에 품종견 10여 마리가 무더기로 버려졌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박씨는 “한파주의보가 3일 연속 찾아올 만큼 날씨가 추울 때여서 이런 혹한 속에 버려졌다면 개들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판단했다”며 “경찰과 구청에 신고한 뒤 구호용 사료와 물, 담요 등을 챙겨 문제의 현장으로 출동했다”고 설명합니다.

등산로에는 밤새 내린 눈이 발목까지 쌓여 있었습니다. 미끄러운 산길을 따라 겨우 현장에 도착한 박씨는 동사 위기에 처한 19마리의 품종견들을 발견했습니다. 푸들, 시바견, 스피츠, 포메라니안 등 하나같이 작은 녀석들이 추위 속에서 버티려고 민들레 홀씨처럼 한데 모여 잔뜩 웅크리고 있었죠. 힘이 다한 토이푸들 한 마리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시바견은 푸들을 지키듯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박씨는 “명예감시원 4년 하면서 마주한 제일 처참한 광경이었다. 뒤이어 도착한 경찰도 공무원들도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이 많은 유기견들을 구조하려면 동물보호소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연락해도 도착하려면 몇 시간은 걸릴 테고 그때까지 이 아이들이 버텨줄 수 있을지 박씨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박씨는 공무원들과 함께 긴급 구호작업을 했습니다. 휴대용 가스버너로 따뜻하게 데운 물과 구호사료를 개들에게 나눠주고, 담요와 겉옷을 모아 개들에게 덮어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생존한 18마리는 얼어 죽을 위기에서 벗어났고, 3시간 뒤 도착한 경기도 양주 동물구조관리협회(동구협)의 도움으로 전부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폼피츠 몸에서 나온 결정적 단서

주변에 CCTV도 없고 행인도 드문 산중에서 범인을 특정할 단서를 찾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돌파구는 뜻밖의 곳에서 열렸습니다. 동구협에 도착한 2㎏ 남짓한 작은 폼피츠(포메라니안과 스피츠의 교배종)의 목덜미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된 겁니다. 전 견주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이 기록된 동물 인식칩입니다. 박씨는 이 사실을 경찰 측에 전했고, 수사관들이 칩을 추적한 끝에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피의자의 정체는 경기도 의정부의 외진 창고에서 개들의 번식을 유도하는 불법 번식업자 40대 A씨. 꼬리가 밟히고 수사망이 좁혀들어오자 압박감을 느낀 A씨는 결국 경찰에 자진 출석한 뒤 모든 범행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중성화되지 않은 암컷 품종견 10여 마리를 구해다 불법 번식장을 만들었고, 예상보다 번식장 운영에 비용이 많이 들자 그대로 개들을 산속에 버렸다고 합니다. 다만 새끼들을 받아 팔지는 않았다고 했죠.

하지만 이 주장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았습니다. 구조견들 중에는 임신 상태였던 모견도 있었고, 대다수의 개에서 수차례 출산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사건 고발을 진행한 동물자유연대 측 관계자는 “구조된 개 대부분은 자궁의 비정상적인 확장, 자궁축농증, 유선종양을 앓았다”며 “여러 차례 출산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수의사 소견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번식장에서 낳은 새끼를 판매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정황입니다.

하지만 노원경찰서 관계자는 “불법 번식업 가능성을 두고 수사했지만 A씨가 강아지를 판매했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며 “해당 사건을 동물 학대 및 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전했습니다.

구조된 18마리의 운명은…

한편 구조된 18마리는 전부 심장사상충, 자궁축농증 등 중증질환에 감염돼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동물보호법상 유기동물은 공공보호소에 입소하고 10일의 공고기간 동안 대기했다가 입양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수락산 유기견들은 이대로 두면 열흘도 버티지 못하고 보호소에서 모두 사망할 위험성이 컸습니다. 실제로 한 마리는 구조 4일 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박씨는 노원구청의 협조로 공고기간을 생략하고 수락산 유기견들을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상태가 가장 심각했던 네 마리는 동물병원과 노원구청이 운영하는 입양센터로 옮기고, 남은 13마리는 공공보호소인 동구협에 머물되 임시보호(임보) 혹은 입양신청이 들어오면 즉시 퇴소하도록 조치했는데요. 사연을 알게 된 동물보호단체 꽃길동행과 AFTO, 시민들의 도움으로 모두 안락사 걱정 없이 보호받으며 가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씨는 “그 중에서도 아픈 손가락 같은 견공이 있다”며 동물병원에서 가장 늦게 치료를 마친 2살 스피츠 로사를 소개했습니다. 구조 당시에는 위독했지만 지금은 모든 치료를 마치고 건강한 상태입니다.

지난달 22일 국민일보는 경기도 부천의 임보처에서 지내는 로사를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로사의 입양적합도를 파악하기 위해 13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도 동행했습니다. 스피츠 견종은 다소 성격이 예민하고 까다롭다고 알려졌지만 로사는 잔짖음 없이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이었습니다. 산책 도중에 만난 4살 아이들이 손에 간식을 올려두자 로사가 다가와 먹으며 손길을 받아들였습니다. 미애쌤은 “사회성이 훌륭한 개라도 아이들과 지내기 어려워한다. 아이들이 자주 소리를 지르고 몸동작이 커 두렵기 때문인데 로사는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사람과 지내는데 익숙한 성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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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08번째 견공입니다. (90마리 입양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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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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